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김민석의 오디세이

가장 빛나려던 순간, 한 번의 잘못된 판단과 행보로 ‘추락’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다. ‘차세대 주자’로 부상한 그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며 당을 떠났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철새’ ‘배신자’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오랜 정치적 좌절을 딛고 이재명정부 첫 총리를 거쳐 161석 거대 여당을 이끄는 수장으로 돌아온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신임 당대표의 이야기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한 그는 199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한 ‘DJ키즈’이자 86그룹의 대표 주자였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32세 최연소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2002년에는 38세 나이로 여당 서울시장 후보에 오르며 차세대 주자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탈당 이후, 그는 ‘오디세우스’처럼 원외를 오래 떠돌아야 했다. 2004년 17대 총선 낙선 뒤에는 미국 뉴욕주립대 등에서 유학했고, 2008년 당 최고위원으로 재기하는 듯했지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됐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에야 ‘합당’ 형식으로 힘겹게 당에 복귀했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 국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원외 생활 18년 만이었다.

김 대표는 지난 17일 결선투표 끝에 정청래 전 대표를 누르고 새 대표에 선출됐다. 총리에 이어 집권 여당 대표까지 오르며 여권의 유력한 대권후보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총리와 집권당 대표를 모두 경험한다는 것은 정권 2인자로 불릴 정도로 잘 나간다는 의미이지만, 권력의 정점에 오르는 건 별개의 문제다.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1987년 이후 총리와 집권당 대표를 모두 경험한 정치인은 5명이나 되지만, 여당 대선후보가 된 사람은 이회창이 유일했다. 물론 그마저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정권의 계승을 넘어 국민들에게 정권의 한계를 넘는 비전과 스토리, 희망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로망’이라던 집권 여당 대표에 선출된 김 대표의 앞에는 당내 분열 봉합은 물론 당·청 관계의 재정립, 야당과의 협치 등 난제가 수두룩하다. 수많은 난관을 뛰어넘고 그는 자신이 희망해온 정치에 가닿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