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고 쓰고 가르치지만 좋은 소설이 뭔지 물으면 막연 꾸미지 않은 담백한 이야기면 그 기준으로도 충분치 않을까
그레이스 페일리 ‘아버지와 나눈 대화’(‘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에 수록, 하윤숙 옮김, 비채)
최근에 신인 작가를 선정하는 자리에 참석하면서 다시 좋은 소설의 기준에 관해 돌아보게 되었다. 여러 심사 위원이 자신이 선택해 온 작품과 연결시켜 말하는 좋은 소설의 기준을 귀담아들으며 생각이 더 많아지고 복잡해졌다. 그래서인지 노트에 적어 간 나의 개인적인 심사 기준을 다 털어놓기가 조금은 망설여지기도 했는데 누군가의 의견에 내가 충분히 동의할 수 없듯, 나의 기준이라는 것도 다른 이에겐 지나치게 보수적이거나 낡은 소설의 문법처럼 들릴 수 있겠다는 우려가 들어서. 이런 순간이면 머릿속에 탁 떠오르는 단편소설이 있다.
조경란 소설가
그레이스 페일리의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수록된 소설집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을 일본에 처음 소개하고 번역한 사람이 무라카미 하루키. 잠시 그의 이야기를 하는 건 소설 쓰기의 전형성에서 크게 벗어난 그레이스 페일리의 소설을 설명하기가 어려워서이다. 하루키는 그녀의 소설이 “무뚝뚝하면서도 친절하고, 전투적이면서도 인정이 넘치고, 즉물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서민적이면서도 고답적”이라고 평했다. 다른 표현을 덧붙이면 “신비로운 중독성”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생기 넘치고 사랑스러운 소설이라고 말이다. 그녀는 장편소설은 쓰지 않고 평생 소설집만 세 권 출간했는데 ‘아버지와 나눈 대화’는 두 번째 책에 수록돼 있다.
지금 병상에 있는 아버지는 두 개의 직업을 가졌었다. 의사와 예술가. 작가의 분신으로도 보이는 딸에게 나이 든 아버지는 이런 부탁처럼 들리는 요구를 했다. 위대한 작가인 모파상이나 체호프처럼 어떤 인물을 앞세워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명확하게 보이는 이야기를 써보라고. 아버지의 말속에는 딸이 글쓰기에서 경멸하는 “두 개의 점 사이에 확실한 선이 이어지는 그런 이야기”라는 단서가 포함돼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 짧은 이야기를 써간다. 자신의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던 이야기를. 그걸 아버지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곤 물었다. “이런 건 어때요?”
여기까지가 소설 두 페이지 안의 내용. 이 작품을 읽을 적마다 서두부터 가슴이 덜컥 내려앉곤 한다. 내 감정에 따라, 딸에게 이러한 소설을 써야 한다고 타이르고 요구하는 아버지가 글쓰기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고집스럽게 우기며 새 경향을 받아들이길 어려워하는 작가나 소설 선생처럼 보여서. 그러니까 어쩌면 나의 일면도. 때로 학생이나 제자의 습작 원고를 볼 때 비슷한 질문을 받는 기분도 든다. 딸이 경쾌한 이야기를 써서 읽어주곤 이런 건 어때요? 라고 묻는 것과 비슷한. 딸의 짧은 소설은 아버지가 좋은 이야기에서 필요하다고 한 인과나 인물 묘사, 끝이 확연한 결말 같은 건 없었다. 그래도 그 이야기는 역시 그레이스 페일리 소설다운 열린 결말로 끝난다.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다시 시작해라.” 너무 많은 걸 생략해 버렸고, 투르게네프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라며. 논쟁을 피하고 싶어도 딸은 이 말만은 한다. 아버지가 원하는 건 자신의 이야기 안에는 없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아버지의 충고를 받아들여 글을 수정해 본다. 이야기는 더 좋아졌을까? 아버지 마음에 드는 소설이 됐을까? 그들은 다시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래서 얼핏 읽으면 ‘아버지와 나눈 대화’는 소설론의 가치관이 다른 부녀 이야기처럼 읽힌다. 아버지는 인물의 운명 결정론을 믿고 딸은 모든 인물에게는 “삶의 열린 운명을 누릴 자격이 있다”며 분명한 인과 관계를 거부하니까. 그렇지만 거듭 읽으면 아, 이 단편은 이야기의 힘을 믿고 소설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소설을 읽고 쓰고 가르치며 살지만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막연해지면서 다른 이들의 생각이 한층 궁금해진다. 이 단편 속 딸의 글처럼, 결말에서도 인물에게 변화의 지점을 열어둘 줄 아는 이야기, 딸이 아버지에게 자신 있게 말한 대로 “꾸미지 않은 담백한 이야기”. 단편이라면 우선 나는 그 기준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라고 오늘은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