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MERCOSUR) 간 무역협정 협상이 5년여간의 교착을 깨고 다시 움직이고 있다. 메르코수르 순회의장국인 우루과이는 오는 12월 제69차 메르코수르 정상회의에서 협상 재개를 공식화하는 것을 목표로 회원국 간 논의를 이끌겠다는 입장이다.
“협상을 재개할 여건은 수년 만에 가장 좋습니다. 우루과이는 메르코수르 회원국들이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는 대로 새로운 협상 라운드를 제안하고 조율할 의향이 있습니다.”
파블로 셰이너 주한 우루과이대사는 지난 12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메르코수르 무역협정 협상 재개 가능성을 이같이 평가했다. 한국과 메르코수르는 2018년 무역협정 협상을 시작했지만 2021년 이후 별다른 진전을 내지 못했다. 셰이너 대사는 “올해 초부터 협상 재개를 위한 몇 차례 회의가 열리면서 다시 협상을 시작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해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달 말 이재명 대통령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각각 만나 협상 재개를 위한 노력을 가속하기로 합의하면서 정치적 동력도 커졌다. 셰이너 대사는 “오는 12월 제69차 메르코수르 정상회의에서 무역협상 재개를 공식 발표하는 것이 명확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우루과이는 한·메르코수르 무역협정을 메르코수르의 교역 상대국을 확대하고 아시아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기 위한 ‘전략적 우선순위’로 보고 있다. 우루과이는 전통적으로 메르코수르 회원국 가운데 무역 자유화와 대외 개방에 가장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현재 우루과이가 메르코수르 순회의장국이라는 점은 협상 재개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야만두 오르시 우루과이 대통령은 지난 6월 말 순회의장직을 맡았다. 임기는 오는 12월까지다. 오르시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6개월간 무역 자유화를 공고히 하고 메르코수르를 “더 현대적이고 역동적이며 개방적인” 경제블록으로 만드는 데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밝혔다.
셰이너 대사는 “우루과이는 현 순회의장국 임기 동안 이 협정의 주요 촉진자이자 원동력이 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안에 협정이 최종 타결되기보다는 협상을 다시 궤도에 올리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협상 재개를 위한 정치적 공감대를 넓히고 실무적 기반을 다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설명이다.
“우루과이의 의장국 임기 동안 정치적·준비 단계에서 구체적인 진전을 이룰 가능성은 높습니다. 최종 서명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6개월 동안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는 최종적인 기술적 틀을 정비하고 12월 정상회의에서 협상 재개를 위한 공동선언을 공식화하는 것입니다.”
협상이 다시 시작되더라도 풀어야 할 민감한 현안은 적지 않다. 셰이너 대사는 양측의 경제구조 차이에서 비롯되는 이해관계 조정을 가장 큰 과제로 꼽았다.
한국에서는 경쟁력 있는 남미산 농축산물의 수입이 늘어날 경우 국내 농업계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한 메르코수르 제조업·중공업계에서도 가격 경쟁력을 갖춘 한국산 산업·기술 제품의 시장 진입 확대에 신중한 목소리가 있다. 위생·검역 문제도 조율이 필요한 사안이다. 우루과이는 한국의 엄격한 위생·검역 규정과 승인 절차가 메르코수르산 육류 제품 등의 시장 진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셰이너 대사는 양측의 우려를 줄이기 위해 점진적인 관세 인하와 충분한 전환 기간을 두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위생 분야에서도 검사와 협력 절차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히 개별 품목의 이해관계를 넘어 양측이 협상의 장기적인 효과와 협력 가능성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의의 초점을 전통적인 ‘공장과 고기(factories for meat)’의 교환에서 벗어나 에너지 전환과 핵심광물 같은 21세기 가치사슬로 옮겨야 합니다.”
한국의 제조업과 메르코수르의 농축산물을 맞바꾸는 기존의 시장 개방 논리를 넘어 에너지와 핵심광물 등 새로운 분야에서 양측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협력 구조를 만들자는 의미다.
우루과이는 양자 차원에서도 한국과의 경제협력 확대에 적극적이다. 한국 기업의 투자를 기대하는 분야로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디지털 경제와 기술 인프라, 전기차·에너지저장, 바이오·제약 등을 꼽았다.
우루과이는 전력의 대부분을 재생에너지원에서 생산할 정도로 에너지 전환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대규모 그린수소 프로젝트와 수출용 합성 파생상품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투자 확대에 대한 기대가 크다.
디지털 경제도 유망한 협력 분야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등 관련 인프라가 들어서면서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AI), 기술 서비스 기업의 남미 진출을 위한 기반을 갖춰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는 한국과의 접점이 크다고 평가했다. 우루과이는 운송수단 전환을 위한 규제 체계와 지원 제도를 갖추고 있어 배터리와 전기차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한국 기업과 협력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신약 개발과 의학 연구, 농업 바이오 기술 등 바이오·제약 분야에는 한국의 벤처자본과 글로벌 마케팅 역량이 결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셰이너 대사는 특히 한국 기업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메르코수르 시장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우루과이가 ‘진입 플랫폼이자 운영 허브(hub)’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장 먼저 내세운 강점은 제도적 안정성과 법적 예측 가능성이다. 우루과이는 중남미에서 안정적이고 투명한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는 만큼 장기 투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시경제·정치적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자유항·자유공항 제도와 자유무역지대를 활용한 물류 인프라도 강점으로 꼽았다. 셰이너 대사는 “한국 기업들은 우루과이에 역내 물류센터를 구축해 한국산 부품을 들여오고, 세금 부담 없이 재고를 보관하거나 간단한 조립을 거쳐 상파울루와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에 ‘적시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메르코수르 관문’으로서 우루과이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우루과이에서 가공·유통된 제품이 메르코수르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면 관세동맹의 혜택을 받아 다른 회원국 시장에도 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셰이너 대사는 “한국 기업이 더 넓은 메르코수르 시장에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진입하려 한다면 우루과이는 진입 플랫폼이자 운영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제도적 안정성과 물류 인프라, 메르코수르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이를 뒷받침하는 세 가지 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