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흔적 남기기’ 욕망…이번엔 최신형 항모 명칭 흑인 전쟁영웅서 트럼프로 교체 검토

미국의 정치·경제·군사 유산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욕망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엔 미 해군이 흑인 전쟁 영웅의 이름을 따 건조하기로 한 최신형 항공모함의 명칭 변경을 미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으로 변경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CNN 방송이 해군의 내부 논의에 정통한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미 해군의 최신 포드급 4번째 항공모함 명칭 변경에 대한 논의가 올해 초부터 이어지고 있다. 항모의 명칭을 무엇으로 변경할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2명의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명칭을 변경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미 훙 카오 해군장관 대행과 그의 사무실이 미 함정 명명 방식에 대한 공식 지침을 개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 전쟁영웅 도리스 밀러. 미 해군 제공

당초 이 항모의 이름은 일본과의 태평양 전쟁에서 활약한 평범한 해군 장병 출신의 흑인 전쟁영웅 이름을 붙인 ‘USS 도리스 밀러’함으로 확정돼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1기 때인 2020년 1월 토머스 모들리 전 해군장관 대행이 하와이 진주만에서 열린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 기념일 행사에서 이를 공식 발표했다. 미 항모 명칭에 병사 출신 해군 장병의 이름을 딴 건 처음이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이름을 딴 것도 처음이었다.

 

도리스 밀러는 1939년 미 해군에 입대했으며, 태평양 전쟁의 계기가 된 일본의 진주만 공습 당시 취사 보조병이었다. 그는 일본군의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세탁물을 수거하러 가던 중이었지만, 대공포로 일본 전투기들을 향해 사격했고 함선이 가라앉기 시작한 뒤에는 동료 선원들을 대피시키는 데 전념했다. 밀러는 이 공로로 1942년 해군십자훈장을 받았고, 이듬해 일본 잠수함이 쏜 어뢰에 함선이 피격되면서 전사했다. 이런 밀러의 이야기는 2001년 제작된 영화 ‘진주만’에 등장하기도 했다. 

2020년 1월 하와이 진주만에서 열린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 기념일 행사에서 미 전쟁영웅 도리스 밀러의 유족들이 미 해군 새 항모 이름을 발표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그러나 이렇게 오래전 확정된 항모의 명칭에 대한 변경 논의가 정작 함선 기공을 앞두고 시작됐다. 해군 조선소 여건으로 인해 이 항모는 2034년에야 인도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공식은 올해 말 예정돼 있다. 공식적인 명칭 확정이 올해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또 다른 소식통은 해군이 항모 이름 변경 대신 다른 군함에 밀러의 이름을 붙이는 방안, 군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을 추서하는 방안 등도 검토했다고 전했다. 해군 내부에서는 해당 항모를 ‘USS 도리스 밀러함’으로 부르는 걸 사실상 중단하고, 함선 번호인 ‘CVN-81’로만 지칭하는 상황이라 일단 명칭 변경은 거의 확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항모의 이름이 흑인 전쟁영웅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 변경될 경우 논란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군 항모에 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붙이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인데다 흑인 영웅의 영광을 빼앗는 상황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집권기에도 군함 등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데에 관심을 보여왔던 터라 실현이 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이미 백악관은 3만~4만t급의 신규 해군 함정 클래스의 명칭을 '트럼프급'으로 명명하며 군사유산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남긴 바 있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재임 이후 국방 외에 정치, 문화 등 다양한 기관과 시설의 명칭에 자신의 이름을 남겨왔다. 수도 워싱턴의 대표공연장인 케네디센터가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따 ‘트럼프-케네디 센터’로 명칭이 변경했지만, 지난 5월 법원에 의해 제지당해 원래 이름으로 복구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택이 위치한 플로리다 팜비치 국제공항은 최근 ‘도널드 J. 트럼프 국제공항’으로 이름을 바꿨고, 오클라호마주 국도 일부와 플로리다주 도로 등에 트럼프 대통령 이름이 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