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봇 기술 융합 ‘초풍요 시대’ 물질 넘쳐도 ‘의미의 허기’ 여전 어떤 인간 될 것인지 질문 던져
포식자도 굶주림도 없는 환경서 생쥐 사회 무너진 실험 인상적
초풍요의 시대/ 피터 디아만디스·스티븐 코틀러/ 김태훈 옮김/ 비즈니스북스/ 2만2000원
인공지능(AI)이 등장한 이후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AI가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처리하고, 로봇이 인간보다 싸고 지치지 않는 노동력을 제공한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미래학자 피터 디아만디스와 과학전문기자 스티븐 코틀러가 공저한 ‘초풍요의 시대’는 이 질문에 다소 뜻밖의 답을 내놓는다. AI와 로봇, 생명공학, 에너지 등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기술은 인류를 결핍의 시대에서 벗어나 ‘초풍요(superabundance)’의 시대로 이끌 것이며, 그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생존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를 찾는 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생성형 AI 이미지
피터 디아만디스는 오랫동안 기술이 인류에게 가져올 ‘풍요’에 주목해왔다. 미래전망서 ‘어번던스’에서는 기술 발전을 통해 인류가 자원 부족의 시대를 넘어 풍요의 시대로 진입할 가능성을 제시했고, ‘볼드’와 ‘컨버전스 2030’에서는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기술이 미래의 산업과 사회를 어떻게 재편할지를 다뤘다. 이 책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관심의 중심이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만들어낸 미래를 살아갈 ‘인간’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말하는 초풍요는 단순히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을 뜻하지 않는다. AI, 로봇공학, 생명공학, 에너지 등 여러 기술이 서로 결합하면서 생산비용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지금까지 희소하거나 고가였던 재화와 서비스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해지는 사회다. 정보와 교육, 의료, 에너지 같은 핵심 자원의 접근성이 크게 높아지고,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들이 일상적인 서비스가 되는 세계다.
피터 디아만디스·스티븐 코틀러/ 김태훈 옮김/ 비즈니스북스/ 2만2000원
인류의 경제와 사회는 오랫동안 ‘희소성’을 전제로 발전해왔다. 먹을 것과 에너지, 노동력, 정보가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무엇을 생산하고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데 기술이 생산비용을 지속해서 낮추고 자원의 공급을 획기적으로 확대한다면 이 오래된 전제가 흔들릴 수 있다. 저자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초풍요’가 시작된다고 본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AI다. 저자들은 AI를 단순한 생산성 향상 도구로 바라보지 않는다. AI가 로봇공학과 생명공학, 위성 기술, 에너지 기술 등 다른 기하급수 기술과 결합할 때 변화의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AI와 생명공학의 결합은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열고,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 노동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합성생물학과 AI의 결합은 생명의 설계와 복원 가능성을 넓히며, 위성 데이터와 AI는 지구를 실시간에 가깝게 관찰할 수 있게 한다. 태양광과 배터리 기술에 AI 기반 전력 관리가 더해지면 에너지 빈곤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책이 그리는 미래의 특징은 ‘융합’이다. 하나의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술이 서로를 밀어 올리는 연쇄반응을 일으킨다는 것. AI가 의료를 혁신하면 건강과 수명이 달라지고, 에너지 비용이 낮아지면 제조와 운송의 비용도 내려간다. 로봇이 노동의 상당 부분을 맡으면 생산방식이 바뀌고, 생명공학의 발전은 인간이 질병과 노화를 바라보는 방식까지 바꿔놓는다.
하지만 ‘초풍요의 시대’의 장점은 단순한 기술 낙관론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들은 풍요의 그늘과 이면을 다룬다. 풍요가 반드시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지나친 풍요가 새로운 형태의 결핍과 혼란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역설을 경험하고 있다. 산업과 기술의 발전으로 물질적 풍요는 역사상 유례없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기후 위기와 플라스틱 오염, 비만, 디지털 중독, 사회적 고립 등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다. 한쪽에서는 음식이 넘쳐 비만과 싸우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굶주림이 계속되고 있다.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유니버스 25’ 실험을 통해 풍요의 역설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미국의 동물행동학자 존 칼훈은 생쥐에게 먹이와 물, 은신처 등 생존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제공했다. 포식자도 없고 질병이나 굶주림도 없는 사실상 완벽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풍요가 극대화된 공간에서 생쥐 사회는 오히려 붕괴했다. 사회적 유대와 행동이 무너지고 결국 개체군 자체가 쇠퇴했다. 저자들이 이 사례를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결핍이 사라지면 인간은 자동으로 행복해지는가. 모든 욕구가 충족되면 사회는 더 건강해지는가. 오히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 풍요를 넘어 관계와 목적, 의미가 아닐까.
이러한 질문은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뤘고 물질적 풍요를 크게 확대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과 과로, 번아웃, 사회적 고립 등 새로운 문제도 나타났다. 이제 ‘더 많이’가 반드시 ‘더 행복하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체감하고 있다. 장대익 가천대 석좌교수가 추천사 서문에서 언급한것처럼 물질적 결핍을 상당 부분 극복한 우리 사회에서도 ‘의미의 허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저자들은 AI를 두려워해 멀리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인간의 사고를 AI에 통째로 외주화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AI는 인간의 능력을 대신하는 목발이 아니라 잠재력을 확대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생각을 외주화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초풍요의 시대’ 는 결국 ‘풍요’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의미’에 관한 책이다. 인간은 기술 발전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그렇게 얻은 풍요와 자유를 가지고 어떤 인간이 될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