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금토드라마 ‘유부녀 킬러’에서 공효진이 연기한 ‘유보나’는 흉악범을 총알 한 발로 처단하는 전설의 저격수다. 26일 개봉하는 영화 ‘경주기행’ 속 공효진이 연기한 ‘장주’는 정반대다. 막내동생을 살해한 남자가 눈앞에 묶여 있지만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몰라 난처해 하는 평범한 여성이다. 두 작품 모두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사적 제재를 다루지만, 공효진이 그려낸 인물의 결은 전혀 다르다.
19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공효진은 “‘유부녀 킬러’와 ‘경주기행’ 모두 사람들이 속으로만 상상했던 일을 대신 보여주면서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경주기행’은 엄마 옥실(이정은)이 막내딸을 죽인 살인범을 세 딸 장주, 영주(박소담), 동주(이연)와 함께 납치해 경주로 떠나는 이야기다. 그런데 극단적인 복수를 감행하는 가족 중 장주는 가장 현실적인 고민을 안고 있다.
세 자매 중 유일하게 결혼해 어린 딸을 둔 장주는 엄마의 복수심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면서도, 자신이 꾸린 가정의 행복 역시 포기할 수 없다. 엄마의 뜻을 거스르지 못해 복수에 동참하지만, 이 일이 남편과 딸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극 후반부, 장주는 엄마를 향해 쌓아둔 무거운 감정을 폭발시키고 만다. 공효진은 “엄마가 자신을 혼내는 것, 엄마가 실망하는 것, 엄마의 상처가 깊어지는 것을 제일 무서워하는 딸이라고 생각하며 장주를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장주는 네 모녀 중 관객과 가장 가까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장주를 “땅에 발을 붙이고 서 있으면서 관객들이 영화 속 가족의 기행을 이해하게 하는 역할”이라고 해석했다.
“장주는 남편과 딸은 어떻게 할지 고민했을 것이고, 어쩌면 이 계획이 실패하기를 바랐을 수도 있어요.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에 빠지기를 바랐어요.”
공효진은 스케줄 탓에 당초 ‘경주기행’ 출연을 고사했다. 하지만 대본이 남긴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출연을 거절한 뒤에도 장주 역을 누가 맡게 됐는지 알아볼 정도였다.
캐스팅이 좀처럼 완성되지 않던 가운데 이정은의 합류 소식은 공효진이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됐다. 두 사람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2019)에서 모녀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공효진은 “이정은 선배님이 엄마 역할을 하는 걸 눈앞에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며 “그만큼 ‘이정은 엄마’가 한다는 소식이 너무 기대됐다. 동생들(박소담·이연)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역할이 다시 나에게 온 게 운명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미조 감독과의 작업을 돌아보면서는 ‘미쓰 홍당무’(2008)로 호흡을 맞춘 이경미 감독을 떠올렸다. 그는 “이경미 감독님과 작업 때 그 열정에 데여 죽을 뻔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며 “엄청난 열정을 봤다. 김미조 감독님 덕분에 좋은 작품이 완성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경주기행’ 흥행에 대한 기대감을 묻자 “신의 영역”이라면서도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숫자가 불어나는 걸 보면서 살 떨리는 경험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제 필모그래피에서 잊지 못할 작품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