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3.2%로 예상했다. 불과 석 달 만에 성장률 전망치를 0.7%포인트 상향한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예상보다 강하게 이어지면서 수출과 설비투자 호조세가 성장률을 끌어 올릴 것이란 예측이다. 다만, 고용 유발 효과가 크지 않은 반도체에 성장세가 집중되면서 취업자 수 증가폭이 종전 전망보다 6만명 줄어드는 등 지표상 성장률과 체감 경기가 괴리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KDI는 19일 이런 내용을 담은 ‘2026년 8월 KDI 경제전망 수정’을 발표했다. 전망에 따르면 KDI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3.2%로 제시해 종전(5월) 전망보다 0.7%포인트 올려 잡았다. 이는 국내외 주요 기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앞서 정부는 3.0%, 한국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은 각각 2.6%를 전망한 바 있다. KDI는 내년 성장률 전망치 역시 종전 1.7%에서 2.2%로 0.5%포인트 상향했다.
성장률 상향의 핵심 요인은 글로벌 반도체 경기 호황이다. KDI는 성장률 상승폭(0.7%) 중 0.6%는 반도체 관련 상승 효과라고 설명했다. 실제 세계반도체무역통계(WSTS)에 따르면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매출액은 올해와 내년 각각 302.0%, 36.0%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KDI는 이를 반영해 올해 상품수출이 반도체 등 정보통신기술(ICT) 품목을 중심으로 8.6% 늘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종전보다 눈높이를 4.1%포인트 높인 것이다. 내년 상품수출도 종전 대비 3.1%포인트 상향한 5.0%로 내다봤다.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힘입어 설비투자도 올해와 내년 4.6%포인트씩 각각 상향해 7.9%, 7.0% 증가할 것으로 관측했다.
경상수지는 이례적인 수준의 대규모 흑자를 예상했다. KDI는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3597억달러로 종전 전망보다 1207억달러 늘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역시 기존 전망치보다 1425억달러 많은 3562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해(1231억달러) 대비 3배 정도 급증하는 셈이다.
문제는 반도체 중심의 성장세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올해 취업자 수 증가폭 전망치는 5월에는 17만명이었지만 이번에 11만명으로 6만명 하향 조정됐다. 건설업과 반도체를 제외한 업황 전망이 밝지 않은 데다 서비스업도 고용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치도 2.3%로 0.1%포인트 상향되는 데 그쳤다. 실질임금 상승률이 낮은 수준에 그치는 등 경제성장의 성과가 다수 가계의 소득 개선으로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미루 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장은 “올해 글로벌 AI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초호황으로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 성과가 민간소비나 고용 같은 다수 가계의 소득으로는 아직 충분히 확산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라면서 “성장의 중심이 고용 유발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반도체에 집중돼 있고, 실질임금 상승률은 지난 10년 평균과 비교해도 높지 않아 경제성장률과 체감 경기가 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KDI는 우리 경제가 반도체 수요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점은 위험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수익성에 대한 우려로 글로벌 AI 투자 수요가 위축되거나 다른 반도체 생산국과의 경쟁 심화로 국내 반도체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할 경우, 성장세가 빠르게 둔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