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폴란드·우크라 이간질 정황… “과거사 갈등 악용”

폴란드 총선 앞두고 ‘反우크라’ 감정 확산 나서
2차대전 당시 두 나라 악연까지 소재로 활용해

2027년 폴란드 의회 총선거를 앞두고 러시아 측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총동원해 폴란드 국민 사이에 반(反)우크라이나 여론을 확산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도날트 투스크 총리가 이끄는 현 중도·좌파 연립정부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폴란드에는 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를 떠난 난민 약 15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폴란드 정부 관계자와 학자들이 최근 잇따라 러시아의 폴란드 총선 개입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오는 2027년 10월로 예정된 총선은 친(親)유럽·친서방 성향의 투스크 정권이 계속 존속할 수 있을지가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폴란드 국기(왼쪽)와 우크라이나 국기.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이웃 나라 폴란드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전쟁을 피해 국내를 탈출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따뜻하게 환영해 국제사회의 칭송을 받았다. 현재 폴란드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주민은 150만명에 이른다. 게티이미지

보도에 의하면 최근 폴란드어를 쓰는 SNS 게시물 가운데 상당수가 우크라이나를 비난하는 내용이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전란을 피해 폴란드로 이주한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향해 욕설을 내뱉고, 그들을 받아들인 폴란드 정부를 성토하는 글이 봇물을 이룬다. 한 민간 연구소의 조사에선 지난 6월 이후 온라인 공간에서 반우크라이나 콘텐츠가 전보다 250% 이상 폭증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간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과거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이 불에 기름을 붓는 작용을 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특수 작전을 주로 수행하는 부대에 ‘우크라이나 반란군(UPA)의 영웅’이란 칭호를 내렸다. UPA는 2차대전 당시 공산주의 소련(현 러시아)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의 완전 독립을 추구한 무장 단체다. 다만 UPA는 전쟁 기간 나치 독일의 점령 통치를 받은 폴란드의 볼히니아 지역을 우크라이나 국토로 삼고자 했다.

 

이를 위해 UPA는 그곳에 살던 폴란드 민간인을 대거 살해했다. 전쟁 기간 UPA에 의해 목숨을 잃은 풀란드인은 무려 1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후 소련이 개입해 우크라이나 독립 운동이 좌절하고 폴란드가 주권을 되찾으면서 이번에는 폴란드인들이 보복에 나서 우크라이나 민간인 약 1만명이 희생됐다. 오늘날 UPA는 우크라이나에선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지만 폴란드 입장에선 천인공노할 악당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12일(현지시간) 극동 사할린 일대에서 러시아 해군 태평양 함대 소속 미사일 순양함에 탑승해 군사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러시아는 2027년 10월 폴란드 총선을 앞두고 폴란드인들 사이에 반우크라이나 감정이 고조되도록 여론 조작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에 ‘UPA의 영웅’이란 호칭의 부대가 생겨났다는 소식을 접한 폴란드 정부는 격노했다. 역사학자 출신으로 강성 민족주의자인 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은 2023년 폴란드 정부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수여한 최고 등급의 훈장을 박탈하는 강수를 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부대 이름을 정하는 것은 주권 국가의 고유 권한”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폴란드 정부 관계자는 로이터에 “이 같은 갈등이 발생한 뒤 각종 가짜뉴스가 러시아 측 미디어 및 SNS 플랫폼 전반에 걸쳐 폭발적으로 퍼져 나갔다”며 “문제의 게시물들은 이후 폴란드 언론에 의해 다시 보도됐다”고 말했다. 그 영향으로 폴란드에선 우크라이나 이주민을 겨냥한 혐오 범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답변은 2022년만 해도 80% 가까이 되었는데, 최근에는 지지율이 50%대로 뚝 떨어졌다.

 

2027년 총선을 앞두고 러시아가 폴란드 여론을 조작해 친우크라이나 정책을 폐기하게끔 하려 한다는 주장에 대해 러시아 정부는 선을 긋고 나섰다. 논란이 확산하자 바르샤바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성명을 통해 “러시아는 다른 국가들 간의 관계에 간섭하지 않는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약화시키기 위해 허위 정보를 퍼뜨린다는 비난은 근거 없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