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듭 북미 정상회담 추진 의지를 드러내고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장도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향후 회담 개최를 둘러싼 북미 양측의 탐색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부장은 19일 심야에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주요국제문제들에 대한 입장' 발표문에서 "우리 국가수반이 트럼프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좋은 추억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고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친분을 강조했다.
2019년 6월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만나 인사한 뒤 남측 지역으로 이동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연합뉴스
그러면서 "두 지도자의 관계는 의연 훌륭하다"며 "이는 세상이 다 알고 있으며 별로 놀랄만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도 말했다.
김 부장은 다만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은 변하지 않아왔고 미국과 그 추종무리들은 오늘 현재 이 순간도 적대적인 대조선군사활동을 맹렬히 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유지훈 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대북 정책과 트럼프 대통령 개인을 분리하면서 정상외교의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부인하면서는 마치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이 표현의 수위를 미묘하게 조절한 흔적도 감지된다.
김 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 간 소통설에 대해 명시적으로는 부인도 확인도 하지 않고 "최고지도부의 대외 정책과 관련하여 아마도 내가 알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사안일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 소통 자체가 없었다는 의미로 읽히지만, 김 부장 본인이 알 수 없는 최고 지도자 간의 직접 소통이 있었을 가능성을 남겨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계산된 모호함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창피를 주지 않으려 한 것"이라며 "(입장 발표) 핵심은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미국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유인하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김 부장이 두 정상의 개인적 친분을 강조한 것은 혹시라도 정상회담 논의가 진행될 경우 복잡한 실무협상 없이 정상 간 회담으로 직행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지훈 연구위원은 "정상 간 소통설에는 거리를 두면서도 최고지도자의 사적 친분을 고의로 부각해, 향후 실무협상을 건너뛰고 정상외교로 직행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두려는 셈법"이라고 진단했다.
김 부장은 정상간 친분을 강조하면서도 대화의 문턱을 높이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한미연합훈련 축소에 대해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면서 "자기들의 조치를 그 무슨 '선의의 조치'로 선전해 보려고 타산한다면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훈련 축소와 같은 일회성 조치에 호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냄으로써 앞으로 대화 조건을 두고 벌어질 수 있는 기 싸움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유지훈 연구위원도 "일회적인 훈련 축소만으로 북한의 긴장 완화나 대화 복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라며 "향후 북한이 미국의 보다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요구하면서 추가적인 조치를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장.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결국 앞으로 북미 간에는 거듭 대화를 압박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의 몸값을 높이려는 북한 측의 치열한 줄다리기가 펼쳐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북미 관계는 상호 탐색과 신호 교환을 거듭하는 일종의 '썸' 국면에 진입했다"며 "북한은 미국 및 주변 환경에 대한 냉소와 채널 보존을 병행하며 미국의 추가적인 말과 행동을 관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김여정 발표문에 대해 "북미대화의 문턱을 높이려는 것"이라며 "한미연합훈련 축소로는 안 되고 미국의 적대정책 철폐를 주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김여정 부장 발표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 자신의 생각을 서둘러 제시했다"며 "북미대화를 거부한다는 의사표현이 없다는 점에서 북한도 고심 중이라는 방증"이라고 진단했다.
북한이 굳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를 서두르지 않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트럼프가 중동 문제와 미 내부 정치 국면 속에서 외교적 돌파구가 급하다는 점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트럼프가 굴복하는 수준의 파격적 제안(한미군사훈련 등 대북 적대시 정책의 불가역적 중단 선언, 핵보유국 공개적 인정 등)을 가져올 때까지 관망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