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불멸의 4할 타율’을 남긴 고(故) 백인천 전 감독이 17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고인은 이날 오전 충남 천안시 안서동 단국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을 가진 뒤 장지인 천안추모공원으로 떠났다. 사상 두 번째 KBO장으로 치러진 이날 영결식에는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와 박근찬 사무총장 등 KBO 관계자를 비롯해 야구인과 유족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백 전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 출범 전인 1963년부터 1981년까지 19년간 일본프로야구에서 선수로 뛰었다. 경동고와 실업야구단 농업은행을 거쳐 일본프로야구 도에이(현 니혼햄)에 입단한 그는 일본 무대에서 오랜 세월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일본에서 차별과 멸시를 견디며 1군 무대를 누빈 백 전 감독은 통산 1831안타, 209홈런, 212도루, 타율 0.278을 기록했다. 다이헤이요(현 세이부)에서 뛰던 1975년에는 타율 0.319로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오르며 정상급 타자로 활약했다.
그의 야구 인생은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백 전 감독은 MBC 청룡의 선수 겸 감독으로 한국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 나섰고, 데뷔 시즌 타율 0.412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지금까지 유일하게 나온 4할 타율로, 44년이 지난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당시 백 전 감독은 일본에서 겪었던 설움과 한국 프로야구 출범의 감격이 한꺼번에 떠오른 듯 개막전 승리 뒤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했다. KBO가 공개한 과거 인터뷰에서 그는 일본에서 차별을 겪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일본 가서 설움을 받아봐. 일본 가서 ‘조센징’ 소리 듣잖아요? 그러면 확 치가 떨려”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지도자로서도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1990년에는 MBC 청룡을 인수해 창단한 LG 트윈스의 지휘봉을 잡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감독을 맡으며 후배 선수들을 지도했다. 삼미에서는 1983~1984년 선수 겸 코치로 활동했고, LG(1990~1991년), 삼성(1996~1997년), 롯데(2003~2004년)에서 감독을 역임한 뒤 지도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백 전 감독의 별세 소식에는 야구계를 넘어 각계의 추모가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야구를 향한 감독님의 뜨거운 열정은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며 “한국 프로야구의 시작부터 함께하며 한 시대를 빛내주신 감독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애도했다.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도 고인을 추모했다. 장훈은 일본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백 전 감독을 “나보다 세 살 어린 소중한 후배이자 같은 시대를 함께 달려온 동료”라고 회고했다.
백 전 감독이 발굴해 ‘국민타자’로 성장한 이승엽 요미우리 자이언츠 타격코치도 “더 큰 꿈을 꾸고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분”이라며 “덕분에 홈런타자가 됐다”고 고인을 기렸다.
이강철 KT 감독, 이호준 NC 감독, 염경엽 LG 감독, 김원형 두산 감독 등 현역 감독들도 화환을 보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한편 백 전 감독은 지난 15일 오전 6시41분께 뇌경색으로 치료를 받던 단국대학교병원에서 숨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