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은행, 변동성 방어용 ‘장외파생상품’에 큰 돈 잃어

2분기 ‘롤러코스피’에 되레 역풍

장외옵션잔액 24조 전년比 49% ↑
신한 10.8조·하나 3.8조… 큰 폭 증가
위험 회피보다 시세차익에 주력
평가손실 4034억… 2.4배나 폭증

변동성 커지자 옵션 가격 오르고
헤지 비용도 폭등해 손실 더 키워
전문가 “리스크 관리체계 구축을”

4대 시중은행이 올해 2분기 장외파생상품 잔액을 잔뜩 늘렸다가 평가손실이 2.4배 폭증하고 부채도 불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변동성이 극심한 장세에 장외파생상품을 위험회피가 아닌 단기 시세차익을 위한 공격적 거래에만 이용한 탓에 급등한 옵션 프리미엄과 헤지 비용의 역풍을 맞은 것이다.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올해 2분기 파생상품 장외옵션 잔액은 23조9409억원으로 전년 동기(16조1045억원) 대비 48.6% 증가했다. NH농협은행은 비상장 특수은행으로 분기 보고서 공시 대상에서 제외됐다.

 

14일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종가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164.60포인트(2.42%) 오른 6,977.94로 거래를 종료했다. 코스닥은 6.70포인트(0.78%) 오른 868.07로 개장, 3.28포인트(0.38%) 오른 864.65에 장을 마쳤다. 원/달러 환율은 1.1원 내린 1,418.3원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은행별로 보면 신한은행이 10조8309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신한은행은 1년 전 4조197억원에서 1년 새 3배 가까이(169.4%) 늘어 증가폭이 가장 컸다. 하나은행도 같은 기간 1조8246억원에서 3조8199억원으로109.3%나 늘었다. KB국민은행이 잔액 기준(8조5568억원)으로는 신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지만 올해 소폭 줄었다.

 

특히 시세차익을 노린 ‘매매목적’ 상품이 23조2685억원으로 전체의 97.2%를 차지했다. 금액 기준으로 전년 동기(15조1577억원)와 비교해 53.5% 급증한 수치다. 반면 고객 매칭 및 단순 중개 목적은 2.8%에 불과했고, 위험회피 회계적용을 목적으로 한 장외옵션 거래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파생상품은 표준화된 거래소에서 사고파는 ‘장내파생’과 거래소를 거치지 않고 금융사와 고객이 일대일 계약을 맺는 ‘장외파생’으로 나뉜다. 장외파생은 변동성이 극심한 시장에서 맞춤형 방어가 가능하지만, 거래 상대방의 결제 불이행(부도) 위험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올해 들어 잔액이 폭증했다.

 

코스피 지수는 올해 들어 4000선에서 9000선을 넘나들며 사이드카가 43회 발동될 정도로 사상 최대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규격화된 장내 상품으로는 이러한 주가 급등락에 맞춰 기업별 특수 위험을 방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기업과 기관 투자자들이 만기와 행사가격을 입맛에 맞게 설계할 수 있는 장외옵션으로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들 역시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 옵션 가격(프리미엄)과 흔들림 폭이 함께 커지는데 은행들이 단기 시세차익을 거두기 위해 매매목적 포지션을 공격적으로 늘린 것이다. 매매목적 계정의 압도적 비중이 이를 입증한다.

 

문제는 수익 극대화를 위해 공격적으로 늘린 대규모 장외파생상품 투자가 은행의 손실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4대 은행의 장외옵션 평가손실은 지난해 2분기 1673억원에서 올해 2분기 4034억원으로 2.4배나 폭증했다. 은행이 향후 지불해야 할 예상 손실액을 뜻하는 파생상품 부채 평가액 역시 같은 기간 4650억원에서 6970억원으로 50%가량 늘어났다.

 

이처럼 투자 손실과 부채가 급증한 원인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극심한 변동성에 있다. 시장이 극적으로 변할수록 옵션 가격도 비싸지는데, 롤러코스터 장세에 옵션 프리미엄이 폭등했고 은행이 주가 하방 위험을 막기 위해 사들인 옵션의 헤지 비용도 치솟았다. 동시에 과거 고객·타 기관에 판매했던 옵션 가치까지 한꺼번에 뛰면서 장부상 부채와 평가손실이 가파르게 커진 것이다.

 

증시의 극단적인 급락세는 잦아들었지만 시장 안팎의 위험 요소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만큼 손실을 줄이기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신 등에서는 한국 증시의 높은 변동성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최근 블룸버그 오피니언의 슐리 렌 칼럼니스트가 한국 증시의 가파른 변동성을 지적하며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외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외파생상품을 활용한 단순 포지션 확대를 넘어 평가손실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리스크 관리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