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와 설비 동일하다지만 공장마다 과자 맛 달리 느껴져 엄마가 알려준 대로 요리해도 같은 맛 안 나는 것과 마찬가지
‘내가 먹는 것이 결국 나를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농담 조금 섞어서) 나는 밀가루 박력분과 설탕으로 돼 있을 것이다. 과자를 달고 살아서다. 그냥 달고 사는 게 아니다. 과자를 주식처럼 먹는다. 미식가와는 거리가 멀지만, 과자에 있어서 만큼은 감별력이 뛰어나서 친구들 사이에서 ‘과자 덕후 중에 찐 덕후’로 통하기도 한다.
그런 내게도 편애하는 과자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해태제과의 스테디셀러 비스킷 ‘에이스(ACE)’다. 담백하고 고소해서 ‘1일 1에이스’를 즐겨찾기 한다. 혀끝을 타격하는 미세한 소금의 짠맛이 이 과자의 특징인데, 식감이 부드러워서 많이 먹어도 입천장이 까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잘 부서진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부서진 가루를 모아 입에 탈탈 털어먹는 맛이 나름 기막히다. 과대 포장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과자들과 달리, 얇은 포장지로만 몸을 감싸 정량을 정확하게 드러낸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정직한 녀석이라 더 정이 간달까. 살면서 내가 먹은 에이스를 낱개로 어어 붙이면 지구 한 바퀴는 돌릴 수 있지 않을까란 영양가 없는 상상도 해 본다.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작가
각설하고. 이런 연유로 내가 에이스를 좀 안다고 자부하는데, 올 초에 에이스 논란(?)이 있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촉발된 것으로 내용인즉슨, ‘에이스 맛이 공장별로 다르다’는 것이었다. 에이스를 생산하는 공장은 두 곳으로, 전북 전주시 훼미리식품 공장에서 만든 제품은 느끼하고 소금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반면 충남 아산의 공장에서 제조된 제품은 평소 먹던 고소하고 짭짤한 에이스의 맛에 가깝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두 가지에서 놀랐다. 일단 에이스마다 맛이 살짝 다르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사람이었던 터라, 이것이 이슈가 되는 것 자체에 놀랐다. 또 하나 놀란 건 맛의 차이로 짚은 게 공장이었다는 점인데, 과연 공장의 문제일까. 과자와 함께 인생을 걸어온 과자 덕후로서 이 주장엔 반박한다. 왜냐. 제기된 주장과는 다른 결과, 그러니까 아산 공장 에이스가 덜 구워지고 전주 공장 에이스 풍미가 더 좋은 경우도 숱하게 만나왔으니까. 그리고 먹어왔으니까.
실제로 해태제과 측에서 “레시피와 설비는 동일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던데, 결국 과자라는 게 복불복인 면이 있는 것 같다. 같은 레시피로 만들어도 반죽이 구워지는 오븐의 구간별 온도 차이라든가, 보관 과정에서 변수, 공정 설비의 노후화 등으로 맛이 조금씩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스테디셀러 과자인데, 소비자가 느낄 정도로 맛에 오차가 있다는 건, 해태제과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사실, 공장별 품질 논란은 에이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새우깡, 몽쉘(통통), 참이슬(소주)도 과거 비슷한 이슈에 휘말린 적이 있다 ‘절대적인 맛’을 내는 데 실패한 대량 생산 식품의 기계 설비를 보며 문득, ‘인간의 손맛’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깨달았다. 우리가 흔히 일컫는 ‘할머니 손맛’ ‘엄마 손맛’ 말이다. 우리 엄마만 해도 그렇다. 양념을 계량하지도 않고도(감으로 ‘설탕 한 꼬집’ 하신다), 온도를 재지 않고도(익은 상태를 눈으로 본 후 ‘이 정도면 됐다’ 하신다), 재료를 기계로 다듬지 않고도(감으로 ‘뭉텅뭉텅’ 써신다) 비상하게 늘 고유한 맛을 낸다. 배고프고 서러울 때, ‘우리 엄마 음식’이 가장 그리운 이유다.
흥미로운 건, 엄마가 알려준 레시피 그대로 요리를 해도 같은 맛이 안 난다는 것이다. 그걸 보면 손맛은 확실히 과학이나 기술의 영역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뭘까. 어쩌면 기억이다. 음식과 함께 음미한 시간이 손맛을 더 각별하게 하는 게 아닐까. ‘혀’보다는 ‘정서’가 맛을 좌우하는 핵심이 아닐까. 유독 고향에 있는 ‘엄마의 손맛’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침이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