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내주고 세수 ‘0원’…여주시장의 눈물과 역차별 [오상도의 경기유랑]

울어버린 시장, 반도체 세수 토로…여주 첫 재선 시장 이충우 인터뷰
용인 반도체 산단에 남한강 용수 제공…법적 허점에 지방세 不可
‘핵심 세원’ 발전소마저 합병으로 세수 증발…道 세수 재배분 소외
민선 9기 1호 결재로 ‘원도심 재생’…“소외 지역에 정당한 보상”
‘유랑(流浪)’은 정처 없이 헤매는 발걸음이 아닙니다. 땅이 전하는 언어를 들으려 걸음을 늦추는 일이자, 사람과 공간이 나누는 다정한 대화입니다. 타성에서 벗어나 경기도라는 넓은 지도 위를 천천히 음미하며 거니는 기록입니다. 길 위에서 건져 올린 고요한 울림과 예리한 시선이 여러분의 일상에도 작은 여유와 깊은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이충우 여주시장이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며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여주시 제공

“깨끗한 물을 지키느라 규제만 잔뜩 받아왔는데, 세금으로 받는 보상마저 뺏으면 어떡하나요?”

 

이충우 경기 여주시장은 이달 초 시청 상황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국가 첨단산업을 위해 남한강 용수와 전력 인프라를 내어 주고 수도권 중첩 규제와 환경 부담을 홀로 감내해 왔지만, 돌아온 대가는 ‘세수 0원’이라는 허탈한 성적표였기 때문이다. 이 시장의 눈물은 역차별에 신음하는 시민의 답답한 현실을 대변한 분노였을 것이다.

 

2013년 시(市) 승격 이후 최초의 ‘재선 시장’이란 타이틀을 얻은 이 시장은 최근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이처럼 속내를 토로했다. 민선 9기 시정의 막을 올리며 현장 행보에 고삐를 바짝 쥐었지만 암초를 만났다.

 

◆생명수 품에 안은 여주, 규제·용수시설만 떠안아

 

이 시장과 만나기 위해 여주로 향하던 고속도로 위 수은주는 섭씨 40도를 넘나들었다. 승용차 속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강변을 바라보니 문득 시구(詩句)가 떠올랐다.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시문집에 실린 ‘여강피서(驪江避暑)’의 한 구절이다. “한양의 푹푹 피어오르는 무더위를 피해 여강(여주 남한강)으로 배를 띄우니, 시원한 물 바람이 옷깃을 적시고 맑은 강물이 가슴을 뚫어주는구나.”

 

정약용은 한양의 삼복 더위를 피해 여주 여강으로 유람을 떠나 피서를 즐기며 한시를 여럿 남겼다. 이 중 여강피서는 뙤약볕 아래 강물 위로 불어오는 강바람과 시원한 여강의 청량함을 대비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목은 이색(李穡)의 ‘신륵사 강월헌을 지나며’도 빼놓을 수 없다. “한여름 뙤약볕에 강변 바위가 화로처럼 달아오르나, 신륵사 강월헌에 앉아 여강을 바라보니 강바람에 얼음 같은 기운이 감도는구나.”

 

고려 말 학자 이색은 여름철 여주 신륵사와 강월헌에 머물며 강변의 작렬하는 여름 열기와 사찰에서 느끼는 청량한 강바람의 대비를 시문으로 표현했다. 

 

갑자기 시구를 떠올린 건 감상적 분위기에 젖어 낭만(浪漫)을 늘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주시 전경

수십년간 수도권정비계획법과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중첩 규제를 감내하며 개발 기회를 놓친 ‘도시’ 여주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맑은 생명수를 품에 안은 여주는 정작 수도권에 물을 공급하면서도 제대로 대가를 챙기지 못했다. 자연의 축복이 오히려 짐이 된 셈이다.

 

이제는 국가 첨단산업에 꼭 필요한 물까지 공급하지만, 지방세 0원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세계일보 기자와 인터뷰하는 이충우 여주시장(오른쪽). 여주시 제공

◆“희생에 정당한 보상”…기여 가중 배분제 촉구

 

이 시장은 전후 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물과 땅을 여주가 댔지만 과실은 다른 곳이 가져가는 기형적 구조라는 주장이다.

 

“여주시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구축을 위해 세종대왕면의 남한강 취수장에서 들녘을 가로질러 하루 26만5000t의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7.2㎞에 달하는 용수관로 부지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현행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용수 시설이 준공된 뒤 용인시로 무상 귀속되면서, 여주시는 36억원을 웃도는 취득세를 비롯해 (매년 20억원대로 추산되는) 세금 부과 권리마저 박탈당했습니다.”

 

앞서 설치된 이천 SK하이닉스로 향하는 취수 시설과 용수관로(10.7㎞)의 경우, 기업 소유여서 여주시가 매년 법인지방소득세를 배분받아왔다. 지난해 기준 21억원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새롭게 설치된 용인 산단의 용수시설은 용인시 재산으로 분류돼 법인지방소득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이 깨끗한 물을 지키느라고 규제만 잔뜩 받아왔지요. 다시 물 끌어간다고 피해를 보고 있고, 아무것도 얻는 게 없어요. 앞선 협상에서 산업단지를 만들고 일부 규제 완화하고 그런 건 규제받는 것에 비하면 아주 적은 거지요. 소소하게라도 세금으로 받을 수 있는 걸 못 받게 되니 황당합니다.”

 

이충우 여주시장이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여주시 제공

이 시장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잔뜩 쉰 목소리로 핵심 세원마저 붕괴했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여주시 법인지방소득세 1위였던 여주에너지서비스(복합화력발전소)가 SK이노베이션에 흡수합병된 후 연결납세 방식이 적용된 때문이다. 소음과 대기오염은 그대로인데 매년 거두던 35억원 상당의 세수는 올해 사실상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경기도가 추진 중인 반도체 법인 지방소득세 ‘공동세원화’ 논의에서도 필수 기반시설을 제공하는 여주시는 소외될 위기에 놓였다. 도는 용인·이천·화성 등 생산시설이 있는 도시의 세수를 도세로 전환해 재분배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생산시설은 없어도 반도체 생태계를 떠받치는 기반시설 제공 지역은 배제돼 있다.

 

이 시장은 “더는 국가사업이라는 명분으로 특정 지역의 일방적 희생만 요구해선 안 된다. 정부와 정치권, 경기도는 법적 허점을 보완하고 상생기금 등 실질적 재정 보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여주시 범시민대책위원회는 국가 전략산업에 대한 희생 강요를 비판하며, 법인지방소득세 배분 기준에 용수 공급량과 환경·상수원 규제 부담을 반영하는 ‘기여·희생 지역 가중 배분제’ 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수도권 동부 핵심 자족도시’ 전환 선언

 

재선에 성공하며 민선 9기 시정을 다시 이끌게 된 이 시장은 얼마 전 ‘수도권 동부 핵심 자족도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자연보전권역이라는 중첩 규제의 한계를 정면 돌파하며 원도심 재생과 첨단산업 육성, 광역 교통망 확충, 체류형 관광도시 조성을 기치로 미래 100년의 기틀을 다지겠다는 구상이다.

 

취임 직후 첫 결재로는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을 선택했다. 신청사 이전에 따른 원도심 공동화 우려를 해소하고, 오랜 기간 인내해 온 주민들에게 성과로 보답하겠다는 설명이다. 

 

여주 남한강의 출렁다리

여주시는 6개 도시재생 사업을 동시다발로 추진한다. 옛 제일시장 부지에는 687억원을 투입해 주차장 385면과 청소년 창작센터, 상생 상가가 들어서는 지하 2층~지상 4층 규모의 복합건축물을 신축한다. 옛 잠사공장인 경기실크 부지는 북카페와 전시관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되살린다. 남한강 테라스 사업을 통해 수변 상권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방침이다.

 

산업 지형을 바꿀 핵심 동력은 ‘가남 반도체 산업단지’다. 가남·점동·강천 일대 16개 일반산업단지 조성 사업 중 가남 일대 5개 산단(27만㎡) 계획이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아울러 강천역 신설과 GTX-D 노선의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반영에 총력을 기울이고, 누적 방문객 200만명을 넘긴 남한강 출렁다리를 중심으로 체류형 관광 생태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신륵사 관광단지 여행자센터 개소와 출렁다리 남단 80실 규모의 콘도미니엄 민자 유치를 통해 ‘다녀가는 관광’에서 ‘머무는 관광’으로 패러다임 전환도 꾀한다.

 

이 시장은 “시작한 사람이 끝을 본다는 각오로 약속한 변화를 확실한 결과물로 완성하겠다”며 “기업과 청년이 찾아오는 살기 좋은 도시를 완성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