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5일 ‘패전일’ 전몰자 추도사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부전(不戰·전쟁하지 않음)의 맹세’를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가 13년 만에 부활시켰던 과거사 성찰 메시지가 1년 만에 다시 사라진 것이다. 또 다카이치 총리는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 ‘정치적 스승’ 아베 노선 계승한 다카이치 정권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의 패전 81년을 맞아 15일 도쿄 일본 무도관에서 열린 ‘전국 전몰자 추도식’ 식사(式辭)에서 “전쟁의 참상을 두 번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일본, 안전하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안보 정책에 주력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했다.
이는 과거 이웃 나라가 겪은 피해를 언급하고 반성의 뜻을 표명해 온 전통적인 추도사와 차이가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정치적 스승’으로 삼는 다카이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반성’과 ‘부전의 맹세’ 표현이 추도사에서 다시 제외된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은 평화를 중시하는 나라로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공헌하기 위해 힘을 기울여왔다”며 “각국이 직면한 과제 해결을 위해 일본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몰자 유골 수습과 관련해서는 “하루도 빨리 고향에 모실 수 있도록 국가의 책무로서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총리는 공물 봉납, 자민당 간부들은 이례적 집단 참배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하지 않고 자민당 총재 명의로 공물을 봉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해 총리로 취임하기 전까지 봄·가을 예대제와 종전기념일 등에 맞춰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왔다.
이번에 참배를 생략한 것은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최근 개선 흐름을 타고 있는 한일관계와 ‘대만 유사시’ 발언 이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반면 내각 핵심 인사들의 신사 참배는 이어졌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2024년 기하라 미노루 방위상 이후 현직 방위상으로는 2년 만에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과거 농림수산상과 환경상으로 재임할 당시에도 패전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기카와다 히토시 어린이정책담당상도 함께 참배하면서 일본 내각은 7년 연속 현직 각료의 종전 기념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 기록을 남겼다.
자민당 핵심 간부들의 단체 참배도 진행됐다. 스즈키 슌이치 간사장과 아리무라 하루코 총무회장, 니시무라 야스토시 선거대책위원장 등은 이날 야스쿠니 신사를 함께 방문했다.
일본 언론은 “자민당 간부들이 패전일에 개별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경우는 있지만 이처럼 집단 참배를 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 아베 이후 사라진 ‘반성’
일본 총리의 추도사 메시지 변화는 집권 자민당 내 보수 강경파의 정치적 입지 강화와 궤를 같이한다.
일본 정부는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 이후 주변국에 대한 가해 책임과 반성을 추도사에 포함해 왔다.
그러나 2012년 아베 신조 전 총리 재집권 이후 2013년부터 이러한 표현이 일제히 중단되었다.
2025년 이시바 전 총리가 13년 만에 반성 표현을 일시적으로 부활시켰으나, 보수 색채가 짙은 다카이치 내각이 출범하면서 1년 만에 다시 아베 노선으로 회귀했다.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2460만여 명의 위패가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에 7년 연속 각료 참배가 이어지는 현상은 군사 안보 정책을 뒷받침하는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국내 정치적 계산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