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으로 나오지나 말아야 할텐데 걱정이에요.”
국토교통부 4층 철도국 앞에서 만난 김 모 사무관은 본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는 최근 방영 중인 ENA·SBS Plus 연애 프로그램 ‘나는 SOLO’ 33기 모태솔로 특집에 ‘광수’로 출연 중인 국토부 5급 사무관이다(아직 방송 중이라 이름을 비롯한 구체적인 신상은 밝힐 수 없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촌장엔터테인먼트에서 방송 끝날 때까진 안 된다고 해서 아직은 좀 힘들어요. 대신 방송 끝나면 기자님 제일 먼저 해드릴게요(조만간 ‘100투더세종’ 인터뷰로 공개)”라며 수줍게 웃었다. 그가 가장 걱정한 것은 혹여 방송에서 ‘빌런’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공직자로서 방송에 비칠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부담도 묻어났다.
“광수가 세종시 공무원을 대표하는 얼굴로 나오는 거잖아.”
이번 국토부 광수의 ‘나는 솔로’ 출연은 관가에서도 꽤나 화제였다. 현직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의 예능 출연이라는 점도 있지만, 평소 언론이나 대외 행사에서 접하는 딱딱한 공무원의 모습이 아닌 ‘한 개인’의 면면이 전국에 가감 없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본 기자가 세종시 관련 연재를 시작하며 첫 아이템으로 낙점한 이유도 이와 맥락이 닿는다. ‘공무원’이라는 직업 뒤에 가려져 있던 일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대중이 행시 출신 공무원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엿볼 수 있는 창구가 되기 때문이다. 광수가 시청자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각인될지는 공직 사회 안에서도 큰 관심사였다.
김태병 철도국장은 “평소 성실하고 맡은 바 책임감이 있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응원해 줬다”고 전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모태솔로 특집이라는 포맷 특성상 자칫 가십성 흥미 위주로만 소비될까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당시 운영지원과장은 “역대 모태솔로편 짤(인터넷 밈)을 살펴보니 희화화된 것들이 많아 처음엔 출연을 반대했다”고 털어놨다. 대변인실에서도 “출연을 만류하려 했으나, 워낙 솔로 탈출 의지가 확고해 최종 승인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던 것 같다. 지금 광수의 순수함에 반한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으니 말이다.
“정확히 최초의 공무원은 아니다”
그렇다.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광수가 최초는 아니다. ‘나는 솔로’에 출연한 현직 행시 출신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은 맞지만, 연애 프로그램에서 공무원 출신을 보는 것이 아예 처음은 아니니 너무 부담 가질 일은 아니란 뜻이다.
광수 이전에 또 다른 ‘광수’가 있었다. 바로 24기 광수다. 물론 그는 출연 당시 공무원을 그만둔 스타트업 대표 신분이었다. 토목직 수석으로 공직에 입문해 새만금개발청 대변인실에서 근무했던 이력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또 다른 채널A 연애 프로그램 ‘하트시그널’에 출연했던 이규빈도 빼놓을 수 없다. 민족사관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행시에 합격해 총리실 근무를 앞두고 있던 그는, 연예인 못지않은 주목을 받으며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20년 전 ‘선배님’도 있었다”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까마득한 선배 공무원들의 예능 출연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연애 프로그램의 조상 격인 MBC ‘사랑의 스튜디오’에 출연했던 선배들을 본 기자가 찾아냈다. 안타깝게도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 이전이라 당시 영상은 찾지 못했다(관련 영상을 갖고 있는 분의 제보를 기다린다).
수습 공무원 시절 각기 다른 부처 소속 4명이 함께 출연해 무려 두 쌍의 커플이 탄생했고, 그중 한 명은 실제 결혼까지 골인했다. 다름 아닌 현재 중소벤처기업부의 노용석 1차관이다.
MBC ‘사랑의 스튜디오’ 1998년 11월 29일 방송분에 따르면, 노 1차관(행시 41회)은 당시 수습사무관 신분으로 이상헌 국토부 공항정책관(기술고시 33회), 최원영 중기부 소상공인정책실장(기술고시 33회), 그리고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부이사관으로 재직하다 한화로 이직한 것으로 전해지는 윤영진(행시 41회)과 함께 출연했다. 당시 방송에는 숙대 무용과 학생, 춘향선발대회 ‘미’ 출신 JTV 리포터, 이대 종교음악과 학생, 프리랜서 모델을 겸하던 경희대 지리학과 재학생 등이 함께 출연해 자리를 빛냈다.
그 결과 노 1차관은 춘향미인 선발대회 출신 리포터와 짝이 되어 결혼까지 골인했다. 이상헌 공항정책관도 커플 매칭에는 성공했으나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 공항정책관은 당시를 회상하며 “결혼은 다른 분과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