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응원 논란’ 이후 45일 만에 그라운드 선 배재고, 반성하며 최선을 다 했지만...봉황대기 1회전 탈락

[목동=남정훈 기자] 배재고와 인천고의 제54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1회전 경기가 열린 12일 서울 양천구 목동구장. 양 팀 선수들은 플레이볼 선언 전에 홈플레이트에서 일렬로 정렬해 인사를 나눴다. 배재고 선수들은 곧장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지 않고, 3루 측 관중석을 향해 다시 일렬로 정렬했다. 감독대행을 맡은 이장환 코치의 “전체 탈모, 인사”라는 구령에 맞춰 배재고 선수들은 모자를 벗고 관중석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배재고 야구부가 12일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54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1회전 인천고와의 경기를 앞두고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이날 배재고는 5·18 민주화운동 비하 응원 논란으로 받은 전국대회 출전정지 징계가 6개월에서 1개월로 감경되면서 45일 만에 공식 경기에 나서게 됐다. 뉴스1

이날은 배재고 야구부가 45일 만에 공식 석상에 등장한 날이다. 배재고는 지난 6월29일 제81회 청룡기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경기 도중 광주일고 더그아웃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폄훼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고교야구에까지 ‘일베 문화’가 침투한 것을 놓고 각계각층에서 비난 여론이 쏟아졌고, 정치권에서 여당과 야당이 이 사건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할 정도였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배재고 야구부에 전국대회 6개월 출전 정지와 청룡기 남은 경기 몰수패 징계를 내렸지만, 재심을 맡은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가 광주일고 측의 용서와 선처 요청 등을 고려해 출전 정지 징계를 1개월로 감경했다. 그 덕분에 배재고는 올해 마지막 전국대회인 봉황대기 출전이 가능해졌다. 프로 진출 및 대학 진학만을 바라보며 길게는 10년, 짧게는 5~6년 동안 야구를 해왔던 학생 선수들에 대한 배려였다.

 

배재고 야구부를 이끄는 권오영 감독은 학교 자체 징계로 직무에서 배제돼 이날 경기장에 나오지 않았고, 부적절한 응원을 주도한 선수 2명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경기 전 이장환 코치는 “그 사태 이후로 반성 많이 했습니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고, 한 달의 징계 기간동안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좋은 모습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5·18 민주화운동 비하 응원 논란으로 받은 전국대회 출전정지 징계가 6개월에서 1개월로 감경되면서 45일 만에 공식 경기에 나서는 배재고 야구부가 12일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54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1회전 인천고와의 경기를 앞두고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선수들이 12일 서울 양천구 목동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제54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1회전 인천고와의 경기 시작 전 인사를 하기 위해 도열해 있다. 뉴시스
배재고 야구부가 12일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54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1회전 인천고와의 경기를 앞두고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이날 배재고는 5·18 민주화운동 비하 응원 논란으로 받은 전국대회 출전정지 징계가 6개월에서 1개월로 감경되면서 45일 만에 공식 경기에 나서게 됐다. 뉴스1

플레이 하나 하나에 시끌벅적한 구호와 응원을 보내는 인천고에 비해 배재고 더그아웃은 다소 조용했다. “안타”, “가자” 등의 외침은 간간이 들렸지만, 아무래도 논란을 의식한 듯 짧은 구호 정도로만 응원을 대체하는 모습이었다.

 

혹여 선수들이 기가 죽을까 싶어 관중석에 자리한 배재고 동문들이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격려했다. 1885년 개교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사학으로 유명한 배재고답게 관중석에는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 선배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은 교가를 합창했고, 아들뻘, 손자뻘인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며 “제대로 휘둘러야지”, “낮게 던져”, “괜찮아, 힘내. 어깨펴” 등 훈수와 격려를 듬뿍 보냈다. 70대 중반의 김모씨는 “이번 논란 때문에 경기를 보러 온 게 아니다. 20년 넘게 후배들의 야구 경기를 챙겨보러 오고 있다”면서 “아이들은 실수할 수 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이고, 나 역시 선배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옆에서 이를 듣던 다른 노인도 “아이들도 이번 사건으로 많이 배웠을 것이다. 고교 야구의 응원 문화가 다시 예전처럼 상대를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게 아니라 각자를 응원하도록 바뀌길 바란다”고 거들었다.

 

배재고등학교 야구부가 12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54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인천고와의 1회전 경기 시작에 앞서 인사를 한 후 모자를 고쳐 쓰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경기는 인천고가 배재고를 8-5로 누르고 2회전 진출에 성공했다. 1회전 탈락으로 이번 대회를 마친 배재고는 경기가 끝난 뒤 관중석을 향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배재고 주장 고현석 군은 “아직 20년도 살지 않았지만, 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지난 한 달이었다”라면서 “반성도 많이 했고, 3학년에겐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어 이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 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