빛나는 ‘독립운동가 후손’ 스타들…김지석·청하·이첸

불에 달군 쇠 고문에도 ‘입’ 다물었다…김지석 할아버지 김성일 선생
외할아버지 뜻 기리려 한국사 자격증 1급…청하가 2달간 ‘집콕’한 이유
안중근 의사 후손 이첸,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어” 포부
왼쪽부터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배우 김지석, 가수 청하, 아이돌그룹 모디세이의 이첸. 연합뉴스·모디세이 인스타그램 계정 ‘modyseey.off’ 캡처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연예계가 조상의 역사적 궤적으로 들썩이고 있다. 최근 친일파 후손으로 지목된 연예인이 거센 논란의 중심에 선 가운데, 반대로 독립투사의 피를 이어받은 스타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조선총독 암살을 시도한 민족지도자, 안중근 의사 가문의 후손까지. 뼈대부터 남다른 배우 김지석, 가수 청하, 그룹 모디세이 이첸의 이야기를 짚어봤다.

 

배우 김지석의 할아버지 김성일 선생(왼쪽)과 그의 부인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김지석. 유튜브 채널 ‘김지석 [내 안의 보석]’ 캡처

 

◆ 김지석의 할아버지…김구 선생의 제자, 김성일 선생

 

과거 배우 김지석은 2015년 KBS 프로그램 ‘해피투게더’에서 자신의 할아버지인 김성일 선생이 김구 선생의 제자라고 소개한 적 있었다. 

 

2021년 김지석의 할머니는 그의 유튜브 채널 ‘김지석 [내 안의 보석]’에 출연해 김성일 선생의 독립운동 행적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할머니는 “한국에 있는 독립군들에게 정보를 전달했다”며 “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독립 자금을 모았고 상해에 있는 독립운동 지도자인 김구 선생에게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한 할머니는 김성일 선생이 체포된 후 당했던 혹독한 고문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김성일 선생은 불에 달군 쇠로 지지는 고문의 여파로 가슴에는 큰 상처가 남고 발등뼈 일부가 들어가기도 했다. 이러한 고문 속에서도 그는 독립운동 정보를 끝까지 유출하지 않고 견뎌냈다고 알려져 현장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김성일 선생은 1920년 동지 박운죽 선생의 권유로 ‘대한독립보합단’에 가입해 거사 물품을 은닉하는 등 무장투쟁을 지원했다. 이 조직은 군자금 모집과 일본인 군인·경찰 및 친일파 처단, 식민통치 기관 습격 등을 펼치던 대표적인 무장 독립운동 단체다. 그러던 중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면서 김성일 선생은 박운석·김유성 선생 등과 함께 붙잡혔다. 결국 그는 1921년 4월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및 ‘폭발물단속령’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항소했지만 기각됐고 서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3년 2월 임시 석방(가출옥)됐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가수 청하와 그의 외할아버지 석은 김용근 선생. 아이돌그룹 걸스데이 혜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혜리’ 캡처, 석은 김용근선생기념사업회 제공

 

◆ 가수 청하…독립운동가·민주화운동가 석은 김용근 선생의 외손녀

 

가수 청하의 외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이자 민주화운동가 석은 김용근 선생이다. 이러한 집안 내력으로 청하는 과거 활동 공백기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을 취득한 바 있다. 청하는 과거 여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해당 자격증을 취득한 사실을 알렸다. 그는 어린 시절 미국에서 생활했고 한국에서는 연습생으로 활동해 한국사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언젠가는 한국사를 좀 배웠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다. 할아버지가 겪은 아픈 역사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청하는 활동 공백기 기간 2개월간 집 밖에 나가지 않고 공부에 매진했다. 그 결과 한 문제만 틀린 97점을 받으며 합격의 결실을 맺었다.

 

김용근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총독 암살단을 결성해 거사를 시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그는 고향 강진에서 농촌계몽운동을 펼치고 6·25 전쟁에도 참전했다. 전쟁 후 교편을 잡았던 김용근 선생은 은퇴 후 노인대학 설립과 향토문화 연구에도 힘썼다. 또한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제자들을 숨겨줬다는 죄명으로 투옥돼 집행유예의 형을 받고 출소하기도 했다. 이때 얻은 고문 후유증으로 김용근 선생은 1985년 5월22일 타계했다. 정부는 김용근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고 2002년 민주화유공자로 공식 인정했다. 제자들은 김용근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제정하고 10주기 추모식에서의 첫 시상을 시작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고조할아버지인 안중근 의사의 사촌 안명근 선생을 소개하는 아이돌그룹 모디세이 멤버 이첸. 유튜브 채널 ‘재외동포청 Overseas Koreans Agency, Korea’ 캡처

 

◆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 안명근의 4대손, 이첸

 

아이돌그룹 모디세이의 멤버 이첸은 안중근 의사의 후손이다. 그는 6번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도전 끝에 지난해 엠넷플러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플래닛C:홈레이스’를 통해 데뷔했다.

 

앞서 2024년 10월 JTBC 프로그램 ‘PROJECT7’에서 이첸은 “저의 고조할아버지가 안명근 선생님이고 안명근 선생님은 안중근 선생님의 사촌동생으로 같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또한 지난 4월 재외동포청 공식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저희 할머니가 안중근 의사님의 부인인 김아려 여사님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고 이야기해줬다”고도 밝혔다. 이첸의 친할머니가 바로 안명근 선생의 손녀이다. 

 

이첸은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사실을 자부심으로만 여기기보다 책임감으로 받아들이며 고민하고 있었다. 후손이라는 수식어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아직도 마음이 무겁고 책임감도 느낀다. 자부심도 있고 감사한 마음도 든다”며 “가수로서 노력과 무대로 더 인정받고 한 사회의 청년으로서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어린 시절 안중근 의사의 영향을 받아 항일독립운동에 뜻을 둔 안명근 선생은 ‘안악군면학회’와 ‘해서교육총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교육구국운동에 힘썼다. 이후 이완용 처단과 무장투쟁을 위한 군자금 모금에 나섰으나 밀고로 인해 1910년 12월 일제에 체포됐는데 이것이 이른바 ‘안명근 사건’이다. 일제는 신민회를 비롯한 항일세력을 탄압하고자 해당 사건을 의도적으로 확대·날조했다. 이는 ‘105인 사건’까지 이어져 수백 명의 독립운동가가 무더기로 붙잡혔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안 선생은 15년 만에 출옥한 뒤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이후 1927년 7월7일 중국 길림성 의란현 팔호리에서 서거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한편 이들의 가족사는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논란과 맞물려 재조명받고 있다. 하영은 지난 7일 KBS2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안상호가 1916년 친일단체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