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숨은 보석’ 오스트리아 와인 매력탐구 ⑧말라트>
스파클링 와인 젝트 생산 대형 업체 독점
300년 역사 말라트 법정투쟁 끝 승소
1976년 소규모 생산자 첫 젝트 생산
미식 가이드 고 미요 ‘올해의 젝트’ 선정
1976년 이전 오스트리아에서는 스파클링 와인 ‘젝트(Sekt)’를 아무나 만들 수 없었답니다. 국가에서 공식 허가를 받은 소수의 대형 젝트 전문 생산업체 ‘젝트켈러라이(Sektkellerei)’만 젝트를 만들도록 허가됐습니다. 젝트 전문 면허를 취득하고 유지하려면 국가가 요구하는 대규모 상업 시설 기준과 까다로운 세무·위생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특히 대량으로 병 발효를 할 수 있는 값비싼 전문 설비가 필수입니다. 따라서 소규모 와이너리들은 아무리 뛰어난 포도를 재배해도, 아예 젝트를 생산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막대한 자본을 가진 대형 기업들이 이 면허를 독점하게 됩니다. 대형 제조 설비를 갖추고 생산을 독점한 젝트켈러라이들은 여러 지역의 포도를 섞어 대량으로 만드는 저가 젝트를 주로 생산했습니다. 이 때문에 오스트리아 젝트는 ‘개성 없는 저가 와인’으로 이미지가 컸습니다. 법적 투쟁을 통해 이를 깨뜨린 주인공이 와인 산지 크렘스탈(Kremstal)을 300년 넘게 지킨 바인굿 말라트(Weingut Malat)입니다.
◆법정까지 간 오스트리아 젝트 역사
말라트 와이너리의 역사는 17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말라트 가문은 수도 빈(Wien)을 둘러싸고 있는 오스트리아 최대 와인 산지 니더외스터라이히(Niederösterreich, 로어 오스트리아)의 8개 세부 산지 중 하나인 크렘스탈의 땅을 지켜왔습니다. 오스트리아 와인 역사에서 이 정도 깊은 뿌리를 가진 와이너리는 흔치 않습니다. 이 유서 깊은 와이너리를 세상에 알린 사람은 제랄드 말라트(Gerald Malat)입니다. 그는 1976년 젝트켈러라이가 아닌 소규모 와이너리로선 처음으로 직접 생산한 포도를 양조하고 직접 병에 담아 판매하는 젝트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전까지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당시 법은 작은 규모의 생산자가 직접 젝트를 만드는 것을 아예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랄드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 법에 맞서 소송을 걸었고,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승소를 이끌어냅니다. 당시 제랄드는 “농부가 자신의 밀로 밀가루를 만드는 것처럼, 와인 생산자도 자신의 포도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을 폈는데 이를 재판부가 받아들인 겁니다. 이 판결 하나로 오스트리아의 수많은 소규모 생산자들이 자기 이름을 건 젝트를 만들 길이 열렸습니다. 말라트가 ‘오스트리아 젝트의 개척자’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2008년부터는 아들 미하엘 말라트(Michael Malat)가 가업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닦아놓은 전통 위에, 더 정교하고 현대적인 자신만의 스타일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미식·와인 가이드북 고 미요(Gault & Millau)가 최근 오스트리아 최고의 스파클링 와인을 가리는 ‘2026 올해의 젝트’를 발표했는데, 말라트 블랑 드 블랑 그로세 리저브(Blanc de Blancs Große Reserve) 2016이 선정됐습니다. 또 세계 최대 와인 경진대회 콩쿠르 몽디알 드 브뤼셀Concours Mondial de Bruxelles, CMB) 2024 스파클링 와인 세션에서 말라트 그로세 리저브 젝트 2016이 그랑골드, 말라트 브뤼 나튀르 리저브 젝트 2018이 골드를 수상합니다. 또 오스트리아의 권위 높은 와인 품평 대회 살롱 외스터라이히 바인(SALON Österreich Wein) 2024에서 말라트 브뤼 나튀르 리저브 2018이 ‘젝트 오스트리아 리저브’ 분야, 말라트 그로세 리저브 2016이 ‘젝트 오스트리아 그로세 리저브’ 분야 우승인 ‘살롱 지거(SALON Sieger)’를 차지합니다. 300년 역사에 안주하지 않고, 지금도 크렘스탈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 주지 않아야 뿌리 깊어져
말라트의 양조 철학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사람 손을 최대한 덜 대는 것입니다. 포도 본연의 맛과 미네랄을 있는 그대로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원칙은 인공적으로 물을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포도나무는 스스로 살 길을 찾습니다. 물과 미네랄을 찾아 땅속 깊이 뿌리를 뻗어 내려갑니다. 뿌리가 깊어질수록 땅속의 다양한 미네랄을 끌어올리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와인의 개성으로 나타납니다. 편하게 자란 포도나무는 좋은 와인을 만들지 못한다는, 어찌 보면 역설적인 믿음입니다.
발효 과정에서도 인공 효모를 쓰지 않습니다. 포도 껍질에 자연스럽게 붙어 있는 야생 효모만 고집합니다. 또 귀부균(Botrytis)에 감염된 포도는 아무리 달콤한 맛을 낼 수 있어도 가차 없이 골라내 제외합니다. 와인의 맑고 투명한 맛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포도는 100% 손으로만 수확하며, 친환경 유기농법을 철저히 실천하고 있습니다.
◆산과 강이 만든 땅
말라트의 포도밭은 도나우강 남쪽 기슭, 팔트-푸르트(Palt-Furth) 마을과 괴트바이크 수도원(Stift Göttweig) 언덕 기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서로 다른 두 기후가 부딪히는 지점입니다. 동쪽 판노니아 평원(Pannonian Plain)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공기와, 북쪽 발트피어텔(Waldviertel) 숲에서 내려오는 서늘한 바람이 맞부딪힙니다. 여기에 도나우강이 기온을 완만하게 다독여 주면서도 낮과 밤의 기온 차는 오히려 크게 벌려놓습니다. 이런 일교차 덕분에 포도알 속 향은 진하게 응축되고, 산미는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토양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풍화된 편마암과 화강암, 편암 같은 고대 암석에, 두꺼운 뢰스(Loess, 황토질 토양)와 자갈이 좁은 땅에 촘촘히 뒤섞여 있습니다. 좁은 지역 안에 이토록 다양한 토양이 모여 있다 보니, 품종마다 가장 잘 맞는 땅을 골라 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말라트가 가진 남다른 무기입니다.
특히 말라트는 뛰어난 싱글빈야드를 여럿 소유하고 있습니다. 리트 횔그라벤(Ried Höhlgraben)은 고대 암석과 뢰스가 만나 깊고 스파이시한 그뤼너 벨트리너(Grüner Veltliner)를 잘 길러냅니다. 편암질 토양인 리트 질버비흘(Ried Silberbichl)과 리트 슈타인뷜(Ried Steinbühel)은 섬세하고 미네랄이 살아있는 리슬링(Riesling)의 명당으로 꼽힙니다. 이 밭들은 모두 오스트리아 전통와이너리협회(ÖTW)가 공인한 1등급 밭, 즉 ‘에르스테 라겐(Erste Lagen)’입니다.
◆말라트 와인 스타일
말라트 와인의 75% 이상은 화이트 와인입니다. 그 중심에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토착 품종 그뤼너 펠트리너와, 미네랄 표현이 뛰어난 리슬링이 있습니다. 최고급 스파클링과 화이트를 위해서 샤르도네와 피노 블랑도 소량 재배합니다. 레드 와인으로는 오스트리아 토착 품종인 츠바이겔트(Zweigelt)와 프랑스 부르고뉴 스타일의 우아함을 오스트리아 땅에서 재현하기 위해 피노 누아를 정성껏 기릅니다.
말라트 와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정교함’입니다. 무겁지 않고 알코올 느낌도 튀지 않습니다. 맑고 투명한 인상 속에서도 밸런스가 뛰어나, 한 잔을 마시면 자연스레 다음 잔이 생각나는 스타일입니다. 특히 크렘스탈 특유의 찌릿하고 청량한 산도가 와인의 뼈대를 이룹니다. 여기에 깊은 뿌리에서 끌어올린 짭조름한 미네랄과 복합적인 풍미가 더해져 긴 여운을 남깁니다. 특히 피노 누아나 샤르도네처럼 원래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유명한 품종을 다룰 때도, 말라트는 프랑스 와인을 흉내 내지 않습니다. 대신 크렘스탈만의 서늘하고 날카로운 산미를 입혀, 자신들만의 생동감 넘치는 스타일로 완성해냅니다. 말라트 와인은 ‘와인 스피어 아시아(Wine Sphere Asia)’를 통해 초이스 트레이딩이 국내에 수입합니다.
▶말라트 블랑 드 블랑 그로세 리저브(Malat Blanc de Blancs Große Reserve)
말라트의 시그니처 젝트로 오스트리아 유명 매체 팔스타프(Falstaff)를 비롯한 여러 해외 매체에서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갓 구운 브리오슈와 고소한 헤이즐넛 향이 먼저 훅 들어오고, 그 뒤로 노란 열대 과일과 섬세한 복숭아, 아카시아 꽃향기가 겹겹이 피어납니다. 신선한 라임 제스트와 미세한 스모키 미네랄 뉘앙스까지 더해져 향만으로도 층이 여러 겹인 와인이라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입에 머금으면 구조감이 매우 정교하고 정밀합니다. 신선한 사과와 망고의 과즙미가 도드라지고, 마지막 여운에서는 짭조름한 미네랄리티가 길게 이어집니다. 짜릿하고 살아있는 산도가 전체 균형을 딱 잡아주면서, 가볍고 우아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장기 숙성 잠재력도 뛰어나다는 평가입니다.
연어, 고등어, 참치 스테이크처럼 기름진 생선 요리는 물론 담백하게 구운 흰살생선과도 잘 어울립니다. 신선한 굴이나 구운 가리비 관자, 찐 랍스터 같은 갑각류 요리와 곁들이면 미네랄리티가 한층 살아납니다. 가벼운 핑거 푸드나 짭조름한 하몬, 샤퀴테리, 튀김 요리 같은 애피타이저와도 궁합이 좋고, 숙성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같은 하드 치즈나 크리미한 브리 치즈와 곁들여도 훌륭합니다.
샤르도네 100%며 당을 전혀 추가하지 않는 브뤼 나튀르(Brut Nature), 즉 제로 도자주(Zero Dosage) 와인입니다. 포도는 전부 손으로 수확하고, 300~500L 크기의 오크통에서 1차 발효를 거칩니다. 또 효모 앙금과 함께 최소 60개월 이상 병숙성합니다. 이 긴 시간 동안 효모 앙금을 병목으로 모으는 리들링을 손으로 진행합니다. 공들인 와인답게 평단의 반응도 뜨겁습니다. 팔스타프 와인 가이드(Falstaff Wein-Guide) 2025/26년판에서 96점을 받으며 ‘오스트리아 최고의 스파클링 와인(Sortenbester Schaumwein)’으로 선정됐습니다. 2012년 빈티지는 팔스타프에서 94점을 받았고 해외 와인숍과 수입사들 사이에서는 ‘샴페인에 필적하는 미네랄리티와 복합미를 갖춘 오스트리아 최고 정점의 젝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말라트 리트 질버비흘 1ÖTW 리슬링(Malat Ried Silberbichl 1ÖTW Riesling)
리슬링 100%입니다. 싱글빈야드 질버비흘은 ‘은빛 언덕’이라는 뜻으로, 반짝이는 운모편암(Mica schist) 토양이 저녁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1562년 문헌에 처음 등장할 만큼 오래된 밭이기도 합니다. 미세한 허브 향과 노란 과실 향이 기본을 이루는 가운데, 잘 익은 열대과일과 패션프루트, 백도 향이 시트러스 노트와 매력적으로 어우러집니다. 입안에서는 매우 치밀하고 단단한 구조감이 느껴지고, 싱그러운 핵과류의 풍미와 함께 생동감 넘치고 톡 쏘는 산도가 중심을 잡아줍니다. 운모편암 토양에서 비롯된 짭조름한 미네랄리티가 여운으로 길게 이어집니다.
가볍게 조리한 생선 요리나 신선한 회, 해산물 요리와 곁들이면 산뜻함이 배가됩니다. 탄탄한 산미와 구조감 덕분에 치킨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 돼지고기와 송아지 고기 등 화이트 미트 요리, 담백하게 구운 채소와 잘 어울립니다. 수령 30년이 넘은 포도나무에서 나는 와인이라 크리미하면서도 진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손으로 수확한 포도는 자연 효모로 발효되며, 인공 관개는 하지 않습니다. 2010년 빈티지는 독일 마이닝거가 주최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리슬링 경연대회 ‘베스트 오브 리슬링(Best of Riesling) 2016’에서 2600여 개 출품작 중 ‘최고의 유럽 리슬링’으로 선정됐습니다.
▶말라트 푸르트 리슬링(Malat Furth Riesling)
푸르트 마을에서 생산되는 빌라주급 리슬링입니다. 신선한 흰 사과와 은은한 서양배, 상큼한 오렌지 껍질 향이 매력적으로 어우러집니다. 가볍고 산뜻한 바디에 부드러우면서도 촘촘한 텍스처가 특징입니다. 잘 익은 복숭아의 달콤한 과즙 풍미가 입안을 채우고 리슬링 특유의 팽팽한 산미가 균형을 잡아주며, 미네랄 뉘앙스와 시트러스한 여운이 깔끔하게 이어져 부담 없이 마시기 좋은 스타일입니다. 청량한 산미 덕분에 신선한 샐러드와 잘 맞습니다. 굴이나 조개찜, 가벼운 생선 구이, 초밥이나 롤 같은 일식 요리와 곁들이면 비린 맛을 잡아주면서 깔끔함을 더해줍니다. 지나치게 맵지 않은 태국 요리나 베트남 쌀국수, 가벼운 딤섬 같은 아시안 음식과도 잘 어울립니다.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매일 즐기기 좋은 웰메이드 데일리 와인으로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말라트 푸르트 샤르도네(Malat Furth Chardonnay)
국제 품종 샤르도네를 오스트리아식으로 풀어낸 와인입니다. 신선한 노란 과실 향과 은은한 오렌지 제스트, 파인애플과 아카시아 꿀 뉘앙스가 피어오릅니다. 잘 짜인 구조감을 지녔고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리는 우아한 스타일입니다. 두 번째 잔이 자연스럽게 당기는 마시기 편한 스타일입니다. 게나 랍스터 같은 갑각류, 조개류와 굴 요리에 아주 잘 어울립니다. 치킨 샐러드나 구운 닭고기, 가벼운 돼지고기 요리와도 매칭이 좋고, 연어나 참치 구이처럼 기름기가 있는 생선 요리와 함께하면 생동감 있는 산미가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줍니다. 품종은 샤르도네 100%, 다뉴브강 남안 푸르트(Furth) 마을에서 자랍니다. 손으로 수확합니다.
▶말라트 크레이지 크리처스 그뤼너 벨트리너(Malat Crazy Creatures Grüner Veltliner)
크렘스탈 팔트(Palt) 마을 인근 여러 밭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그뤼너 펠트리너로 만듭니다. 젊은 와인 애호가들을 겨냥해 선보인 감각적인 프로젝트 와인입니다. 병 속 와인은 모두 같은 그뤼너 벨트리너이지만 서로 다른 4종의 괴짜 생명체 일러스트 레이블로 출시돼 수집하는 재미까지 더했습니다. 레몬과 백도, 청사과 향이 신선하게 피어오르고, 그뤼너 벨트리너의 시그니처인 화이트 페퍼의 알싸한 스파이스와 은은한 허브 노트가 뒤따릅니다. 미디엄 바디에 바삭하고 생동감 넘치는 산미를 지녔고, 부드러운 질감 뒤로 톡 쏘는 레몬 뉘앙스가 중심을 잡아줍니다. 깔끔한 미네랄리티로 산뜻하게 마무리됩니다.
산미가 좋아 바삭한 오징어 튀김이나 라임을 곁들인 생굴 요리와 궁합이 훌륭합니다. 관자 타르타르, 감귤 소스를 곁들인 새우 꼬치구이, 바질 페스토 홍합찜 같은 신선한 해산물 전채와도 잘 어울리고, 허브와 후추 풍미 덕분에 이탈리아식 송아지 커틀릿 같은 가벼운 육류 튀김 요리와도 훌륭하게 어우러집니다. <‘알프스 숨은 보석’ 오스트리아 와인 매력탐구 ⑨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