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억원에 내놓은 집인데 29억원에 살 사람이 있다고 하니 집주인이 보러 오라고 하더라고요. 지난 주말에는 실제 두 팀이 집을 보고 갔어요.”
12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 A씨는 최근 집주인들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동안 호가를 고수하며 가격 협상에 소극적이던 강남 집주인들이 최근에는 매수자가 호가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해도 집을 보여주는 등 협상에 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A씨는 “앞으로 매물이 더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 미리 가격을 조정하려는 집주인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날 네이버 부동산에 따르면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전용 59㎡ 매물이 최저 29억5000만원에 나와 있다.
서초구 반포동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반포자이 인근 공인중개업소 대표 B씨는 “예전에는 집주인들이 절대 매수자가 원하는 가격에 맞춰주지 않았다”며 “지금은 장기보유특별공제 문제도 있어 협상 여지가 생긴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번 세제개편에는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장기‘거주’소득공제로 개편하고 공제 한도를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B씨는 “가격 협상 여지는 생겼지만 집주인들이 일제히 호가를 1억~2억원씩 낮추는 상황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3일 정부의 부동산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서울 아파트 매물이 늘고 있다. 이날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6만4082건으로, 3일 6만409건에서 열흘 만에 3673건(6.1%) 증가했다. 4일 6만840건에서 7일 6만2103건, 9일 6만2516건, 11일 6만2789건으로 늘어난 데 이어 이날 6만4000건을 넘어섰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현재로서는 강남권이 서울의 매물 증가를 이끌고 있다”며 “서울 전반에서 매물이 나오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가주택 밀집 지역에서 매물 증가폭이 컸다. 강남구는 9453건에서 1만213건으로 760건(8.0%), 서초구는 7630건에서 8263건으로 633건(8.3%) 늘어 서울 평균을 웃돌았다. 반면 송파구는 5099건에서 5295건으로 196건(3.8%) 증가했다.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급해진 일부 매도자들과 달리 매수자들은 관망하는 분위기가 짙어졌다.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인근 공인중개업소 대표 C씨도 “매수자들은 ‘세제가 나오면 가격이 좀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기대심리 때문에 매수를 계속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세제개편안이 겨냥한 고가주택 시장은 대출 규제 등의 영향으로 이미 매수세가 약해진 부분도 있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의 30억원 이상 아파트 거래는 190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763건보다 31.2% 감소했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아파트 거래가 15.4%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감소폭이 두 배 수준이다. 50억원 이상 아파트 거래도 483건에서 331건으로 31.5% 감소했다.
지난해 10·15 대책으로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2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기존 6억원에서 2억원으로 줄어든 점도 고가주택 거래 위축에 영향을 미쳤다. 대출 여력이 크게 줄면서 세제개편 이후 강남권에서 늘어난 매물을 받아줄 매수세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진형 광운대 교수(부동산법무학과)는 “세제개편 이후 매물이 늘어난 것은 정부 정책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라면서도 “늘어난 매물이 실제 거래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금 30억원을 갖고 주택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신고가와 신저가가 공존하는 시장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