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상장사 퇴출’ 속도 조절이 필요한 이유

‘동전주·시총미달’ 종목 속속 지정
당국 앞당긴 기준 적용 신중 기해야
나스닥, 기술평가 좋으면 퇴출 안 해
기술력·성장 가능성 등 복합평가를

최근 주식시장이 ‘상장폐지 주의보’로 어수선하다.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된 상장규정 개정안에 따라 부실기업 퇴출을 위한 상폐 요건이 대폭 강화된 여파다. 이에 따라 주가가 30거래일 연속 1000원 미만인 ‘동전주’나 상장 유지에 필요한 시가총액 기준(코스피 300억원·코스닥 200억원)을 밑돌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는데, 지난 12일 36개(코스피 9, 코스닥 27)가 처음 이름을 올렸다. 지난 14일까지 총 39개로 늘었는데 코스닥이 30개에 이른다. 9개 종목 모두 이미 거래 정지된 코스피와 달리 코스닥은 직격탄을 맞았다. 12일 지정된 관리종목 27개 중 23개가 이튿날 평균 8% 넘게 폭락했다.

퇴출 위기에 내몰린 상장기업은 주가를 끌어올려 최종 상폐 요건에서 탈출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지정 후 90거래일 중 연속 45거래일 이상 상폐 기준을 웃돌아야 하는 만큼 매우 까다롭다. 관리종목이 100개 안팎까지 늘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관리종목 지정 자체가 ‘낙인’으로 작용하는 현실도 상폐 탈출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황계식 논설위원

부실한 상장기업의 신속한 퇴출이 혁신기업을 원활히 지원하는 지름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특히 그간 시총이 적고 변동성이 심한 동전주 등이 심심찮게 주가 조작에 악용됐던 코스닥 시장에선 나머지 건실한 상장기업에 대한 투자심리가 개선되는 반사 효과도 기대된다. 코스닥에선 최근 20년간 1353개사가 신규 상장되는 동안 415개사가 퇴출당하는 ‘다산소사(多産少死)’ 구조가 이어지면서 성장기업의 사다리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코스닥 지수가 30년 전 출범 당시 기준점인 1000포인트를 한 달 넘게 밑도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



증시 체질을 ‘다산다사(多産多死)’로 개선해야 하지만, 퇴출에만 무게가 너무 쏠리다 보니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당장 시총 기준은 당초 한국거래소 방침보다 6개월 앞당겨져 7월부터 시행됐고, 최종 코스피 500억원·코스닥 300억원 적용 시점도 내년 1월로 종전보다 1년이나 빨라졌다. 결국 최근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몇몇 상장사가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상폐 결정 후 가처분을 신청하는 게 보통인데, 관리종목 지정 단계에서부터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실제 상폐 사례가 나올 것으로 전망되는 오는 10월부터 소송은 봇물이 터질 것으로 우려된다.

관리종목 지정에 반발한 기업들이 상폐 기준의 급격한 상향을 문제 삼고 있는 만큼 대응할 시간을 충분히 줄 필요도 있어 보인다. 나아가 투자자 피해를 고려해서라도 당국은 더욱 강화된 시총 기준을 예정대로 적용할지 신중을 기하길 바란다. 상폐 추이를 예의주시하면서 벤처·중소기업계 의견 수렴도 게을리하지 않길 기대한다.

벤처·중소기업계 지적대로 시총이나 주가 등 정량지표만으로 혁신기업의 미래가치를 재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연구·개발(R&D) 역량을 비롯한 기술력, 새로운 시장의 창출 등 성장 가능성, 재무상태, 고용과 수출 등 미래 가능성까지 함께 살펴보는 복합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퇴출 기준의 무게중심도 외형 지표에서 지배구조 등 본질로 점차 바꿔가는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상장기업이 일시적인 시장평가만으로 재도전의 기회까지 잃지 않도록 제도적인 미비점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코스닥이 벤치마킹한 미국 나스닥은 상장 기준을 강화하고 있지만, 기업의 이의신청 등 보완장치도 촘촘히 준비해 왔다. 더불어 수익을 만드는 데 긴 시간이 걸리는 기술기업 특성을 반영해 옥석을 가리는 기준도 합리적으로 설계하는 데 힘썼다. 테슬라는 2010년 나스닥 상장 후 10년간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어도 퇴출을 면할 수 있었는데, 기술평가가 좋으면 적자를 봐도 상장을 폐지하지 않는 원칙이 확고히 자리 잡은 덕이다. 당연히 테슬라에 장기간 투자해 온 일반주주도 잭팟을 터뜨렸다. 혁신기업에 투자해 놓고도 언제 상폐 대상이 될지 몰라 마음을 졸여야 하는 우리로선 부러운 대조되는 환경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