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들 진짜 긴장해야겠네… MZ 女 지갑 사로잡은 e스포츠 ‘팬덤 경제’ [권준영의 머니볼]

T1 협업 굿즈, 30분 만에 억대 거래액…1인 평균 8만6000원
2030세대 거래액 비중 70%…월즈 우승 굿즈 프리세일 134억원
베트남 HLE 팬페스트 3600석 매진…VIP 티켓 2분 만에 완판
[권준영의 머니볼]은 스포츠를 경기장 안의 스코어만으로 읽지 않는다. 선수와 팬, 기업과 자본, 기술과 시장이 얽혀 움직이는 스포츠 산업의 흐름을 데이터와 수치로 들여다본다. IT·인공지능(AI) 융합부터 스포츠 금융, 생활체육, 시니어 스포츠까지 전통적인 스포츠의 경계를 넘어 커지는 새로운 시장을 좇는다. 숫자에 담긴 돈의 흐름을 따라 스포츠 산업의 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읽고, 그 변화가 만들어갈 스포츠의 ‘다음’을 짚는다.

 

“경기 한 번 보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굿즈도 안 살 수 없죠.”

 

e스포츠 팬덤의 소비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게임을 즐기고 경기를 시청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좋아하는 선수의 유니폼을 사고, 구단 굿즈를 모으고, 팬미팅과 팝업스토어를 찾아간다. 경기장을 찾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숙박까지 하는 팬도 있다. 선수와 구단의 이름이 붙은 패션·뷰티·식품 상품에도 지갑을 연다.

 

프로스포츠의 인기는 이제 ‘조회수’나 ‘시청자 수’만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팬이, 얼마나 자주, 무엇에 돈을 쓰느냐가 e스포츠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심에 세계적인 프로게임단 T1이 있다.

 

T1과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4910이 지난 4월 공동 기획한 굿즈 컬렉션 ‘MOMENTS of T1’은 판매 시작 30분 만에 억대 거래액을 기록했다. 11일간 진행된 행사에서 구매자 1인당 평균 구매 금액은 8만6000원이었다. 상품 평균 단가가 3만원대 초반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팬 한 명이 평균 2.5개 이상의 상품을 구매한 셈이다. 전체 거래액에서 2030세대가 차지한 비중은 약 70%에 달했다.

 

팬들이 무엇을 샀는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20대 판매량 1위는 ‘T1 히퍼 피규어 세트’, 30대 판매량 1위는 ‘T1 시그니처 피규어’였다. 여성 고객 사이에서도 피규어의 인기가 두드러졌다. ‘T1 히퍼 피규어 세트’가 전체 21개 품목 가운데 14%로 가장 높은 판매 비중을 차지했고, ‘T1 시그니처 피규어’가 13%, ‘T1 하트 스크런치’가 9%로 뒤를 이었다.

 

팬덤의 소비력은 일회성 협업상품에 그치지 않는다. T1은 2024년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월즈) 우승 이후 진행한 굿즈 프리세일에서 13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구단 전체의 외형도 커졌다. T1의 2025년 매출은 886억4485만원으로 전년보다 약 80%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5억1241만원을 기록해 2024년 88억5055만원 영업손실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창단 이후 첫 영업이익 흑자다.

 

물론 굿즈가 T1의 전체 매출을 설명하는 전부는 아니다. 스폰서십과 콘텐츠, 글로벌 사업 등 여러 수익원이 함께 작용한다. 그럼에도 팬들이 실제 지갑을 여는 소비가 구단의 사업 영역을 넓히는 중요한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팬덤이 단순히 구단을 알리는 홍보 자산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매출을 만들어내는 사업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팬덤의 소비가 이뤄지는 공간도 넓어지고 있다. T1 홈그라운드는 경기 관람을 넘어 콘텐츠와 MD, 기업 파트너십이 결합된 복합적인 소비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팬에게 경기 티켓은 소비의 끝이 아니라 굿즈와 콘텐츠, 협업상품으로 지갑을 여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이같은 팬덤의 소비력은 e스포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통 프로스포츠에서도 이미 확인되고 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의 2025년 프로야구 관람객 조사에서 여성 관람객 비중은 56.7%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조사에서는 응원팀 용품 구매에 쓴 연평균 금액이 20대 여성 23만7000원, 30대 여성 27만3000원으로 전체 관람객 평균 23만5000원을 웃돌았다. 야구장에서 확인된 ‘여성 팬덤의 소비력’은 e스포츠에서도 새로운 소비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e스포츠 팬덤은 국경도 넘는다. 지난 6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화생명e스포츠(HLE) 글로벌 팬페스트는 VIP 100석과 일반 3500석 등 3600석 규모로 마련됐다. VIP 티켓은 250만동(약 14만6500원)이라는 가격에도 판매 시작 2분 만에 매진됐다. 일반석을 포함한 전체 3600석도 모두 팔렸고,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까지 합쳐 현장에는 약 5000명이 운집했다.

 

행사 규모도 해마다 커졌다. HLE가 베트남에서 개최한 팬페스트는 2024년 1500석에서 2025년 2500석, 2026년 3600석으로 확대됐다. 2년 만에 행사 규모가 2.4배로 커진 셈이다. 행사장 굿즈 부스에는 수백m에 이르는 대기 행렬이 생기며 해외 팬덤의 높은 구매력을 보여줬다.

 

한국 구단을 향한 해외 팬들의 소비는 단순한 경기 관람에 그치지 않는다. 유니폼과 공식 굿즈를 사고, 한국에서만 판매되는 상품을 구하기 위해 공동구매에 참여하거나 현지 지인을 통해 구매하기도 한다. 한국 선수와 구단의 이름 자체가 소비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e스포츠 팬덤의 구매력에 패션업계도 주목하고 있다. 스파오는 올해 한화생명e스포츠와 협업 상품을 선보였다. 더현대 서울에서 열린 팝업에는 온라인 사전 예약에만 1만5000명 이상이 몰렸고, 예약은 1분 만에 마감됐다. 현장에서도 대기 행렬이 이어지며 한때 885팀이 몰릴 정도로 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