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수입차 샀다길래”…결혼자금 1억 넣었더니 6000만원 됐다 [숫자 뒤의 진실]

신용융자 38.6조→27.4조 급감 뒤 30.9조대…열흘새 12.6%↑
10개 증권사 20대 잔고 1888억→4239억…증가율 124.5%
삼성전자·SK하이닉스 9.7조 몰려…전체 신용융자의 31.4%

“비싼 수입차 샀다길래?”

 

스마트폰으로 주식시장 차트를 확인하는 모습. 국내 증시가 급등락을 반복하는 가운데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다시 30조원대로 불어나면서 레버리지 투자 위험에 대한 경고가 커지고 있다. Unsplash

직장인 김모(39) 씨는 요즘 주식 앱을 잘 열지 않는다. 한때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봤지만 지금은 계좌를 확인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시작은 주변의 성공담이었다. “주식으로 수입차 한 대 뽑았다”는 친구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급해졌다. 올해 초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로 투자를 시작한 그는 지난 7월 초 결국 1억원짜리 적금을 깨 국내 반도체 대형주에 넣었다.

 

한 달여 만에 계좌 평가액은 약 6000만원으로 줄었다. 결혼 자금으로 모아뒀던 돈에서 4000만원가량이 평가손실로 사라졌다. 그는 이후 반도체 ETF에도 추가 투자했다. 부모가 모아둔 퇴직금 일부까지 반도체 ETF에 들어가면서 집안 분위기도 무거워졌다.

 

김씨는 신용융자를 이용하지는 않았다. 그의 사례는 포모(FOMO·소외공포감)에 따른 무리한 집중투자를 보여준다. 여기에 증권사 돈까지 빌린 신용투자는 주가 하락 때 담보 부족과 반대매매라는 추가 위험에 노출된다.

 

증시가 급락과 급등을 반복하면서 레버리지를 이용한 투자자는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뿐 아니라 강제 청산 위험까지 떠안아야 했다.

 

◆이틀간 7.3% 하락…다시 흔들린 개미 계좌

 

국내 증시는 8월 들어 반등에 나섰지만 변동성은 가라앉지 않았다. 코스피는 지난 14일 장중 처음으로 7000선을 넘어 7010.86까지 올랐다. 종가는 6977.94였다.

 

18일 1.55% 떨어진 6869.83으로 밀린 데 이어 19일에는 5.80% 급락한 6471.17로 마감했다. 글로벌 장기 국채금리 급등과 미국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 우려로 반도체주가 크게 떨어진 여파로 이날 오전 9시6분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올해 유가증권시장에서 발동된 48번째 사이드카이자, 매도 방향으로는 25번째다.

 

14일 종가와 비교하면 두 거래일 만에 7.26% 떨어졌다. 반등을 믿고 다시 빚을 내 주식을 산 투자자에게는 레버리지 위험이 다시 한번 현실로 나타났다.

 

앞서 7월 말에는 더 극단적인 장세가 펼쳐졌다. 코스피는 7월 28일 10.84% 급락한 6023.66으로 밀린 데 이어 29일에도 5.98% 떨어진 5663.24로 마감했다. 30일에는 1.23% 추가 하락한 5593.56까지 내려갔다.

 

31일에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코스피는 하루 만에 1001.89포인트, 17.91% 폭등한 6595.45로 치솟았다. 상승률과 상승폭 모두 역대 최대였다.

 

지수는 급락분 상당 부분을 빠르게 되찾았지만, 빚을 내 투자한 사람들의 계좌는 사정이 달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6월 24일 38조6328억원까지 불어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7월 31일에는 28조9349억원으로 줄었고, 8월 4일에는 27조4038억원까지 떨어졌다.

 

6월 고점과 비교하면 11조2290억원, 29.1% 감소한 규모다. 이 감소액을 모두 강제 청산으로 볼 수는 없다. 투자자가 주식을 팔아 신용융자를 상환하거나 현금을 넣어 빚을 갚은 물량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가 별도로 집계하는 위탁매매 미수금 결제 불이행에 따른 반대매매 금액은 7월 한 달간 9927억5400만원이었다. 특히 7월 30일 1037억8900만원, 31일 1220억1200만원 등 이틀 동안에만 2258억100만원어치가 처분됐다. 7월 전체 반대매매의 22.7%가 마지막 이틀에 몰렸다.

 

이 통계는 신용융자 전체가 아닌 ‘위탁매매 미수금’에 따른 반대매매 실적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반대매매로 주식이 처분된 투자자는 이후 주가가 반등하더라도 그 상승분을 온전히 누리기 어렵다. 급락장에서 레버리지가 손실을 키우는 대표적인 구조다.

 

◆20대 빚투, 1년 새 124.5%↑

 

청년층의 신용투자 증가세도 가파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국내 주요 10개 증권사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대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지난해 4월 둘째 주 1888억원에서 올해 4월 둘째 주 4239억원으로 늘었다.

 

1년 새 2351억원, 124.5% 증가한 규모로 증가율만 놓고 보면 30대(94.4%), 40대(약 87%), 50대(약 85%)보다 높았다.

 

전체 연령대로 범위를 넓히면 70대 이상 증가율이 140.7%로 가장 높다. 20대 증가세를 ‘전 연령대 중 가장 빠르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자산과 소득 기반이 약한 20대에서 신용융자가 두 배 넘게 늘었다는 점은 위험 신호로 꼽힌다.

 

상승장에서 빚까지 내 주식을 사는 배경에는 포모도 자리 잡고 있다. SNS에는 수익을 낸 계좌 인증이나 큰돈을 벌었다는 투자 경험담이 끊이지 않는다.

 

손실을 본 투자자는 계좌를 적극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화면만 보고 있으면 자신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이 모두 돈을 버는 것처럼 느끼기 쉽다.

 

월급만 모아서는 집을 마련하거나 자산 격차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불안도 겹친다. 축적한 자산이 적은 청년일수록 짧은 시간에 수익을 키우기 위해 레버리지에 손을 댈 유인이 커질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신용거래가 상승기에는 매수 수요를 확대하지만, 하락기에는 반대매매를 통해 매도 압력을 증폭시키는 경기순응적 특성을 지닌다고 분석했다.

 

특히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고 위험을 회피할 수단이 제한적인 국내 시장에서는 레버리지가 축소되는 과정에서 가격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7조까지 줄었던 ‘빚투’, 열흘만에 3.5조 증가

 

더 눈여겨볼 대목은 급락장에서 줄었던 빚투가 증시 반등과 함께 다시 불어났다는 점이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8월 4일 27조4038억원까지 떨어진 뒤 7거래일 연속 증가해 13일 30조9263억원까지 불었다.

 

14일에는 전날보다 587억원 감소한 30조8675억원을 기록하며 연속 증가세가 멈췄다. 8월 4일과 비교하면 열흘 만에 3조4637억원, 12.6% 늘어난 규모다.

 

초단기 빚투는 오히려 줄었다. 14일 기준 위탁매매 미수금은 8670억원으로 2025년 1월 6일 이후 19개월 만에 가장 적었다. 같은 날 미수금 결제 불이행에 따른 반대매매 금액도 37억원으로 내려왔다.

 

만기가 상대적으로 긴 신용융자 잔고는 30조원대를 유지하지만 미수거래는 줄어들며 서로 다른 흐름을 보인다. 이 때문에 ‘빚투가 전반적으로 줄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반도체 대형주로의 쏠림도 두드러진다. 8월 14일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신용잔고는 각각 4조8821억원, 4조8121억원으로 집계됐다. 두 종목을 합치면 9조6942억원이다.

 

전체 신용거래융자 잔고와 집계일을 같은 날로 맞춰 비교하면 두 종목의 비중은 31.4%다. 신용융자 자금 10원 중 3원 이상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몰려 있다.

 

지난달 31일과 비교하면 삼성전자 신용잔고는 9.4%, SK하이닉스는 20.9% 늘었다. 반도체주가 반등하면서 급락장에서 줄었던 신용자금도 빠르게 돌아왔다.

 

코스피 급락과 신용투자 위험을 형상화한 이미지. 결혼자금 1억원이 6000만원으로 줄어든 투자자의 손실과 레버리지 투자에 따른 추가 하락 위험을 표현했다. ChatGPT 생성 이미지

문제는 시장이 다시 흔들릴 때다. 19일 코스피가 5.8% 급락하면서 늘어난 레버리지 자금이 또다시 담보 부족과 매도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졌다.

 

김씨 계좌에는 아직 평가액 기준 약 6000만원이 남아 있다. “그래도 팔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팔면 손실이 확정되니까요.”

 

매도하지 않으면 회계상 손실이 실현되지 않을 뿐 평가손실은 이미 발생한 상태다. 주가가 매수가를 회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언제, 얼마나 회복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는 일단 버텨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