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정수급 제재받고도 버젓이 또 입찰… 줄줄 새는 혈세

서울의 한 대학 산학협력단은 2024년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해외사업 수행기관으로 일하면서 보조금을 더 타내려고 투입 인력을 뻥튀기한 사실이 적발됐다. 코이카는 지급한 사업비 9억원 중 5600만원을 환수하고 작년 12월부터 2년간 용역참여 제한조치를 부과했다. 그런데도 이 대학은 이후에도 다른 준정부 공공기관을 상대로 77회나 입찰에 참가해 45개 사업을 따냈다. 세계일보가 57개 준정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최근 5년간 부정수급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공공재정 재원 사업이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과 무엇이 다른가.

모르는 사이에 혈세가 줄줄 새는 상황이지만, 법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준정부 공공기관 사업에서 허위신고 등이 적발돼도 환수액만 물고 해당 기관에서만 당분간 입찰이 제한되는 게 고작이다. 그러다 보니 부정수급 업체들은 거리낌이 없이 다른 곳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심지어 500개가 넘는 다른 입찰에 참여한 업체도 있었다니 기가 찰 일이다. 현행 보조금법은 중앙관서의 장(장관)이 부정수급 적발 업체에 보조금, 간접보조금 수급을 제한하면 기획예산처와 다른 중앙관서에도 통보해 모든 정부 사업 입찰을 제한한다. 하지만 준정부 공공기관이 부정수급 제한조치를 내려도 중앙부처 국고보조금을 사용한 사례가 아니면 연대 제재가 적용되지 않는다. 공공재정환수법도 마찬가지다. 부정수급 감시가 준정부 공공기관 전체로 퍼질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



예산처에 따르면 작년 발생한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건수는 992건(667억7000만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그 배경으로 불법 브로커의 기승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컨설팅 명목으로 자금난을 겪는 영세 사업자 혹은 중소기업에 직접 연락하거나 온라인 플랫폼에서 ‘정부 정책자금 100% 승인 보장’과 같은 자극적인 문구로 사업주를 유혹한다.

정부는 브로커의 이 같은 부당개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률 개정을 추진 중인데,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서류 중심의 형식적 심사를 통해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현 시스템이 허위자료 작성·제출 등에 브로커가 끼어들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 것과 마찬가지다. 정책자금 지원이나 보조금 사업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데이터 기반의 실질적 검증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