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만난 빌게이츠 ‘SMR 동맹’ ‘테라파워’·SK이노 등 협력 본격화 젠슨 황 장녀 오늘 방한 LG 방문 휴머노이드·AI 팩토리 중점 논의
中 막강한 제조기반 내세워 위협 미래 원전 등 양국 밀월 지속될듯
중국이 막강한 제조 기반과 기술력을 앞세워 차세대 에너지와 로봇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자 미국과 한국이 손잡고 맞서는 모양새다. 소프트웨어와 원천기술은 뛰어나지만 제조업 역량은 취약한 미국 기업들이, 세계적 수준의 제조력을 갖춘 한국 기업에 구애하고 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13일 입국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겸 테라파워 이사회 의장은 바쁜 방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첨단 원전기업인 테라파워 이사회 의장 자격으로 온 그는 1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선혜원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찬하며 차세대 원전인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글로벌 에너지 협력 가능성 등을 논의했다. SK이노베이션과 SK㈜는 2022년 테라파워에 총 2억5000만달러를 공동 투자해 2대 주주가 됐다.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왼쪽부터)와 추형욱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최태원 SK그룹 회장, 빌 게이츠 테라파워 이사회 의장, 제프 밀러 테라파워 사업개발 수석 부사장이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선혜원에서 대화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당시 테라파워는 상용 SMR을 선보이기 전이었지만, 최 회장은 AI 시대의 전력 수요 증가와 SK이노베이션의 전기화 전략을 고려해 차세대 원전 기술에 선제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테라파워의 주력 상품은 나트륨(소듐) SMR이다. 냉각 소재로 물이 아닌 나트륨을 사용하는 원전으로, 기존 원전 대비 크기가 작고 전기 출력량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산업단지 등 대규모 전력 수요처에 가장 적합한 미래형 전원으로 평가받는다. 테라파워는 SMR 원천 기술력은 확보했지만, 기술을 구현할 제조 기반이 부족하다. 이에 자사의 SMR을 함께 제작할 파트너로 한국 기업을 선택했다. 현재 SMR 상용화를 위해 SK이노베이션과 HD현대, 두산에너빌리티, 한국수력원자력과 힘을 합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게이츠 의장의 방한은 미국의 기술력과 한국의 에너지 제조·프로젝트 역량을 제대로 결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전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장녀인 매디슨 황 엔비디아 옴니버스·로보틱스 제품 마케팅 수석 이사도 18일 방한한다. 그는 서초구 LG전자 양재 연구개발(R&D) 캠퍼스 내 ‘데이터 팩토리’를 찾아 LG그룹 고위 관계자들과 비공개 파트너십 회동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 방문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엔비디아 본사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젠슨 황 CEO가 전략적 사업 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직후 성사됐다.
양사는 로봇·AI 팩토리·모빌리티 3대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이 중 핵심은 로봇이다. 협력 구도는 ‘미국 두뇌·한국 몸체’로 요약된다. 양사는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의 AI 시스템에는 엔비디아의 AI칩과 소프트웨어를 적용하고, 몸체에는 LG 계열사들이 제작한 액추에이터(관절 부품), 배터리, 센서를 활용한다. 엔비디아는 피지컬 AI 소프트웨어에선 최강자지만 액추에이터·배터리·기판 등 하드웨어를 직접 만들지는 못한다. 이에 제조력을 갖춘 LG와 손을 잡은 것이다.
이렇듯 한국과 미국 기업의 연합이 활발해지는 배경엔 중국의 부상이 자리한다. SMR과 로봇 분야에서 미국과 경쟁 중인 중국은 ‘반도체 굴기’ 등을 앞세워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SMR의 경우 세계 최초 육상 상업용 SMR인 ACP100(링룽1호)과 세계 최초 상업용 고온가스원자로 HTR-PM, 토륨 용융염원자로(TMSR) 등 다양한 노형(원자로 형태)을 동시에 개발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중국이 미국보다 앞선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 1위 로봇 기업 유니트리를 비롯해 유비테크, 웨장, 러쥐로봇 등 강자가 즐비하다. 이들 제품의 성능이 테슬라·보스턴다이내믹스에 밀린다는 평가가 있지만, 저가 물량 공세로 시장에선 오히려 중국 업체 선호도가 높은 상황이다. 미국 기술기업 입장에선 중국 업체의 시장침투를 저지해야 하지만 제조 역량이 부족한 현 상황에서는 막을 도리가 없다. 이에 중국에 맞설 파트너로 제조 역량을 갖춘 한국 기업을 택한 것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태양광과 조선, 반도체 등 다른 분야에서도 한국과 미국의 협업이 활발해지고 있다”며 “이해관계가 들어맞는 만큼 당분간 양국의 밀월 관계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