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형사재판소(ICC)의 아카네 도모코(赤根智子) 재판관이 2024년 3월 일본인으로는 처음 재판소장에 선출됐을 때 일본 정부의 기쁨은 대단했다. ICC는 유엔 산하 기관이고 일본은 유엔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의 수장 등 고위직을 놓고 중국과 치열하게 경합하는 중이다. 아카네 소장의 탄생을 두고 당시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아카네 소장에 대한) 높은 평가를 나타내는 것으로 큰 의의가 있다”며 “재판소장으로서의 새로운 활약을 기대한다”고 환영했다. 마침 역시 유엔 산하 기구인 국제사법재판소(ICJ) 소장도 2025년 3월 이래 일본인 이와사와 유지(岩沢雄司) 재판관이 맡고 있으니 ‘일본이 국제법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아카네 소장은 1956년 일본 아이치(愛知)현에서 태어났다.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도쿄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2년 검사로 임용됐다. 지방검찰청부터 최고검찰청(우리 대검찰청 해당)까지 각급 검찰청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고 검사정(우리 지검 검사장 해당)으로 진급했다. 검사를 그만두고선 나고야대, 주쿄대 등에서 형사법을 강의했다. 2018년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을 대표해 재판관으로 뽑혔다. 오는 2027년 3월이면 9년 임기가 끝나는 만큼 총 18명의 재판관들 중에서도 최고참에 해당한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ICC에 시련이 닥쳤다. 무력으로 남의 나라 영토를 빼앗는 행위는 유엔 헌장 등 국제법 위반에 해당한다. 전쟁 발발 이듬해인 2023년 3월 ICC는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으로 간주해 그를 상대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격노한 러시아 정부는 즉각 영장을 청구한 ICC 검사장과 심사를 담당한 재판관들에게 수배령을 내렸다. 아카네 소장도 제재 명단에 올랐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ICC 회원국이 아닌 미국은 푸틴 체포영장 발부에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2024년 11월 당시 중동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던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 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뒤 미국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을 건드릴 정도면 미국 대통령조차 체포 대상이 될 수 있겠다고 여긴 것이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18일 아카네 소장을 미 행정부의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루비오는 “(아키네 소장이) ICC 관할권에 동의하지 않은 국가 당국자들을 조사, 체포, 구금 또는 기소하려는 ICC 노력에 직접 관여해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루비오는 앞서 “국가 주권에 대한 ICC의 위협 등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동맹과 힘을 합쳐 ICC를 해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트럼프를 겨냥한 ICC의 조사 또는 체포 시도를 원천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은 아카네 소장의 모국인 동시에 미국의 맹방이다. 일본 정부 입장이 참으로 난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