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첫 대법관 인사를 놓고 대법원장이 관례를 깨고 대통령과 최종 조율 없이 후보를 제청하면서 제청권과 임명권이 정면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한 모양새다.
일각에선 2년 뒤 시작되는 대법관 증원을 앞두고 향후 대법관 인선에서 청와대와 사법부 중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를 염두에 둔 양측 셈법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청와대와 대법원은 지난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이후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최종 후보를 놓고 물밑 조율을 이어왔으나 결국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대통령과 대법원장 임기가 일치하지 않는 탓에 과거에도 대법관 인사를 둘러싼 긴장 관계가 형성된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대통령이나 대법원장이 한발씩 물러서면서 인선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이 한 치 양보 없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장기간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조희대 대법원장이 헌법상 권한을 그대로 행사하며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맞부딪히는 전례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여권에선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가 동의해야 하는데 대법원장이 일방적으로 제청하는 게 맞느냐'는 입장이다. 제청권이 임명권과 분리돼 독자적으로 행사될 수 있는 권한이냐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제청권과 임명권 중 어느 쪽이 우위에 있다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번 제청에 사전 합의가 빠졌더라도 위헌·위법한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제청권과 임명권 중 어떤 것이 우선한다고 보기 어려우니까 여태 상의를 해 온 것"이라면서 "임명권과 제청권 개념은 병렬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도 "각자의 필요에 따라 병렬적이고 동등한 위치에서 제청권과 임명권을 행사하면 되는 것"이라며 "제청에 앞서 조율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전 합의 관행이 헌법적 차원의 규범적 효력을 가진단 시각도 있다.
이헌환 아주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그간 관례를 불문의 헌법적 효력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하면 합의 없는 제청권 행사는 반규범적이라 볼 수 있다"며 "탄핵 사유도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반대로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를 대통령이 반드시 임명해야 하는지도 쟁점이다.
대통령의 임명 거부권은 법적으로 명시된 권한은 아니다. 다만, 제청권과 임명권이 동등한 차원의 병렬적 관계에 있다고 보면 대통령 역시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를 거부할 재량이 있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제청권과 별개로 최종 임명 여부를 판단할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전날 노경필 처장도 국회 법사위에서 "헌법에 따라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를 제청할 권리가 있고 거기에 따라 대통령과 국회는 각각 임명권과 동의권을 행사하면 된다"며 말했다.
일각에선 대법관 증원법으로 향후 대법관 수가 14명에서 26명으로 늘어나는 만큼 앞으로 대법관 구성에서 누가 주도권을 갖느냐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시작됐단 분석도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임기 동안 대법관 22명을 새로 임명하게 되는데, 이번에 제청권이 무력화되면 사법부가 앞으로 허수아비로 전락할 수 있단 판단도 있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배경이야 어찌 됐든 조 대법원장의 제청이 이뤄짐에 따라 사태의 향배는 대통령의 결단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임명권 행사를 보류하고 대법원과 다시 협의에 나설 가능성과 국회로 임명동의안을 보내 국회 판단에 맡기는 방안 등의 선택지가 있다.
다만, 추가 협의 없이 현 상태로 임명동의안을 보내더라도 국회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의원 수의 과반이 필요한데 161석을 가진 민주당 단독으로 부결이 가능하다.
이 경우 대법원장이 다른 3명의 추천 후보 중 제청하거나 그마저 이뤄지지 않으면 후보추천위원회 절차를 다시 밟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결국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다시 후보를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해져 '제청→거부→재제청'의 도돌이표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이 조 대법원장이 퇴임하는 내년 6월까지 임명권을 보류했다가 새 대법원장이 들어서면 다른 사람을 제청받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대법관 공백 장기화와 이에 따른 재판 차질은 불가피하다.
재판 지연의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만큼 양측이 한발씩 물러서 조속히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 법원 한 부장판사는 "결국 상고심 재판 지연으로 이어져 피해는 국민이 본다"며 "양측이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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