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넘기는 술 빚던 선조의 지혜 지켜나갈 것” [차 한잔 나누며]

유소영 지시울양조장 대표

무더위에 도수 높여 만든 과하주
22종 꽃 넣어 현대적으로 풀어내
약주 좋아하시던 아버지 생신에
좋은 술 선물하려고 양조 시작
“‘과하주(過夏酒)’는 말 그대로 여름을 넘기는 술입니다. 무더운 계절에도 술이 쉬지 않도록 도수를 높여 빚었던 선조들의 생활 지혜가 담겨 있지요.”

 

입추(8월 7일)가 지났지만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이어진 지난 8일, 강원 춘천 의암호 앞 지시울양조장에서 만난 유소영 대표는 전통주 ‘과하주’에 담긴 옛사람들의 여름나기 지혜를 이렇게 설명했다.

옹기로 만든 소줏고리로 술을 내리고 있는 지시울양조장 유소영 대표(오른쪽)와 딸 엄승예씨. 지시울양조장 제공

냉방 시설과 냉장 유통이 없던 시절, 고온다습한 여름철 술의 변질을 막는 일은 양조의 중요한 과제였다. 선조들은 발효주에 증류식 소주를 더해 다시 발효·숙성하는 방식으로 보관성을 높인 과하주를 빚었다. 단순히 도수가 높은 술이 아니라, 계절 변화에 맞춰 술의 상태를 조절하고 여름을 건너기 위해 고안된 양조법인 셈이다.

 

지시울양조장의 ‘화전일취18백화’는 과하주법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술이다. 쌀과 물, 전통누룩으로 빚은 술덧에 전통 증류식 소주를 더한 뒤 모란·매화·복숭아꽃·국화·연꽃·장미·찔레 등 직접 기른 22종의 꽃을 넣어 완성한다.

 

유 대표는 “특정 꽃향이 두드러지기보다 여러 꽃이 핀 꽃밭처럼 은은한 향이 어우러지기를 바랐다”며 “고문헌을 읽으며 많은 꽃을 넣어 빚으면 어떤 향이 날지 궁금했고, 그 향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식이 과하주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원한 곳에서 음식과 함께 하루의 즐거움을 찾는 것도 여름을 나는 방법이지만, 적당한 술을 곁들이는 방법도 있다”며 “18백화는 술 자체로 즐기거나 과일과 함께 마시면 꽃향기와 달콤함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가 지향하는 술은 빠르게 대량생산되는 상품이라기보다 쌀·물·전통누룩이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어가는 술이다. 양조장 이름인 ‘화전일취’는 정학유의 ‘농가월령가’에 등장하는 표현으로, 꽃이 만발한 봄날 화전을 안주 삼아 한잔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는 “약주를 좋아하시던 아버지 생신에 좋은 술 한 동이를 빚어드리고 싶었던 마음이 전통주에 관심을 둔 계기였다”며 “양조장을 연 지 6년이 됐지만, 처음 술을 빚을 때의 마음으로 시간과 정성을 들인 술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선보인 동정춘도 고문헌을 바탕으로 옛 양조법을 재현한 술이다. ‘임원경제지’의 ‘정조지’에 실린 주방문을 참고해 빚는데, 쌀을 불리거나 찌는 데 쓰는 물 외에는 별도의 물을 거의 넣지 않는 ‘무수주’ 방식에 가깝다. 적은 물과 누룩만으로 쌀 전분을 당화·발효시키는 만큼 공정이 까다롭고 손도 많이 간다.

 

유 대표는 “문헌을 보며 ‘물을 거의 넣지 않고도 정말 술이 될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며 “전통주를 배운 제자로서 스승에게 한 동이 빚어 선물하고 싶은 마음도 동정춘을 시작한 계기”라고 했다.

 

증류식 소주에도 효율보다 방식을 우선하는 철학이 담겼다. 옹기로 만든 소줏고리로 술을 한 방울씩 받아 항아리에서 1년 이상 숙성한다. 직화 증류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열에 따른 탄내를 피하기 위해 수율도 낮게 관리해야 한다. 옹기 자체가 파손에 취약하다는 부담도 있다. 그럼에도 유 대표는 “소줏고리는 원주의 맛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도구”라며 “손으로 빚고 항아리에서 발효·숙성한 술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전통주 시장에는 새로운 원료와 현대적 양조 기법을 적용한 제품이 늘고 있다. 유 대표는 이런 흐름이 “긍정적”이라면서도 “지시울양조장만큼은 조선시대 집에서 술을 빚던 가양주법의 결을 지켜가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