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규칼럼] 부동산 세제에 낀 혈전(血栓)

美 보유세 실효세율 韓의 5배 넘지만
집 매각 땐 양도차익 사실상 비과세
집이 ‘사는 것’ 아닌 ‘사는 곳’ 되려면
보유는 무겁게 하되 거래는 가볍게

워싱턴 특파원 시절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에 있는 관사에서 살았다. 일 년에 두 차례씩 어김없이 지방정부인 카운티에서 보낸 재산세 고지서가 우편함에 꽂혔다. 한국 재산세보다 몇 배 많은 금액에 깜짝 놀랐다. 실효세율이 1%대 초반에 달했다. 미국 전체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83%로, 한국(0.15%)의 다섯 배가 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0.33%의 갑절이 넘는 수치다(토지자유연구소 보고서, 2023년 기준).

이재명정부는 고가 주택의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를 올리는 근거로 미국 등에 비해 실효세율이 낮다는 이유를 들었다. 세 부담의 총량은 보유와 거래 단계를 합쳐서 따지는 게 상식인데 보유세라는 한 단면만 잘라서 비교했다. ‘불완전 비교의 오류’다. 한국의 양도세에 해당하는 미국 세금은 양도차익에 매기는 자본이득세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주택 매각 직전 5년 동안 ‘2년 보유+2년 실거주’ 조건만 갖추면 독신은 25만달러, 부부 공동신고면 50만달러까지 과세소득에서 제외해 준다. 실거주 주택 1채에 대해선 다주택자도 양도차익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

조남규 편집인

이런 제도 덕분에 웬만한 미국 중산층은 여러 번 집을 갈아타도 평생 자본이득세를 모르고 산다. 보유 단계에서 충분히 과세했으니 거래는 자유롭게 풀어주는 방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올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200만달러(약 28억원) 이하 주택을 매각할 때는 자본이득세를 면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보유는 무겁게, 거래는 가볍게. 이 단순한 균형이 무거운 보유세를 견디게 한다.



미국 잣대로 재보면 한국의 부동산 세제는 소유자에게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이달 초 나온 정부의 부동산세 개편안은 시가 30억원이 넘는 고가 주택의 종합부동산세를 올리고 40억원 이상은 중과한다. 1주택자라 하더라도 비거주자의 양도세 부담은 더 무겁다. 오래 거주하면 깎아주던 장기보유특별공제도 실거주 기간만 인정하는 장기거주소득공제로 바꾸기로 했다. 부모 봉양 등 피치 못할 사유로 실거주를 못 하는 1주택자를 세금으로 징벌하는 나라가 있는지 의문이다. 시가 20억원 상당 비거주 주택의 종부세는 내년에 네 배 넘게 뛴다고 한다.

진보는 “집은 ‘사는(buying) 것’이 아니라 ‘사는(living) 곳’”이라고 주장한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집은 자산 증식의 수단이기도 하다. 집을 ‘사는 곳’으로 만들려면 부동산 거래의 장벽이 낮아야 한다. 우리는 미국보다 보유세는 적지만 거래세까지 더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거래 단계 세금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그러니 집을 사고파는 경로마다 세금이 혈전(血栓)처럼 엉겨 붙어서 매물이 순환하지 않는다.

이번 부동산세 개편은 불합리한 부동산 세제를 바로잡을 기회였다. 그런데 고가 주택의 보유세를 올리면서 거래세는 그대로 놔두고, 비거주자의 양도세 공제까지 걷어냈다. 입구와 출구 모두 좁힌 꼴이다. 이러면 부동산 거래의 동맥경화 현상은 불가피하다. 문재인정부에서 종부세와 양도세 중과를 동시에 밀어붙였다가 매물을 잠기게 하고 집값과 전·월세만 폭등시킨 전철을 되밟고 있다. 오죽했으면 같은 집에서 수십 년 거주한 1주택 노인들을 내쫓는 ‘현대판 고려장’이란 말까지 나왔겠나.

국민의힘은 “보유세를 높이려면 거래세는 낮춰야 한다”는 OECD 권고를 들이대며 정부를 비판하고 있지만, 집권 시절엔 뭐 하고 있었나. 윤석열정부는 종부세율을 낮추고 기본공제를 올려주며 보유세를 깎아주는 포퓰리즘 정책을 펴지 않았나. 그러면서도 거래세엔 손도 대지 않았다. 비판할 자격도 없다.

진보 정부는 조이고, 보수 정부는 풀어주는 냉·온탕 세제 조치가 반복되니 국민이 더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다. 보유세가 무거우면 투기 유인(誘因)이 약해진다. 집을 팔고 나갈 때 세금이 발목을 잡지 않으면 매매가 활발해진다. 매물이 많아야 매수자가 형편에 맞는 집을 보다 손쉽게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집은 ‘사는 곳’이 된다. 강물은 막으면 넘치고, 트면 흐른다. 부동산 거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