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팥은 기능이 떨어져도 상당 기간 별다른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일부 기능이 손상돼도 남아 있는 조직이 대신 일을 하면서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피로하거나 몸이 붓고 소변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콩팥 기능이 상당히 떨어진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침묵의 질환’인 만성콩팥병이 고령층에서 특히 흔하다는 점이다. 16일 2024년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국내 19세 이상 성인의 만성콩팥병 유병률은 6.3%지만 70세 이상에서는 25.9%로, 4명 중 1명꼴이다. 고령화에 더해 콩팥 미세혈관에 부담을 주는 당뇨병·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이 늘면서 콩팥 건강 관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증상 없이 진행… 당뇨·고혈압 환자는 정기검사
콩팥은 혈액 속 노폐물과 남는 수분을 걸러 소변으로 내보내는 ‘몸속 정수기’ 역할을 한다. 체내 수분과 전해질, 산·염기 균형을 유지하고 혈압을 조절하며 적혈구 생성과 비타민D 활성화에도 관여한다. 만성콩팥병은 콩팥 기능 저하나 단백뇨·혈뇨 등 콩팥 손상의 증거가 3개월 이상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초기에는 뚜렷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콩팥의 최소 기능 단위인 네프론 일부가 손상돼도 남은 네프론이 더 많은 일을 떠맡아 한동안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만성콩팥병의 가장 흔한 원인은 당뇨병과 고혈압이다. 높은 혈당이 장기간 지속되면 콩팥의 미세혈관이 손상되고, 높은 혈압은 콩팥 혈관과 사구체에 지속적으로 부담을 줘 기능을 떨어뜨린다. 이 밖에도 사구체신염이나 다낭성 신장질환, 반복적인 요로감염이나 요로폐색, 자가면역질환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진통소염제를 장기간 복용하거나 일부 약물로 인해 콩팥이 손상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당뇨병이나 고혈압이 있다면 증상이 없더라도 콩팥 상태를 정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고령이거나 심혈관질환·비만이 있는 경우, 만성콩팥병 가족력이 있는 사람도 고위험군에 해당한다. 과거 단백뇨가 확인됐거나 신우신염·요로결석을 반복해서 앓은 경우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질환이 진행되면 충분히 쉬어도 피로감이 계속되거나 식욕 저하, 메스꺼움, 야간뇨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눈 주위나 다리가 붓고 소변에 거품이 많아지기도 한다.
기능 저하가 심해지면 빈혈이나 가려움증, 근육경련, 호흡곤란 등이 동반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증상은 단순한 피로나 노화에서도 흔히 나타나 콩팥병을 곧바로 떠올리기 어렵다.
콩팥 상태는 비교적 간단한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혈액검사에서는 혈청 크레아티닌 수치를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사구체여과율(eGFR)을 계산해 콩팥의 여과 기능을 평가한다. 소변검사에서는 단백뇨나 혈뇨 여부를 살핀다.
특히 단백뇨는 콩팥의 여과 장치가 손상됐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다만 한 차례 검사에서 이상이 나왔다고 바로 만성콩팥병으로 진단하는 것은 아니다. 탈수나 급성 질환, 약물 등에 따라 검사 결과가 일시적으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검사 결과 등을 함께 살펴 이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되는지 확인하고 필요하면 신장 초음파나 컴퓨터단층촬영(CT), 조직검사 등을 추가한다.
◆한번 떨어진 기능 회복 어려워
만성콩팥병으로 한번 떨어진 콩팥 기능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쉽지 않다. 치료의 목표도 손상된 콩팥을 회복시키기보다 남아 있는 기능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면서 질환의 진행을 늦추는 데 맞춰진다.
조기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투석을 늦추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콩팥 기능이 떨어지면 체내 수분과 전해질, 혈압을 조절하는 능력에도 문제가 생기면서 심장과 혈관에 부담이 커진다.
이에 따라 심근경색이나 심부전, 뇌졸중 등 심혈관질환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 질환이 더 진행되면 빈혈과 전해질 이상, 대사성 산증, 부종 등 다양한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다. 콩팥이 노폐물과 수분을 충분히 배출하지 못하는 말기콩팥병에 이르면 혈액투석이나 복막투석, 신장이식 같은 신대체요법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만성콩팥병 진단이 곧 투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원인 질환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꾸준히 치료하면 콩팥 기능이 떨어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뇨병 환자의 혈당과 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다. 단백뇨를 줄이는 치료도 중요하다. 최근에는 레닌·안지오텐신계(RAS) 억제제와 SGLT2 억제제 등 콩팥 기능 저하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되는 약물이 활용되고 있다.
생활습관 관리도 중요하다. 음식을 짜게 먹으면 혈압이 오르고 몸에 수분이 쌓여 부종이 심해질 수 있으며 단백뇨도 증가할 수 있다.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금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반면 ‘콩팥에 좋다’는 이유로 건강기능식품이나 한약을 임의로 복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콩팥 기능이 떨어진 사람은 특정 성분을 몸 밖으로 충분히 배출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통소염제 역시 장기간 또는 과량 복용하면 콩팥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단백질이나 칼륨도 무조건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필요한 섭취량은 콩팥 기능과 혈액검사 결과, 영양 상태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의료진과 상의해 조절하는 것이 좋다.
문영윤 강동경희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만성콩팥병은 평생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지만 막연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며 “조기에 발견해 꾸준히 치료받고 올바른 생활습관을 유지한다면 건강한 일상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