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흥행하면서 신화의 무대인 그리스를 찾으려는 관광객이 늘고 있지만 정작 현지에서는 물과 전력, 의료 등 기반시설이 관광객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외신과 그리스 당국 자료를 종합하면 영화 개봉 이후 주요 촬영지가 있는 펠로폰네소스반도에 대한 여행 검색이 증가하는 등 이른바 ‘세트제팅’(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를 찾아가는 여행)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영국 소규모 그룹여행 전문업체 익스플로어 월드와이드는 최근 4주간 그리스 여행 예약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 증가했다고 밝혔다. 마이클 에드워즈 최고경영자(CEO)는 “그리스와 오디세이와 연관된 여행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영화가 펠로폰네소스와 그리스 섬 등으로 더 많은 여행객을 끌어들일 것으로 내다봤다.
칼라마타공항의 국제선 이용객은 ‘오디세이’ 개봉 전에도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그리스 항공당국 통계를 인용한 현지 매체 아나그노스티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제선 도착 승객은 6만841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7% 늘었다.
현지에서는 ‘오디세이’가 불러올 추가 관광 수요가 기존 부담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16일 올해 에게해의 그리스 섬 7곳이 물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가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전했다. 아스티팔레아섬의 경우 평상시 인구는 약 1400명이지만 여름이면 약 7000명까지 불어난다. 당국은 농민에 대한 관개용수 공급을 끊고 하루 600㎥를 생산할 수 있는 임시 담수화 시설을 설치했다. 그리스 정부도 9개 섬의 담수화 시설과 수도망, 물탱크 확충에 1500만 유로를 투입하기로 했다.
물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담수화 시설이 늘면서 전력 문제도 함께 커지고 있다. 그리스 일간 카티메리니는 아직 국가 전력망과 연결되지 않은 섬들이 여름 관광철마다 에너지 공급 취약성에 노출돼 있다고 전했다.
관광객을 실어나를 교통 인프라도 뒤늦게 확충되고 있다. 칼라마타 국제공항은 지난 6월 1억2500만유로(약 2000억원)를 투입해 새 터미널을 짓고 체크인 카운터를 현재 4개에서 10개로 늘리는 현대화 계획을 확정했으나 터미널 건설 등 본공사는 아직 착공 전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섬에서는 의료 인프라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 공공병원노동자연맹이 지난 5월 조사한 결과 유명 휴양지 코스섬에는 내과 전문의가 없어 다른 병원에서 임시 파견된 의료진으로 공백을 메우고 있으며, 사모스섬에서는 정원 5명의 내과 전문의 정원 5명이 모두 공석이었. 산토리니에서도 간호인력 부족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코스와 산토리니 등 인기 관광섬에서는 성수기 집값과 임대료가 뛰면서 의료진이 거처를 구하기 어려워 채용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올해 7월에만 코스공항 이용객은 약 60만명, 산토리니공항은 약 46만명에 달했다.
기반 시설 부족으로 인한 관광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그리스 정부는 관광객과 숙박시설을 계속 늘리는 기존 방식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 8일 전국 관광지역을 개발 정도에 따라 5개 유형으로 구분하고 이미 관광객이 포화된 지역의 개발을 제한하는 ‘관광 특별공간계획’을 확정했다. 산토리니와 미코노스 등 관광 압력이 높은 지역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각 지역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관광객과 시설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뜻하는 ‘관광 수용능력’을 개발 정책에 반영하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