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의 역사에 새로운 한 줄이 추가됐다.
미국에서 화포를 지원받던 한국이 수십년만에 미국에 포병 무기를 판매하게 된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자회사인 한화디펜스USA는 미 육군과 K9 차륜형 자주포(K9MH) 시제품 6대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19일 전했다.
미 육군도 한화디펜스USA와 기동형 전술포(MTC) 프로그램 시제품 개발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시제품 6대를 미 육군에 인도하되 12대를 추가 인도할 수 있는 옵션을 포함한다.
기본계약금은 1억302만 달러(1400억원), 옵션을 포함한 최대계약금액은 2억6290만 달러(3700억원) 수준이다.
미 육군에 납품되는 시제품들은 최대 48개월 동안 실전과 유사한 조건에서 시험평가를 받을 예정이다. 실전배치가 최종 승인되면 기존의 M777 155㎜ 견인포를 대체하게 된다.
◆낯설지만 익숙한…K9MH 특징은
K9MH는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은 무기체계다. 한국군이 도입하지 않았고, 국내에서 실물이 선보인 적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기술적으론 우리에게 친숙한 무기다.
K9MH는 한국을 비롯해 폴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등에 수출된 K9 자주포를 기반으로 만든 차륜형 모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국방기술진흥연구소 주관 수출형 무기체계 개조개발 사업 형식으로 2024년 12월부터 개발을 진행했다.
무인화한 K9A2 포탑 모듈을 8륜 특장차량에 결합한 형태다. 중량은 40t이다.
탑재차량은 사용국의 조건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개발 초기 천무 다연장로켓 발사차량을 플랫폼으로 사용했다.
최근에 공개됐을 때는 중동 수출 천궁 지대공미사일 체계 플랫폼인 체코 타트라 특장차량이 쓰였다.
추후 기아자동차 차체 등을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K9MH도 K9A2처럼 분당 8발을 쏠 수 있고, 자동화 체계를 사용한다. 따라서 운용인원도 2∼3명에 불과하다.
적은 인원으로 짧은 시간 내 강력한 화력을 특정 지점에 집중할 수 있다.
주포는 K9A2와 동일한 155㎜ 52구경장 화포다. 미군 M777 견인포는 155㎜ 39구경장이다.
일반적으로 포신이 길수록 사거리가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K9MH가 54㎞에 달하는 사거리를 기록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K9MH는 정지한 상태에서 20초 이내, 기동 간에는 50초 이내에 초탄 사격이 가능하다.
자체적으로 포탄 40발을 탑재하며 K10 탄약운반장갑차로부터 포탄을 재보급받을 수 있다.
항속거리는 700㎞이며, 최고속도는 시속 100㎞에 달한다. 높은 수준의 기동성과 강력한 화력을 겸비한 셈이다.
고속도로가 발달한 지역이나 경량화된 장비가 필요한 곳에서 적합하다는 평가다.
◆K9MH가 선택받은 이유는
미 육군이 K9MH를 ‘픽’한 것은 차륜형자주포의 특성과 K9MH의 장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미 육군은 냉전 시절부터 사용했던 M109 계열 자주포처럼 궤도형 자주포를 주로 써왔다.
지난 30년 동안 크루세이더 등의 신형 자주포 개발을 추진했으나, 중량 또는 비용 초과, 기술적 문제로 실패를 거듭했다.
실패를 맛본 미 육군은 검증된 체계 도입으로 선회했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도 고려됐다.
러시아 자폭드론과 활공폭탄 공격 위협이 큰 우크라이나에선 포병도 뜻하지 않은 기습을 받을 위험이 크다. 포격 직후 30초 이내에 이동해야 생존할 수 있다.
초탄에 표적을 명중시키고 신속하게 고속 이탈을 한 뒤, 다른 곳을 공격하러 빠르게 이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고성능 특장차량에 대구경 포를 얹은 차륜형자주포가 더 적합하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에선 프랑스산 시저, 슬로바키아산 주자나2 등의 차륜형자주포가 러시아군에 상당한 피해를 입힌 바 있다.
차륜형자주포는 운영 효율성도 높다는 평가다.
전용 플랫폼을 새로 만들거나 전차 차체를 활용해야 하는 궤도형과 달리 차륜형 자주포 플랫폼은 민간 특장차 제조사에서 확보, 개조할 수 있다.
궤도형보다 제조공정이 단순하고 생산비가 낮으며, 부품 수급과 정비도 쉽다.
미 육군으로서도 차륜형자주포 도입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기동형 전술포(MTC) 사업 참여를 원했던 업체들도 이에 맞춰 최신 차륜형자주포를 제안했다.
독일 라인메탈은 RCH155를 제시했다. 성능상 K9MH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평가된다.
RCH155는 독일산 PzH 2000 궤도형 자주포의 155㎜포를 복서 8륜 장갑차에 얹었다.
분당 8발을 쏠 수 있고, 최대 54㎞까지 포탄을 발사한다. 독일 외에 영국, 카타르가 도입했고 우크라이나에도 지원된다.
영국 BAE 시스템스는 스웨덴에서 만든 아처를 제안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실전에 투입됐다.
이탈리아 레오나르도DRS와 독일·프랑스 합작사인 KNDS는 프랑스산 시저 파생형을 제안했다.
프랑스군 외에도 다수의 국가가 도입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성능을 입증했다.
이스라엘 엘빗시스템스USA는 미국 방산 스타트업 안두릴 등과 손잡고 시그마 차륜형자주포를 제시했다. 안두릴의 자율·소프트웨어 기술을 결합한 것을 내세웠다.
후보기종들은 모두 상당한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미 육군은 K9MH로 기울었다.
K9 자주포가 한국에서 대량 운용중이고, 다양한 국가에 수출되어 성공적으로 쓰이는 중이다.
K9A3처럼 사거리를 80㎞까지 연장하는 등의 기술 개량 계획도 있다. 기술적 검증이 이뤄진데다 미래 성능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신규 개발 실패를 경험한 미 육군으로선 주목할 수밖에 없다.
반면 RCH155는 성능은 우수하지만 구매량이 적다. 플랫폼인 복서 8륜 장갑차는 미국에서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 생산비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아처는 미국 오시코시의 M977 군용차량을 플랫폼으로 제시했지만, 기존 판매량이 적고 가격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저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증한 유럽 국가들의 주문과 방산업체의 생산 병목 현상으로 납기 지연 문제를 겪고 있다.
미 육군으로선 K9MH 도입이 가장 나은 선택이었던 셈이다.
◆앞으로 4년, 무엇을 통과해야 하나
미 육군이 K9MH 구매를 결정했지만, 이는 시제품 도입 형식이다.
미군이 쓰는 M777 견인곡사포 1000여문을 대체할 정도로 사업 규모를 키우려면, 향후 4년에 걸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K9MH가 추가로 입증해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우선 기술적 성능이다. 한화측이 제시했던 화력과 사거리, 명중률이 야전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어야 한다.
K9MH를 장기간 사용했을 때 부품과 고장 및 내구성이 효과적으로 관리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2020년대 초 미 육군이 도입하려 했던 XM1299 자주포는 우수한 성능을 지녔으나, 반복되는 사격을 버틸만한 내구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따라서 미 육군은 K9MH의 포신 등에 대한 내구성과 고장 시 대응체계를 꼼꼼하게 검증할 가능성이 크다.
탄약의 호환성 점검도 필수다.
한국군과 미군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규격을 사용하지만, 같은 규격의 탄약이라도 기술적 특성 등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세밀한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다.
미 육군 지휘통제체계와의 실시간 통합도 중요한 이슈다.
네트워크 중심전(NCW) 체제에선 몇 초의 차이가 전장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변수가 된다. 이같은 부분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강력한 화력을 갖춰도 전면 도입은 어렵다.
사이버 보안도 중요한 평가 지표다. 외국산인 K9MH가 미군 네트워크에 편입되는 만큼 높은 수준의 사이버 보안 평가가 이뤄질 전망이다.
실제로 K9MH를 사용할 미 육군 장병들의 평가도 고려대상이다. 장병들이 K9MH를 사용하고 피드백을 제공하면, 제작사가 이를 신속·정확하게 반영하는 과정을 거친다.
미국 내 생산·공급망 확충과 비용 경쟁력 등도 변수다.
이같은 요소를 모두 통과해야 진정한 의미의 양산이 이뤄질 수 있다.
미 육군의 K9MH 시제품 구매는 K방산이 세계 최대 방위산업 시장인 미국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향후 실질적 차원의 성과로 확대되려면 수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시험평가를 마치고 미 육군의 정식 무기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