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가에 다자 회담을 풍자하는 표현이 있다. “문제는 회의장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문구가 해결될 뿐이다”는 말이다. 무언가 이루기보다 자국의 손해를 막는 일이 중요한 국제관계의 현실은 문제의 해결보다는 손해 없는 용어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체제 생존이 우선인 북한이나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경쟁하는 미국과 중국이 우리를 위해 양보할 리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을 위해 양보해서도 안 된다. 다만, 수요는 공급의 어머니란 말처럼 ‘평화의 수요’가 다른 당사자를 모을 동력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강대국 간의 경쟁은 우리 정부가 여러 차례 제안한 종전 구상이 실패한 배경이며, 지난 8·15 기념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제안한 다자 구상에 대해 북한은 물론이고 우리의 동맹국인 미국조차 반응을 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종전 구상 실현은 이처럼 차가운 현실을 인지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과거 김영삼정부의 4자회담, 노무현정부의 종전 선언, 문재인정부의 평화 체제 구상 등에서 한반도 종전과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다자 회담 구상이 제기된 바 있다. 시기를 거슬러 올라 정전협정 체결 직후인 1954년에도 전쟁의 당사자들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전을 위한 다자 회담을 개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문자 그대로 ‘무산’되었다.
1954년 제네바 협상에서의 갈등은 6·25전쟁에 참여한 유엔의 합법적 권위를 인정할 것인가에서 비롯되었다. 북한이나 중국은 이를 거부하며 한반도에서 미군과 유엔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7년에 개최된 남·북·미·중의 제네바 4자 회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고, 우리가 제안한 남북 간 신뢰 구축과 군사적 긴장 완화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아가 북한은 정전협정의 직접 당사자는 북·미 양자이며 한국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우겨댔다.
2000년대 이후 종전 구상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은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였다. 핵 문제가 협상의 조건에 추가되었고,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종전 선언의 앞에 있어야 한다는 ‘비핵화 입구론’이 등장했다. 하지만 북한이 완강히 거부하자 비핵화 조치가 종전의 결과로 있어도 좋다는 ‘비핵화 출구론’도 제기되었고, 그마저도 북한이 호응을 보이지 않자 아예 비핵화를 언급하지 말자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런데 종전 구상의 궁극적 목적은 한반도에 지속 가능한 평화를 만들기 위함인데, 가장 큰 위협인 북핵 문제를 배제한 종전이나 평화 체제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급히 먹다가 체하는 꼴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기한 종전 구상이 과거의 반복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차가운 현실과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은 시간이 걸려도 관련 당사자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고, ‘안 하면 손해’라는 인식이야말로 협력의 동력이 될 수 있다.
먼저 북한이 거부하기 어려운 대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북한에 힘이 되는 러시아와의 밀착을 차단해야 하고, 중국이 북한을 대화로 견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어려워 보여도 국제관계는 늘 변화하는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료되고 미·중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중국을 설득하는 일은 가장 어렵고 중요한 과제다. 북한 경제를 부양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중국이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는 한·중 관계 강화를 기반으로 북한을 대화로 견인하고자 했다. 하지만 중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동맹인 북한이지 경쟁자인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중국을 강제로 견인할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미국이 나서야 한다. 다행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관심이 있고 시진핑 주석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철저한 한·미 공조를 통해 종전 구상을 실현한다’는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이 같은 ‘先 한·미 공조, 後 대중 협력, 終 북한 대화 견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평화의 수요’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이어지면 미국의 대중 포위망이 견고해져 중국의 장기적 이익에 손해가 된다. 한국의 독자적인 군사력과 굳건한 한·미동맹은 북한이 감히 넘볼 수 없이 견고하기에 체제 생존의 차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우리의 종전 구상에 대한 협력이 그들에게 ‘손해 보지 않는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