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수면 점수가 기다린다. 내비게이션은 운전 습관을 점수로 바꾸고 배달 앱에서는 식당과 라이더를 별점으로 평가한다. 중고거래 앱의 매너 온도와 금융 앱의 신용점수를 확인하고 밤에는 알고리즘이 골라준 영상을 보다 잠든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는 온종일 점수를 매기고 또 점수 매겨진다.
신간은 이 평범한 일상 뒤에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계층화의 질서를 해부한다. 분석의 흥미로운 출발점은 ‘감시’가 아니라 ‘기쁨’이다. 각종 서비스가 무료이고 편리하거나 재미있어서 데이터를 내어준다.
마리옹 푸르카드·키런 힐리/ 서영찬 옮김/ 허블/ 1만8000원
문제는 그렇게 모인 데이터가 어떻게 쓰이는가다. 사람을 분류하고 순위를 매기고 서로 다른 기회와 연결한다. 신용점수와 위험등급, 추천 알고리즘과 보험료, 취업 심사와 검색 순위가 개인의 삶의 기회를 좌우한다. 데이터 자본주의 시대 첫 질문이 “누가 나를 보는가”였다면 이어지는 질문은 “나를 본 그들은 나를 몇 번째 줄에 세우는가”이다.
저자들은 ‘고유자본(eigencapital)’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검색과 결제, 이동과 관계 같은 디지털 흔적은 개인의 위치를 결정하는 새로운 자원으로 작동한다. 높은 점수는 더 좋은 조건과 기회로 이어지고 낮은 점수나 데이터 부족은 사람을 시스템의 변두리로 밀어낸다.
‘고유자본’의 활용은 경제 전체로 넓어진다. 모든 결제가 데이터와 결합하면서 동일한 상품을 모든 사람에게 같은 조건으로 파는 방식은 흔들린다. 기업은 고객을 세밀하게 분류해 사람마다 다른 가격과 조건을 제시하고 상품에 한데 묶여 있던 권리를 잘게 쪼갠다. 판매는 한 번의 거래가 아니라 고객을 계속 추적하고 관리하는 관계의 시작이 된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는 다시 묶여 금융자산이 되고 개인의 미래 소득과 정체성마저 투자와 평가의 대상이 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런 질서가 자유를 억압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디지털 기술은 실제로 개인에게 더 많은 선택과 지식과 표현의 기회를 준다. 그러나 그 자유에는 새로운 의무가 따라붙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인증하고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검색해 판단하며 수많은 범주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관리해야 한다. 저자들이 ‘자기주권’이라 부르는 이 이상은 해방과 예속을 동시에 품는다. 자유로워진 만큼 자기 삶의 위험과 책임도 개인에게 돌아온다.
저자들이 내린 결론은 단순한 기술 비관론과 거리가 멀다. 우리는 순위를 싫어하면서도 그것 없이는 좀처럼 선택하지 못한다. 대학평가를 비판하는 대학도 순위가 떨어지면 전전긍긍하고 소비자는 평가받는 것을 불편해하면서도 평가되지 않은 식당과 택시기사에게 선뜻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 저자들은 이를 ‘서열화의 이중 운동’이라 부른다. 디지털 사회의 진짜 권력은 우리를 바라보는 눈에만 있지 않다. 그 시선을 숫자로 바꾸고 그 숫자로 사람들의 자리를 배분하는 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