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의 역사는 무엇을 준비했는가…선택의 끝은 ‘인류 한 가족’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역사를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지리·환경·문화와 생활양식이 오랜 시간 축적되며 형성된 ‘장기지속(Longue Durée)’의 구조로 이해하였다. 브로델의 관점을 한반도에 적용한다면,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은 수많은 외침과 고난,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를 받아들이며 형성된 다층적 정체성 등이 오랜 시간 중첩되며 한민족 특유의 토양을 이루어 왔다. 고대 신화의 웅녀와 유화, 신라의 여성 통치, 고려의 비교적 유연한 여성의 지위, 그리고 조선 후기 이름 없는 어머니들이 지켜온 정성과 신앙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역사에는 여성과 모성을 생명과 공동체의 근원으로 바라보는 문화적 기억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이러한 흐름은 문화사적으로 독생녀 섭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독특한 정신적 토양이 한반도에 깊숙이 체화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통일사상의 시각에서 동북아 지역의 역사적 흐름은 1943년 평안도 안주에 강림한 독생녀를 맞이하기 위한 섭리적 준비 과정으로 새롭게 접근할 수 있다.
동국대학교 윤명철 교수가 제시한 ‘해륙사관(海陸史觀)’의 시각에서 보면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해륙사관은 한반도의 역사를 대륙의 농경·유목 문화와 해양의 항해·상업 문화가 교차하는 역동적 공간으로 바라본다. 실제로 고구려와 발해의 북방 영토 경영부터 바다를 건너 일본 열도와 이어진 활발한 교류까지를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포섭하면, 한반도는 변방의 폐쇄된 영토가 아니라 대륙과 해양 문명이 융합하는 세계사적 무대라는 것이다. 이 거대한 접경 지대에서 이질적인 문화들은 충돌과 갈등을 넘어 서로를 흡수하고 변형하며 역동적인 문명적 전환을 이뤄내곤 했다.
◆ 400년의 기다림, 독생녀의 강림
1543년부터 1943년까지의 400년은 독생녀 강림을 향해 서로 다른 역사적 흐름이 존재했다. 전란과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민족의 고난, 유교적 질서 속에서도 이어진 여성들의 정성과 모성 문화, 무속과 불교에 남아 있던 여성적 구원의 상징, 근대 이후 확산된 남녀평등과 인간 존엄의 사상, 그리고 평안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신령한 기독교 운동까지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의 흐름이 한 시대 안에서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문화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현상들은 각각 독립된 역사적 흐름일 수 있다. 그러나 섭리사관의 관점에서 이러한 현상의 내면을 살펴보면 그 오랜 준비의 끝에서 하나의 결정적인 사건과 만나게 된다. 바로 1943년 평안도 안주에서 이루어진 독생녀의 강림이다.
기독교 섭리사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있다. 독생자를 중심으로 출발한 기독교는 2천 년의 역사를 거치며 세계적 기반을 형성했고, 동아시아와 한반도까지 전파되었다. 특히 19세기 말 이후 평안도를 중심으로 확산된 기독교 신앙과 신령운동은 새로운 시대와 구원의 주체를 기다리는 강렬한 종교적 열망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세계 기독교의 역사와 한민족의 오랜 문화적 준비가 교차하는 가운데 1943년 독생녀는 강림한 것이다. 이것이 통일사관의 시각이다.
섭리사관은 신이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며, 역사는 분명한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전제한다. 그러므로 섭리사관에서의 기독교 역사는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향한 역사적 과정으로 해석된다. 동방에서 시작된 신앙은 서구 문명 속에서 제도와 사상을 형성했고, 대서양 문명권을 거치며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제 세계의 중심이 태평양으로 이동하는 시대이다. 21세기 환태평양 문명권이 부상하는 이 시점에서, 이 도도한 문명적 귀착점은 대륙과 해양의 에너지가 교차하며 문명을 융합해온 한반도를 향해 정조준되어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종교문화 전통과 서구 기독교 문명이 만나는 접점에 놓인 한반도는,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다른 사상과 종교가 공존하며 독특한 정신적 토양을 형성해 왔다. 유교의 윤리와 불교의 자비, 그리고 민간신앙의 생명력이 살아 있는 이 땅에서 기독교는 외래 종교가 아니라 또 하나의 정신적 자양분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문화적 토양 속에서 기독교는 동아시아적 정서와 결합하며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
◆ 독생녀에서 참부모로, 섭리의 새로운 시대
기독교 구속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독생녀의 탄생은 오랜 세월 동안 은밀히 준비되어 온 하늘의 섭리가 마침내 역사적 실체로 결실을 맺는 중대한 전환점이다. 한민족의 뼈아픈 수난과 지극한 정성, 그리고 오랜 세월 이 땅의 가슴마다 서려 있던 모성문화와 대망신앙의 기다림은, 독생녀의 출현을 이해하는 중요한 역사·문화적 배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독생녀의 출현을 이러한 문화적 조건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독생녀는 여성 신화의 연장이나 한민족의 모성문화가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 아니라, 하늘부모님 복귀섭리의 중심 축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여성신화와 모성의 기억이 기독교 독생녀의 존재를 증명하는 직접적인 근거는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한민족이 오랜 역사 속에서 생명과 구원,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여성과 모성의 언어로 표현해 온 문화적 비유이다. 문화는 독생녀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역사적 토양을 형성했던 것이다. 또한 독생녀의 섭리적 가치는 독생녀 출현 자체만으로는 전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통일신학에서 메시아는 궁극적으로 참부모로 현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전의 문선명 총재는 독생자가 홀로 존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독생녀를 만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즉 독생자와 독생녀의 만남과 성혼은 각각의 사명을 넘어 인류 앞에 참부모가 현현하는 섭리적 사건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독생녀는 참어머니의 출생적 정체성이며, 독생자와 독생녀가 하나 되어 참부모를 이룸으로써 인류 구원 섭리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통일신학의 참부모 섭리는 ‘하늘부모님’이라는 신관을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한학자 총재는 2013년 하나님을 ‘하늘부모님’으로 모실 것을 선포하였다. 이는 하나님을 남성적 아버지의 표상에 한정하지 않고, 부성과 모성을 함께 품은 인류의 부모로 이해하는 신앙적 전환이었다. 남성과 여성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다는 성서의 창조원리 역시 이러한 참부모론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될 수 있다. 독생자와 독생녀가 참부모를 이루고, 참부모를 통해 인류가 하늘부모님의 자녀로 돌아간다는 섭리의 구조는 결국 구원의 목적이 한 개인이나 민족의 완성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이 참가정으로 이어지고, 참가정이 민족과 국가를 넘어 확장될 때 비로소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이라는 창조이상은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현실의 과제가 된다.
◆ 선민(選民)은 하늘의 뜻을 책임지는 민족이다
그렇다면 독생녀와 참부모를 맞이한 오늘, 한민족에게 ‘선민’이라는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늘의 뜻을 먼저 알게 된 민족이라면 그만큼 먼저 책임지고, 먼저 사랑하며, 먼저 세계를 위해 살아야 한다. 따라서 선민은 혈통적 우월성이나 민족적 특권을 뜻하지 않으며 하늘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자부심보다 선택받은 목적을 실천하는 책임이 더욱 중요하다. 한민족이 독생녀를 맞이한 역사는 그래서 과거의 영광으로만 기억될 수 없다. 참부모를 통해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을 알게 되었다면, 이제 그 사랑을 민족의 울타리 밖으로 확장해야 한다. 선민의 사명은 자신이 선택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하늘부모님의 사랑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책임은 이미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일의 역사적 상처를 넘어 화해와 평화를 이루려는 노력, 서로 다른 국적과 문화를 넘어 참가정을 이루는 축복가정, 그리고 풍류와 정(情), 효정의 심정문화를 세계와 나누는 한류의 확산은 서로 다른 영역에 있지만,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민족의 경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서로 다른 문화를 품으며, 더 큰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이 선민의 사명이 세계로 확장되는 방식이다. 정치적으로는 화해와 평화이며, 문화적으로는 심정의 공명이고, 가정적으로는 국경과 인종을 넘어서는 참사랑의 실천이다. 한민족이 먼저 받은 사랑과 역사적 경험을 세계와 나눌 때, 선민이라는 이름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이제 21세기 세계는 또 한 번의 대전환기에 들어섰다. 대서양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근대 문명 질서는 점차 환태평양 문명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수많은 인종과 언어, 자본과 기술이 뒤섞이는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반도의 위치는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문명을 연결하고 갈등을 완충하며 새로운 공존의 길을 찾는 능력, 다시 말해 문화의 힘, 곧 소프트파워(soft power)가 중요해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韓)’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한’은 단순히 하나의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크고 깊다는 뜻을 품고 있으며,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묶어 조화를 이루게 하는 통합의 상징이다.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반도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 환태평양 문명권 시대에 한민족이 감당해야 할 새로운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의 종착지는 ‘인류 한 가족’
지금까지 총 22회의 연재에서 우리는 한민족의 신화와 역사, 여성과 모성의 문화적 기억, 풍류와 심정, 수난과 정성, 기독교와 신령운동, 그리고 1543년부터 1943년까지 이어진 400년의 흐름을 따라왔다. 각각의 역사는 서로 다른 시대와 맥락을 갖고 있지만,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왜 독생녀는 한민족 가운데 강림하였으며, 그 강림을 통해 하늘은 무엇을 이루고자 하였는가.
이제 그 질문에 대한 답도 분명해진다. 한민족 선민사의 의미는 독생녀를 탄생시킨 민족이라는 사실을 자랑하는 데 있지 않다. 독생녀를 맞이하고, 독생자와 독생녀가 참부모를 이루는 역사적 기반이 되었으며, 참부모를 통해 밝혀진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을 세계로 확장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았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따라서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의 방향은 한민족에서 시작하지만 한민족에서 끝날 수 없다. 하늘부모님이 어느 특정 민족만의 부모일 수 없듯이 참부모의 이상 역시 어느 하나의 국가와 인종에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선민의 사명이 완성될수록 그 경계는 오히려 넓어져야 한다. 한국인을 넘어 세계인으로, 민족을 넘어 인류로, 그리고 마침내 모든 사람이 하늘부모님의 자녀라는 보편적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한(韓)민족 선민(選民) 대서사시는 결국 ‘누가 하늘로부터 선택받았는가’를 말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수천 년의 문화적 기억과 역사적 경험, 그리고 400년의 섭리적 준비가 독생녀의 강림으로 이어지고, 독생자와 독생녀가 성혼하여 참부모를 이룸으로써 하늘부모님의 창조이상이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실체적 출발을 맞이한 과정을 밝히는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선민은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오늘의 책임이다.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敬天)의 종적 가치와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弘益)의 횡적 가치, 그리고 하늘의 심정과 인간의 사랑을 연결하는 효정(孝情)의 정신은 이제 한민족 내부에 머물 수 없다. 먼저 받은 사랑을 세계와 나누고, 갈등하는 민족을 화해시키며, 국경과 인종을 넘어 서로를 한 가족으로 품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선민의 완성은 선민만 남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류가 하늘부모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서로를 형제자매로 품는 세상을 여는 길일 것이다. 참부모 섭리가 열어온 길은 축복을 통해 참가정을 이루고, 민족과 국가를 넘어 세계를 향한 참사랑의 실천에 있다. 한민족이 그 섭리의 역사적 무대가 되었다면, 이제 한민족에게 남겨진 사명은 그 사랑을 인류에게 돌려주는 거룩한 의무일 것이다.
한민족에서 시작되었지만 한민족을 뛰어넘는 것, 하늘의 선택에서 시작되었지만 참사랑의 책임으로 그 뜻을 완성하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가 하나의 가족을 이루는 것. 이것이 전체 칼럼의 여정을 통해 우리가 발견한 ‘한민족 선민’의 새로운 의미이며,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가 향하는 마지막 지평이다.
고기훈 박사(한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