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일본인 ICC 소장 제재…난처해진 日 “매우 유감”

미국, 일본 등 “ICC 지원 중단 기대”
최대 자금 출연국 일본 ‘곤혹’
일본 외무성 “법치주의 수호 ICC 지지”

“국제사회에서 법의 지배는 평화와 번영의 기반이 됩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국제사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법기관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중대한 범죄행위의 근절과 예방을 위한 국제 형사법정으로서 각각 법치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가운데 두 법원의 수장을 일본인인 이와사와 유지 소장과 아카네 도모코 소장(사진)이 맡고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1월7일 두 일본인 소장을 접견한 뒤 엑스(X)에 올린 글이다. 그는 “저는 두 소장에게 국제사회에서 법치주의를 유지·강화하기 위해 앞으로도 일본이 두 법원을 확실히 지원할 것이니 힘내 달라는 진심어린 메시지를 전했다”고도 했다.

 

ICC 최대 자금 출연국이자 ICC에 대한 확실한 지원을 약속했던 일본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다. 일본의 동맹국인 미국이 18일(현지시간) 아카네 소장을 제재 대상에 올리면서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성명에서 “ICC의 권력 남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달 시작한 외교 캠페인을 촉진하고자 나는 일본의 아카네 도모코 ICC 소장과 압둘라예 세예 수석 공판 법률가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아카네 소장과 그의 가족은 미국 입국이 금지되고 미국 내 자산도 동결된다. 아사히신문은 “신용카드 등 사용이 어려워지고 미국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제재 대상자와의 경제 거래도 금지되기 때문에 전 세계 금융기관이 아카네 소장과의 거래를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8월 제재 대상이 된 캐나다 출신 킴벌리 프로스트 ICC 판사는 전자책 서비스 킨들과 차량 호출 서비스 우버 사용도 못 하고 있다고 아사히에 토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AP연합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번 제재 조치가 일본 정부를 향한 것이 아니라면서도 일본 등 동맹국이 “ICC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교도통신에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ICC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한 미국 군인의 전쟁 범죄 수사를 승인하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해 전쟁 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을 비난해 왔다. 이번에 아카네 소장을 제재 대상에 올리면서 ICC에 대한 압박을 한층 강화한 모습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ICC에 가입하지도 않은 미국, 이스라엘인을 수사 대상에 올린 것은 ‘관할권 위반’이자 ‘주권 침해’라고도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일단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냈다. 외무성은 이날 대변인 명의 성명을 내고 “일본은 국제사회의 가장 중대한 범죄를 기소, 처벌하며 법치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ICC의 노력을 일관되게 지지해 왔다. 이 관점에서 이번 조치는 매우 유감스럽다”며 “일본은 관련 국가들과의 소통을 유지하는 한편 국제사회에서 법치주의를 강화하는 데 계속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무성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에 “일본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미국에는 일본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해 왔다”고 말했다. 외무성 다른 관계자는 “일·미(미·일) 관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