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날 가계대출 총량 관리의 고삐를 늦추기로 발표한 가운데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4일 금융권에 “실수요자의 차질 없는 자금지원을 위해 총력을 다해달라”고 주문했다. 5대(KB국민6신한·하나·우리·NH농협) 은행의 가계대출 여력이 약 4조원 이상 증가할 예정이지만 은행별로 추가 배정될 총량 목표가 확정되지 않아 실제 대출 문턱이 낮아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 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금융권과 관계기관을 소집해 ‘확대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열고 “이번에 가계대출 총량목표가 합리적으로 조정된 만큼, 확대된 금융권의 추가 자금공급 여력으로 이주비·중도금·잔금대출 등 실수요 자금이 적시에,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전날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 종합대책’을 통해 올해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목표치를 기존 1.5%에서 3.0%로 늘렸다. 이를 통해 전 금융권에서 향후 5개월간 약 30조원의 대출이 추가로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5대 은행의 경우 단순 계산하면 기존 목표치보다 4조원 이상 추가 대출이 가능해진다. 다만 은행별로 부여 받은 목표치가 다른데다 상반기 이미 올해 한도를 훌쩍 초과한 은행들도 있어 대출 여력은 은행별로 다를 전망이다.
5대 은행이 올해 초 금융당국에 제출한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는 약 4조3400억원이다. 반면 지난 12일 기준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정책성 대출 제외)은 총 650조5472억원으로 지난해말(644조9700억원)보다 5조5772억원 증가했다. 기존 목표치를 이미 1조2000억원 이상 초과한 셈이다.
이 위원장은 “(이번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일관된 수요관리 기조는 유지하되, 주택공급과 청년 등 실수요자 지원은 강화하는 것”이라며 “총량 목표 조정은 실수요 지원을 위한 조치다. 투기적 대출수요를 자극하는 신호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대출규제는 차주의 자금조달계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금융권에서 규제 선상에 놓인 차주들을 현장에서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주택공급 확대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정상화에도 적극 참여할 것을 당부했다.
정부가 가계대출을 늘리기로 한 이튿날인 이날 은행 영업점에는 주택담보대출이나 잔금대출이 가능한지 알아보는 문의가 이어졌다.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 상향이 바로 현장에 적용되지 않다보니 인터넷은행을 중심으로 대출 ‘오픈런’도 여전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에서는 이날 오전 6시 주담대 접수를 시작한 이후 일일 한도가 빠르게 소진되면서 접수가 조기 마감됐다.
정부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 완화 효과를 체감하려면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은행별로 추가 배정될 목표치가 확정되지 않았고 잔금대출 별도 관리를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각 은행이 변경된 총량 목표에 맞춰 대출공급 계획을 새로 세우더라도 이 위원장이 ‘총량 목표 조정은 실수요 지원을 위한 조치’라고 못박았듯, 추가 대출 여력은 청년·신혼부부를 포함한 실수요자에 집중될 전망이다. 당국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와 주담대 한도 등 기존 대출 규제는 유지했다. 지난 5월부터 ‘빚투’(빚 내서 투자)용으로 급증한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등에 대해서도 관리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차주별 대출 한도도 그대로다. 규제지역 LTV 40%, 은행권 DSR 40%가 유지되고, 주택 가격별 주담대 한도도 15억원 이하 6억원, 15억원 초과~25억원 4억원, 25억원 초과 2억원이 기존과 같이 적용된다.
금융위는 전날 발표된 부동산 정책 중 이주비 대출 LTV 산정방식 개편과 PF 사업자 보증공급 규모·주거사업장 보증비율 100% 확대 등은 이달 중 즉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당국은 이주비 대출 LTV에 신축주택의 가치 추산액(종후자산평가액)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이주비 대출 한도가 늘어나는 효과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