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역사/ 스네자나 로렌스/ 고유경 옮김/ 소소의책/ 2만7000원
수학은 오랫동안 ‘정답의 학문’으로 기억돼 왔다. 그러나 영국의 수학사학자이자 수학교육학자인 스네자나 로렌스의 ‘수학의 역사-숫자로 묻고 세계를 증명하다’는 수학을 인간 문명과 함께 발전해 온 이야기의 언어로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저자는 수학사를 단선적인 서구 문명 발전사로 재구성하지 않는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계산법, 중국의 산가지 계산, 인도의 숫자 체계와 0의 개념, 아랍권의 대수학 등을 주요 흐름으로 다룬다. 수학은 그리스에서 유럽으로 곧장 이어진 지식의 계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의 필요와 상상력이 만나 형성된 공동의 유산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가령 오늘날 디지털 문명의 언어가 된 ‘알고리즘’이라는 말은 페르시아 출신 수학자 알 콰리즈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인도 수학은 0과 십진법의 확산에 중요한 토대를 놓았고, 이슬람권 학자들은 이를 번역·정리·발전시키며 중세 유럽의 학문적 전환에 영향을 미쳤다. 하나의 수학 개념은 어느 한 시대나 국가에서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라, 지역과 문명을 넘나들며 이동·번역·변형된 결과라는 것이다.
저자는 여성과 비서구권 수학자, 계산과 관측을 담당했던 이들의 기여에도 주목한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 히파티아부터 여성 수학 교육의 역사, 천문 관측과 데이터를 다룬 여성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기존 수학사에서 상대적으로 주변부에 놓였던 인물들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온다. 수학의 진보는 한 명의 천재가 홀로 이룩한 성취가 아니라 교육과 기록, 협업과 번역이 축적된 집단적 과정이었다는 메시지다.
이 책은 전문 수학사 연구서라기보다 폭넓은 독자를 위한 교양서에 가깝다. 복잡한 증명 과정을 길게 제시하기보다 각각의 발견이 던진 질문과 시대적 의미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다만 수학 난제를 깊이 있게 풀이하거나 특정 이론의 논리 구조를 본격적으로 익히고 싶은 독자에게는 다소 아쉽게 느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