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의 ‘1년 살림’이 무너지고 있다. 지방세 수입 감소와 의무지출 증가가 겹치면서 일부 지자체는 시설 운영비조차 본예산에 1년 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부족한 예산을 추가경정예산으로 수개월치씩 보충하거나 기금과 지방채를 끌어다 쓰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분기살림’으로 내몰리고 있다.
14일 경기 의정부시에 따르면 현재의 세입·세출 구조가 이어질 경우 2027년부터 2030년까지 부족한 재원은 총 4081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연도별 부족액은 2027년 557억원에서 2028년 1325억원으로 급증, 2029년과 2030년에도 각각 1095억원과 1104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올해 하반기에도 130억원이 부족한 것으로 분석됐다.
김원기 의정부시장은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의 재정구조를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다”며 의정부형 재정혁신을 선언했다.
현재 새로운 사업을 벌이지 않더라도 도봉산∼옥정 광역철도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 건설 분담금, 의정부경전철 대수선, 자원회수시설 현대화 등 이미 예정된 사업과 법정 의무경비만으로 재정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시는 내다봤다.
의정부시의 전체 예산은 2010년 5538억원에서 올해 약 1조7000억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지방세와 세외수입 등 자체수입은 2700억원에서 3100억원으로 약 1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예산 규모는 급격히 커졌지만 시가 스스로 조달해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재원은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최근에는 자체수입보다 국·도비 보조사업에 따라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시비가 더 빠르게 늘고 있다. 의정부시에 따르면 자체수입이 12억원 증가하는 동안 보조사업에 투입해야 할 시비 부담은 184억원 증가했다. 중앙정부나 경기도가 사업비 일부를 지원하더라도 시가 일정 비율을 함께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보조사업이 늘어날수록 다른 사업에 사용할 수 있는 가용재원은 줄어든다. 부족한 재원을 메우는 과정에서 채무와 내부 차입도 불어났다. 의정부시가 발행한 지방채는 1100억원이며, 특별회계에서 빌려 쓴 자금도 482억원에 이른다.
구리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시는 2026년 본예산 편성 당시 재원 부족으로 지하철 8호선 연장선 운영비, 멀티스포츠센터 관리대행비, 자원회수시설 운영비 등 시민 생활과 직결된 필수 경비를 전액 반영하지 못했다. 이후 제1회 추경을 통해 2·3분기분을 일부 반영했으나 오는 4분기 필수 경비 약 345억원은 여전히 미편성 상태로 남아있다.
재정 부족을 버티게 했던 기금도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그동안 일반회계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약 1844억원을 활용했으며 현재 남은 금액은 약 281억원이다.
구리시의 재정자립도는 25.89%로 경기도 31개 시·군 가운데 22위다. 전체 예산 중 사회복지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47.74%, 국·도비 보조사업 비율은 53.34%에 달한다. 복지비와 보조사업 등 지출 용도가 정해진 예산 비중이 커지면서 시가 신규 사업이나 지역 현안에 자율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돈은 줄어들고 있다.
금창호 한국정책분석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필수경비를 본예산에 전액 담지 못하고 추경으로 반복 충당하는 것은 재정 운용의 안정성이 약화됐다는 신호”라며 “지자체의 세출 구조조정뿐 아니라 보조사업의 지방비 부담과 중앙·지방 간 재원 배분 구조를 함께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