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시장이 질적·양적 팽창을 거듭하면서 수억원을 호가하는 우량 미술품의 소유권을 잘게 쪼개 다수가 나누어 갖는 조각투자가 새로운 투자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미술품 소비와 투자 방식이 기술과 결합하면서 소액으로도 안정적인 실물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특히 내년 2월 토큰증권(ST) 관련 법안이 시행되면 보다 강화한 투자자 보호장치를 갖춘 제도권 금융상품으로 편입될 예정이다. 전통 금융기관도 진입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조각투자 시장이 최근의 숨 고르기 국면을 지나 새로운 자금을 수혈받는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량 미술품으로 높은 수익률 기록
플랫폼 ‘투게더아트’의 매각 수익률 상위 5개 작품 실적을 보면, 마리킴 작가의 ‘신데렐라’가 161.19%의 수익률로 1위를 기록했다. 이어 한국 단색화 거장 박서보 작가의 ‘묘법’이 138.41%로 2위에 올랐고, 하태임 작가의 ‘언 패시지’(110%), 앤디 워홀의 ‘플라워스’(108.07%), 에바 알머슨의 ‘해피’(94.74%) 등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두 자릿수 이상의 높은 수익을 실현했다.
업계 선도 플랫폼 중 하나인 열매컴퍼니(아트앤가이드) 역시 견조한 운용 실적을 내고 있다. 총 188건의 조각투자를 진행해 누적 모집 금액 496억원, 누적 매각 금액 415억원을 기록 중이다. 평균 매각 수익률은 23%에 달하고 매각률은 8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옥석 가리기로 내실 다지는 시장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미술품은 조각투자 시장의 주요 기초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키움증권 리서치센터가 주요 사업자들의 증권신고서를 기준으로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증권신고서 체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2023년 이후 누적 기준으로 미술품을 기초자산으로 한 조각투자는 총 26건이 발행돼 전체 자산군 중 음원 저작권(67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미술품 분야는 2024년부터 올해 2분기까지 꾸준히 신규 공모를 성사시키며 실물 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를 지속적으로 확인했다. 다만 미술품을 포함해 부동산, 음원 저작권, 가축 등을 합산한 주요 조각투자 총발행 금액은 2024년 272억2000만원을 기록한 뒤 2025년 132억5000만원, 올해는 이달 11일 기준 48억7000만원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체 조각투자 발행 규모와 건수가 최근 들어 둔화하는 양상을 두고, 업계에서는 본격적인 제도권 진입을 앞두고 옥석 가리기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기대감만으로 단순한 외형 확장에 집중하던 초기와 달리, 불확실한 임시 규제 환경 속에서 무리한 신규 공모를 자제하고, 기존 보유 자산의 매각과 수익 실현에 집중하며 시장의 내실을 다지는 단계라는 것이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기존 조각투자 시장의 신규 발행이 둔화하고 있어, 토큰증권 초기 시장의 관심은 결국 기초자산 범위 확대 여부에 집중될 것”이라며 “기존 조각투자 상품과 차별화된 투자 대상이 새롭게 편입될 경우 단순한 제도권 편입을 넘어 새로운 투자상품 시장 형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거래 인프라 구축 나선 증권가
토큰증권 법제화 일정에 발맞춰 증권사들도 거래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향후 발행될 토큰증권 유통은 전용 장외거래소를 통해 이뤄지는데, 현재 한국거래소(KRX)가 주도하는 KDX 컨소시엄에는 키움증권 등이 합류했고 넥스트레이드가 이끄는 NXT 컨소시엄에는 신한투자증권 등이 참여해 거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들 사업자는 현재 금융당국의 장외거래소 본인가를 앞두고 있다. 이와 별개로 신한투자증권과 키움증권 등 주요 증권사는 조각투자 플랫폼과 선제적으로 제휴를 맺고 투자자 예치금을 자사 계좌에 안전하게 분리 보관하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유통망 확대와 제도권 편입이 결국 미술품 조각투자 시장의 덩치를 키우는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파편화된 조각투자에 머물렀던 미술품 투자가 토큰증권이라는 정식 금융상품으로 격상하면서 더욱 투명하고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활성화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며 “제도권 장외거래소를 중심으로 자본이 모이게 되면 조각투자 업계 전반이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대중이 감상의 영역에만 두었던 미술품에 소액으로 직접 투자하고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되면서, 미술품이 새로운 대체 금융상품으로 본격적인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는 기존 소액 공모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형 금융기관이 주도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각투자 시장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일부 플랫폼이 고도의 전문성 없이 불특정 다수의 소액 자금을 모으는 데 집중한 측면이 있다”며 “제도권 시장이 열리면 증권사 자산관리(WM) 부문이나 자산운용사 등 전통 금융기관이 주도해 검증된 대형 우량 미술품을 사모펀드 형식으로 유동화하는 모델이 안착해야 시장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