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꿈을 좇다 무너지는 청춘들

도대체 이 척박한 환경에서 예술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2022년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간 이찬호 감독의 ‘수련’이 관객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실로 눈물겹다. 영화를 못 만들어서가 아니다. 이 영화는 어지간한 독립, 예술영화의 퀄리티를 넘어서는 완성도와 작품성, 재미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국내 영화계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결국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들고 직접 해외 영화제의 문을 두드렸고 그 결과 모스크바 국제영화제를 비롯한 25개국 65개의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그것도 최우수상, 주연상, 심사위원대상 등 굵직굵직한 상을 거머쥐면서. 그리고 이제 힘겹게 늦깎이 개봉을 한다.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감독에게 이 영화를 열렬히 응원한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영화 ‘수련’은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와 연결되어 있다. 우선,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은서와 함께 서울에 온 효원이 오디션을 보는 작품이 ‘갈매기’이다. ‘갈매기’는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고 싶은 유명 배우와 연출자, 배우 지망생 효원의 욕망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서사의 장이다. 연출자는 배우의 재능을, 유명 배우는 배우 지망생의 재능을 알아본다. 작품을 위해, 예술을 위해 상대를 독려하는 과정에는 서로의 열정과 재능, 상대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을 적당히 이용하고 이용당해줄 수도 있다는 심리가 작동한다. 그것이 언젠가 다가올 꿈의 실현에 근접하는 길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영화 초반 오디션 장에서 효원은 갈매기의 그 유명한 대사를 말한다. “창작을 하든 연극을 하든 중요한 것은 참아내는 거예요.” 그 뒤에도 효원은 이 대사를 반복한다. 인내. 참아낸다는 것은 꿈을 향한 그녀의 태도를 집약하는 말이다. 실제로 그녀는 악착같이 참아왔다. 그러나 그 인내는 끝내 성공의 서사로 귀결되지 못한다. 그렇게 버티던 그녀가 마지막 순간에 내뱉는 갈매기의 또 다른 대사. 그것은 “당신들은 모두 가짜야!”이다. 복잡한 관계 속에서 비극을 맞이하는 ‘갈매기’의 등장인물들처럼 영화 ‘수련’의 인물들 역시 사랑과 우정, 예술로 얽히고설킨 인드라망에 갇혀 있다.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은서를 떠났던 효원, 낯선 서울에서 효원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선을 넘은 은서, 타향에서 고군분투하는 친구들을 위하는 인철과 그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은근히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친구들.

체호프는 ‘갈매기’를 사랑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예술이라는 무대를 중심으로 한 사랑의 화살표는 결국 파국으로 끝난다. 그런 점에서는 ‘수련’ 역시 비슷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청춘의 꿈을 착취하는 서울의 밤거리는 냉혹하고 효원이 돌아온 거리는 연극 무대의 화려한 조명과 달리 어둠에 잠겨 있다. 남루한 집 안의 싸구려 욕조에서는 물이 새고 전구는 껌뻑인다. 그러나 거기서 효원과 은서, 인철 세 사람은 함께 라면을 먹는다. 어쩌면 이 장면이야말로 영화 ‘수련’을 희곡 ‘갈매기’와 다른 길로 이끄는 핵심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 장면에서 체호프의 희곡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회복력, 희미하지만 끊기지 않은 긍정의 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맹수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