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사 크리스티 미스터리(마리 베네딕트, 백지민 옮김, 문학동네, 1만8000원)=‘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등 세계적인 추리소설을 남긴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에게는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한 아픈 사연이 있었다. 1926년 어느 날, 크리스티는 갑자기 사라졌고 영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남편과의 갈등 속에서 벌어진 이 열하루간의 실종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역사소설 작가 마리 베네딕트는 이 사건을 바탕으로 크리스티가 왜 사라졌는지, 그때 그녀의 마음속에는 어떤 상처와 고민이 있었는지를 상상력으로 되살린다. 유명 작가의 실종 사건을 좇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여성이 자신의 삶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가산 카나파니, 윤희환 옮김, 열림원, 1만8800원)=팔레스타인 저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가산 카나파니의 소설집 ‘뜨거운 태양 아래서’가 절판된 지 20년 만에 복간됐다. 소설집에는 모두 일곱 편의 중단편이 실렸다. 표제작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팔레스타인 출신 세 남자가 탱크로리에 실려 쿠웨이트로 향하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들에게 국경을 넘는 행위란 새로운 미래를 향한 희망인 동시에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을 되찾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다. 하지만 국경을 넘기 위해 지옥 같은 물탱크에 몸을 숨겨야만 하는 이들의 상황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구조적 폭력을 드러낸다. 폭력 앞에서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가능한지 묻는 작품이자, 오늘날 팔레스타인이 처한 억압적 현실에 대한 문학적 증언으로 읽힌다.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작가는 1972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차량 폭탄 테러로 숨졌다.
기억을 바꾸는 법(스티브 라미레스, 김명주 옮김, 김영사, 2만4800원)=미국의 신경과학자인 저자가 기억 연구의 최전선에서 직접 경험한 과학적 발견과 인간적인 고민을 함께 담아낸 책이다. 2012년 동료 연구자와 함께 쥐의 공포 기억을 인위적으로 되살리는 데 성공하며 신경과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가짜 기억을 심거나 긍정적인 기억을 활성화해 우울과 불안을 완화하는 연구를 잇달아 수행하며 기억 조작 연구를 선도했다. 저자는 기억이 단순히 과거를 저장하는 기록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현대 신경과학은 기억이 뇌 어디에 저장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밝혀냈으며, 그 결과 특정 기억을 삭제하거나 활성화하고, 심지어 존재하지 않았던 가짜 기억을 만들어낼 가능성까지 열었다고 소개한다. 기억 연구를 이끌어온 과학자들의 도전과 실험을 따라가며 기억이 형성·저장·변형되는 신경과학적 원리를 알기 쉽게 풀어낸다.
코끼리 고모부(윤여림, 소복이 그림, 사과잼롱롱, 1만6800원)=아홉 살 하나에게 무뚝뚝한 고모부는 크고 우람한 코끼리다. 하나는 그런 고모부와 땅콩죽을 끓이고, 진흙을 만들고, 나비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마음을 나눈다. 또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고모부의 감춰진 슬픔도 조금씩 알아 간다. 그리고 고모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던 날, 하나는 가볍게 날아오르는 발랄한 흰 코끼리의 환상을 마주한다. 편견 없는 아이의 눈만이 겉모습 너머의 진짜 얼굴을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고 유쾌한 장면들로 보여주는 그림 동화다.
밤의 교실(김규아 글·그림, 북스그라운드, 2만2000원)=볼로냐 라가치상 만화 부문 우수상을 받은 김규아 작가의 대표작 ‘밤의 교실’의 개정증보판이다. 시력이 점점 나빠져 병원을 찾은 정우는 어쩌면 영영 눈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불안에 빠진 정우는 새로 온 늑대 선생님을 만나고, 해가 진 뒤 열리는 특별한 음악 수업을 듣게 된다. 정우는 차츰 어둠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만의 연주를 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부모의 이혼, 실명 위기를 겪는 정우의 사연을 단순한 비극이 아닌,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성장 서사로 풀어냈다. 개정증보판에는 늑대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은 에필로그가 새롭게 수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