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시간 굶으면 독소 빠진다고?”
오전 8시, 사무실 탕비실. 샌드위치 대신 아메리카노 한 잔만 들고 자리로 돌아가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이유는 제각각이다. 아침을 챙길 시간이 없어서 굶기도 하고, 전날 늦게 먹은 야식을 생각해 첫 끼를 미루기도 한다. 아예 시간을 재며 공복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16시간을 굶으면 장기가 쉬고 몸속 독소가 빠진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하루 중 음식을 먹는 시간을 8시간가량으로 제한하는 이른바 ‘16대8 간헐적 단식’은 실제 체중 관리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16시간 공복=해독’이라는 공식처럼 받아들이는 경우다. 체중을 줄이는 것과 몸속 독소를 빼낸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20대 62.1%가 아침 결식…숫자 해석은 주의
질병관리청의 2024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1세 이상 국민의 아침식사 결식률은 35.3%였다. 연령별로는 19~29세가 62.1%로 가장 높았고, 20대 여성은 67.5%에 달했다. 세 명 중 두 명꼴이다.
그러나 이 숫자를 ‘국민 세 명 중 한 명이 평소 아침을 습관적으로 거른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2024년 아침식사 결식률은 조사 대상자가 조사 2일 전 아침을 먹었는지를 기준으로 계산한 수치다. 평소 일주일에 며칠 아침을 거르는지를 물은 통계가 아니다.
장기 추이를 볼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국민건강영양조사는 2021년까지 조사 1일 전 아침 섭취 여부를 기준으로 했지만 2022년부터 조사 2일 전으로 기준이 바뀌었다.
2015년 26.2%에서 2024년 35.3%로 수치 자체는 9.1%포인트 높아졌지만, 조사 기준이 중간에 달라진 만큼 이를 완전히 동일한 잣대의 10년 추세처럼 해석하는 것은 피하는 게 정확하다. 무엇보다 이 통계만으로 사람들이 다이어트나 ‘해독’을 위해 아침을 거른다고 볼 근거는 없다.
◆16시간 굶는다고 간·콩팥이 ‘휴가’ 가는 건 아니다
단식을 둘러싼 대표적인 오해가 ‘장기의 휴식’이다. 음식을 넣지 않으면 간과 콩팥이 평소 일을 멈추고 몸속 독소를 청소하는 데 집중할 것처럼 설명되기도 한다. 실제 몸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공복이 되면 대사의 방식이 달라질 뿐이다. 간은 음식에서 들어오는 포도당이 끊기면 저장된 글리코겐을 분해하고 새로운 포도당을 만들어 혈당을 유지한다. 공복 시간이 길어질수록 포도당을 새로 만드는 비중이 커진다.
콩팥 역시 계속 일한다. 건강한 콩팥은 혈액을 거르면서 노폐물과 여분의 수분을 제거해 소변으로 내보낸다.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이 기능이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국립보완통합건강센터(NCCIH)도 이른바 ‘디톡스’ 식단이 체중 관리나 체내 독소 제거에 효과가 있다는 설득력 있는 연구 근거는 없다고 설명한다. 장기적인 효과를 확인한 연구도 부족하다.
◆“16시간 지나면 자가포식 시작”…사람 몸에 그런 알람은 없다
공복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자가포식’이다. 자가포식은 세포 안에서 불필요하거나 손상된 구성 요소를 분해하고 재활용하는 과정이다.
단식으로 영양 공급이 줄어들면 자가포식과 관련된 여러 신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그러나 “12시간에는 안 되고 16시간이 되는 순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식의 시간표는 사람에게 확립돼 있지 않다.
2025년에는 시간제한 식사가 사람의 자가포식 흐름을 높일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도 나왔지만 연구진 스스로 탐색적 분석으로 제시한 단계다.
개인마다 식사 내용과 대사 상태, 운동량 등이 다른 상황에서 ‘16시간’을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스위치처럼 볼 근거는 부족하다.
결국 ‘16시간을 채우면 세포 청소가 시작된다’거나 ‘독소가 빠지기 시작한다’는 식의 설명은 현재 연구 수준보다 앞서간 표현이다.
◆체중은 빠질 수 있다…그렇다고 ‘해독 효과’는 아니다
그렇다면 16대8 간헐적 단식은 아무 효과가 없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비만 성인 90명이 참여한 12개월 무작위 임상시험에서는 참가자를 시간제한 식사군과 열량 제한군, 대조군으로 나눠 비교했다. 시간제한 식사군은 정오부터 오후 8시까지만 음식을 먹고 별도의 열량 계산은 하지 않았다.
12개월 뒤 시간제한 식사군의 체중은 대조군보다 평균 4.87% 줄었다. 매일 섭취 열량을 제한한 집단은 5.30% 감소했다. 두 감량군 사이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매번 칼로리를 계산하는 대신 ‘먹지 않는 시간’을 정해 간식이나 야식을 줄이는 방법이 일부 사람에게는 더 간편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연구에서는 먹는 시간 자체의 효과도 조금씩 확인되고 있다. 2025년 30개 연구, 1341명을 종합한 메타분석에서는 섭취 열량을 비슷하게 맞춰 비교한 연구들에서도 시간제한 식사군의 체중이 평균 1.46㎏, 체지방량이 1.50㎏ 더 감소했다.
먹는 시간대가 체중 조절에 일정 부분 독립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결론이 ‘오래 굶을수록 좋다’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연구마다 먹는 시간대와 공복 시간, 참가자의 나이와 건강 상태가 다르고 장기간 유지했을 때의 효과를 더 확인해야 한다.
◆당뇨약 먹는데 아침부터 굶었다간 ‘저혈당 위험’
간헐적 단식이 누구에게나 가벼운 식습관 변화인 것도 아니다. 특히 인슐린이나 설포닐유레아처럼 혈당을 낮추는 약물을 사용하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평소 복용하던 약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끼니를 건너뛰거나 단식하면 혈당이 지나치게 떨어질 수 있다.
미국 국립당뇨병·소화기·신장질환연구소(NIDDK)는 인슐린과 일부 당뇨병 치료제를 사용하는 사람이 식사를 거르거나 단식하면 저혈당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심한 저혈당은 의식 상실이나 경련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년층도 단순히 끼니 횟수부터 줄이는 방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유럽임상영양대사학회(ESPEN)는 노년층의 단백질 섭취량을 하루 체중 1㎏당 최소 1g으로 권고하면서 영양 상태와 신체활동, 질환 등에 따라 개별적으로 조정하도록 한다.
공복 시간을 늘린 결과 하루 전체 열량과 단백질 섭취까지 줄어든다면 체중계 숫자는 내려가더라도 근육을 지키는 데 불리할 수 있다.
아침을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굶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시간제한 식사는 자신에게 맞으면 체중을 관리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16시간이라는 숫자가 간과 콩팥을 쉬게 해주거나 몸속 독소를 빼주는 마법의 경계선은 아니다. 공복 타이머에 ‘16:00’이 찍혔다고 몸 안에 해독 완료 표시가 뜨는 것도 아니다.
몇 시간을 굶었는지만큼 중요한 것은 그 공복을 끝낸 뒤 무엇을 얼마나 먹느냐다. 긴 공복 뒤 흰빵과 단 음료, 과식으로 하루를 채운다면 16시간이라는 숫자가 식단의 빈틈까지 지워주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