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가전이나 스마트폰을 400만원어치 샀다면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으로 돌려받는 금액은 80만원이다. 적지 않은 돈이라 상품권을 받은 뒤에는 “어디서 쓸 수 있느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전통시장을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이 입점한 온라인 전용관에서 식품과 생활용품, 지역 특산물을 주문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환급을 계기로 이러한 온라인 사용처가 빠르게 주목받고 있다. 수천억원 규모의 소비 여력이 한꺼번에 시장에 풀리면서 유통업체들에게는 신규 고객을 확보할 기회가 됐다.
1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온의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거래액은 지난달 기준 1년 전보다 9배로 늘었다. 지난 3월 온누리상품권 전용관 ‘온누리샵’을 연 현대홈쇼핑의 현대H몰은 지난달 매출이 전월 대비 4배 뛰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복지몰 운영사 현대이지웰의 온누리상품권 매출도 전년 동월보다 31% 늘었다.
◆삼성발 8000억원, 올해 디지털 발행액의 약 18%
삼성전자는 6월 8일부터 7월 5일까지 ‘국민과 함께, 삼성전자 감사 페스티벌’을 진행했다. 행사 기간 가전과 모바일 제품을 구매한 고객에게 구매금액의 20%를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으로 지급하는 행사다.
군인과 경찰, 소방·교정공무원 등 이른바 K-히어로에게는 10%포인트를 더해 30%의 혜택을 제공했다.
삼성전자가 행사 시작 당시 예상한 지급 규모는 약 4000억원이었다. 주문이 몰리면서 실제 지급 규모는 8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당초 계획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전체 온누리상품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이번 행사의 크기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올해 계획한 온누리상품권 발행 규모는 5조5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디지털 상품권은 4조5000억원이다. 삼성전자 행사 지급액 8000억원을 대입하면 올해 전체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발행계획의 약 18%에 해당하는 금액이 한 기업의 소비자 행사만으로 추가 소비 여력으로 풀린 것이다.
더욱이 삼성전자 행사로 받은 상품권은 자유롭게 현금으로 바꾸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소진할 수 없다. 삼성전자 행사 안내에 따르면 지급받은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은 ‘선물하기’와 현금 환불이 불가능하다. 제품 구매를 취소하면 지급된 상품권도 전액 회입된다.
그만큼 지급된 상품권 상당 부분은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을 통한 실제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유통업체들이 삼성전자 행사 이후 온누리 전용관을 강화하는 배경이다.
◆9월 신청하면 10월 지급…소비 효과 ‘한 번 더’
상품권 유입은 삼성전자 행사가 끝난 7월로 종료되지 않는다. 행사 대상 고객은 오는 9월 30일까지 상품권을 신청할 수 있다. 9월 5일까지 제품 배송과 설치가 끝난 경우가 대상이다.
신청일부터 약 2주 뒤 구매자 명의의 ‘디지털온누리’ 앱으로 상품권이 순차 지급된다. 신청 시기에 따라서는 10월까지 새 상품권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다는 얘기다.
6~7월 삼성전자 제품 판매가 먼저 늘고 이후 상품권이 지급되면서 전통시장과 온라인 전용관에서 다시 소비가 발생하는 ‘후행 소비’ 구조다.
유통업계 입장에서도 온누리상품권 고객 유치전이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은 낮다. 먼저 지급받은 고객이 상품권을 쓰는 가운데 아직 신청하지 않았거나 지급을 기다리는 소비자까지 순차적으로 시장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상품권을 받은 소비자는 ‘디지털온누리’ 앱에서 잔액을 확인할 수 있고 오프라인 가맹점뿐 아니라 온누리상품권 결제를 지원하는 온라인몰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시장 안 가고 장보기…18만개 상품 온라인으로
온라인에서 온누리상품권을 쓴다고 사용 대상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통시장과 골목형 상점가 등 가맹 자격을 갖춘 판매자가 온라인몰에 들어와 상품을 판매하는 구조다.
현대홈쇼핑은 지난 3월 25일 공식 온라인몰 현대H몰에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전용관 ‘온누리샵’을 열었다. 개관 당시 전통시장과 지역 특산물 등 약 2만개 상품을 갖췄다. 온누리상품권 혜택에 현대H몰의 별도 적립 혜택을 더할 수 있도록 했다.
11번가도 6월 30일 온누리상품권 결제를 도입하며 ‘11번가 온누리마켓’을 열었다. 전국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기반 가맹점 약 1400곳이 입점해 18만여개 상품을 판매한다.
품목도 신선·가공식품에 그치지 않는다. 디지털·가전부터 패션, 생활용품까지 영역이 넓어졌다. 소비자는 상품마다 표시된 온누리상품권 결제 가능 여부를 확인해 구매하면 된다.
롯데온 역시 온누리상품권 결제를 지원하면서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여러 시장을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지역별 상품을 검색하고 비교한 뒤 주문할 수 있다는 것이 온라인의 강점이다.
◆온누리 고객 잡으면 일반 고객으로…유통업계가 뛰어드는 이유
유통업체들이 주목하는 것은 상품권으로 발생하는 매출만이 아니다.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하기 위해 해당 쇼핑몰을 처음 방문하거나 가입한 소비자가 다른 상품까지 구매하면 신규 고객 확보 효과로 이어진다.
온라인 플랫폼 입장에서는 자체 할인쿠폰이나 대규모 광고비를 투입하지 않고도 외부에서 구매력을 가진 고객이 들어온다. 수백만~수천만원 단위의 상품권을 받은 일부 가구라면 한 번의 구매로 잔액을 모두 소진하기도 어렵다. 여러 차례 사이트를 방문할 가능성도 생긴다.
특히 먹거리와 생활용품처럼 반복 구매가 가능한 품목은 상품권을 계기로 처음 거래한 소비자를 장기 고객으로 전환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판매자에게도 변화다. 과거 전통시장 상인의 고객이 시장 인근 주민과 방문객 중심이었다면 온라인몰에 입점한 가맹점은 서울에서 부산의 특산물을 주문하는 식으로 전국 소비자를 상대할 수 있다.
온누리상품권의 디지털 전환은 ‘시장에 가서 쓰는 상품권’을 ‘전국의 시장 상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결제수단’으로 바꿔놓고 있다.
◆5조5000억원 시장 놓고 온라인 전용관 경쟁
온누리상품권 시장 자체도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온누리상품권 발행 규모를 지난해와 같은 5조5000억원으로 잡으면서 디지털 상품권은 지난해 4조2000억원에서 올해 4조5000억원으로 확대했다. 반면 지류 상품권은 1조3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줄였다.
전체 발행계획의 80% 이상을 디지털이 차지한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디지털 비중을 키우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행사로 대규모 신규 이용자까지 유입되면서 온라인몰 입장에서는 온누리상품권이 무시하기 어려운 결제 시장으로 커졌다.
특히 삼성전자 행사 상품권 신청이 9월 말까지 이어지고 신청일로부터 약 2주 후 지급되는 만큼 관련 소비는 가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행사로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을 처음 접한 소비자들이 사용처를 찾으면서 온라인 전용관 유입도 늘고 있다”며 “전통시장 상품을 비대면으로 주문할 수 있어 식품뿐 아니라 생활용품 등으로 구매 품목이 확대되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하려고 새로 가입한 고객을 일반 구매 고객으로 전환하려는 유통업체들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