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나면 도망치지 말고 들어오라”…日 최고층 빌딩의 재난 대비법 [재패나우]

지진의 나라에 있는 ‘수직 정원 도시’ 아자부다이 힐스 가 보니

제진 벽·댐퍼로 강진에도 건물 기능 유지
‘귀가 곤란자’ 3600명 수용…비상 식량 비축
자체 발전 시설 완비에 직원 300명 방재요원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는 ‘아자부다이 힐스’라는 복합단지가 있습니다.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세 개의 고층 빌딩이 들어선 곳이죠. 연면적 약 86만㎡에 달하는 대규모 공간에 주거 공간과 오피스 시설, 쇼핑·레스토랑, 뮤지엄, 갤러리, 학교, 의료 시설 등 다양한 도시 기능이 모여 있습니다.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아자부다이 힐스 전경. 모리빌딩 제공

아자부다이 힐스는 녹지 공간을 최대한 확보한 상태에서 과밀 문제 해소를 위해 건물을 높이 올린, 이른바 ‘수직 정원 도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가장 높은 건물인 모리JP타워는 지상 64층, 지하 5층 규모로 높이는 약 325m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파탑인 도쿄 스카이트리(634m)나 도쿄타워(333m)보다는 낮지만, 오사카에 있는 아베노하루카스(300m)를 약 25m 차이로 제치고 일본 최고층 빌딩이 됐습니다.

 

아자부다이 힐스 부지는 원래 경사지에 목조 단독주택 등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골목길은 소방차 등 긴급 차량들이 오가기도 힘들 정도로 좁았다고 하죠. 이곳에 1989년 재개발협의회가 설립돼 2023년 11월 아자부다이 힐스가 개장하기까지 약 35년이 걸렸습니다. 아크 힐스, 롯폰기 힐스 등이 다 비슷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습니다. ‘지역 주민들과의 합의 형성을 통해 다양한 도시 기능이 복합된 컴팩트 시티를 만든다.’ 아자부다이 힐스를 만든 부동산 업체 모리빌딩이 도심 재개발의 대표 주자로 언급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들 힐스 단지는 수평 공간과 수직 공간이 입체적으로 얽혀 있어 초행길에는 조금 헤맬 수가 있습니다. 목적지를 찾느라 애를 먹다 보면 ‘이런 데서 지진이 나면 어떻게 대피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마침 최근에 구마모토현에서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 중 가장 높은 진도 7 지진이 발생하기도 했더랬죠. 그러던 참에 모리빌딩 측이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지진 대책’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지난 21일 아자부다이 힐스의 모리JP타워에서였습니다.

 

주거, 노동, 교육, 교류, 휴식, 구매, 대중교통 이용 등 다양한 도시 기능이 도보권 내에 갖춰진 모리빌딩의 ‘컴팩트 시티’ 개념을 보여주는 그림. 모리빌딩 제공.

◆“강진에도 건물은 안전” 자신하는 모리빌딩

 

모리JP타워 같은 초고층 빌딩은 지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요. 모리빌딩 측은 “힐스 건물에는 제진(制振·지진이나 바람에 의한 흔들림을 줄이는 것)벽과 제진 댐퍼(진동·충격 완화 장치) 등 현재 가능한 최고 수준의 내진 성능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내진이 인명피해 예방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면 제진은 건물의 기능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개념입니다. 모리빌딩 구조설계부 관계자는 “큰 지진이 발생한 뒤에도 건물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목표”라며 “일본 법률이 요구하는 내진·내구성 기준보다 두 단계 정도 높은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가령 모리JP타워에는 지진 발생 시 기둥 등의 변형을 막기 위한 V자 형태의 구조물이 1200개, 점성체를 이용해 지진 에너지를 흡수하는 제진벽이 302개, 유압으로 진동을 줄이는 오일 댐퍼가 304개 설치돼 있다고 합니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오일 댐퍼 모형을 통한 시연이 있었는데요. 지진이 발생해 건물이 좌우로 흔들리면 기름이 들어 있는 원통 내 피스톤이 움직이면서 기름의 점성 저항으로 에너지를 흡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모리빌딩 관계자는 “지진 에너지가 열 에너지로 전환되고, 그 열이 공기 중으로 방출되면서 건물 내부에 쌓인 에너지를 없애 준다”며 “결과적으로 건물 흔들림이 줄고 벽 등의 균열을 막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발생한 진도 7 규모의 지진을 실제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해 보고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는 식으로 설계하고 있다”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수준의 강진이 발생해도 이 건물은 계속 사용할 수 있다”고 자신하더군요.

 

실제 지진이 발생하면 건물이 각 층별로 얼마나 흔들렸고 어떤 위험이 발생했는지, 건물 자체에 손상된 부분은 없는지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모리빌딩 관계자가 아자부다이 힐스에 설치된 제진 설비 ‘오일 댐퍼’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도쿄=유태영 특파원

◆“지진이 나면 힐스로 모여라”

 

15년 전 동일본 대지진 때 ‘귀가 곤란자’가 대거 발생했습니다. JR 등 철도 운행이 지진 여파로 중단되면서 도쿄 등 수도권에서만 약 500만 명이 당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발이 묶였다고 하죠. 철도가 끊기자 버스나 택시를 타려는 사람들이 몰렸고, 수십㎞를 걸어서 귀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날 경험을 계기로 일본에서는 회사 사무실에 운동화를 비치해 두거나, 걷기 편한 신발을 구입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지 지인이 “동일본 대지진 당일 귀가를 못해 회사 근처에 숙소를 잡으려는데 신용카드가 먹통이었다”며 “그날 이후 외부 숙박에 필요한 정도의 현금을 항상 갖고 다닌다”고 말했던 기억도 나네요.

 

모리빌딩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달아나는 곳이 아니라 안전 확보를 위해 돌아오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재난 대응형 시설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강진에도 안전한 건물임을 자신하기에 지진 발생 시 건물 로비, 복도 등을 귀가 곤란자용 대피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아자부다이 힐스는 귀가 곤란자 약 3600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지하 주차장 한쪽 창고에는 이 인원이 사용할 수 있는 사흘치 비상식량(크래커·통조림·건조형 쌀)과 물, 체온 유지용 은박 담요, 에어 매트 등이 보관돼 있었습니다. 아기용 기저귀와 여성 위생용품, 단수 시 배설물을 굳히는 응고제도 눈에 띄었습니다.

 

이밖에 록폰기 힐스는 5000명, 도라노몬 힐스는 52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생수의 경우 유통기한이 5년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유통기한이 1년 정도 남으면 새 것으로 바꾸고 기존 제품은 재해 지역 구호품이나 방재 훈련용으로 무상 지원한다고 합니다. 비상식량 등을 비축하는 데 드는 비용은 도쿄도가 6분의 5를, 미나토구가 6분의 1을 부담한다네요. 민관이 협력해 재난 대응 체제를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아자부다이 힐스가 귀가 곤란자 용으로 비축해 두고 있는 비상 식량과 물품들. 도쿄=유태영 특파원

◆“비상 전력 OK…가스 누출 만전”

 

아자부다이 힐스는 비상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 단전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지하 5층에 에너지 센터가 마련돼 있는데, 대형 가스 엔진 발전기 2기가 이날도 큰 소리를 울리면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평소 이곳에 필요한 전력의 50%를 이 발전기가 생산하고, 지진 등 재해가 발생해 단전이 될 경우에는 100%를 담당한다고 합니다. 이 발전기로 생산하는 전력이 인구 1만명가량의 소도시 정도는 가뿐히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이 모리빌딩 측의 설명이었습니다.

 

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고온의 배기가스 열은 버리지 않고 냉난방이나 건물의 온수 공급 등에 활용하고 있답니다.

 

지난달 구마모토 강진 당시 이온몰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는데요. 이곳에서는 가스 누출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모리빌딩 측은 “가스 배관 상부에는 반드시 가스 누출 감지 센서가 설치돼 있고, 큰 지진이 발생하면 가스를 사용하는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도록 하는 장치도 있다”며 “배관 안에 남아 있는 가스를 자동으로 외부로 배출하는 장치가 마련돼 있고, 건물 입구에 에너지 센터를 원격으로 정지시키는 가스 밸브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아자부다이 힐스의 가스 엔진 발전기. 도쿄=유태영 특파원

◆대지진·대공습 경험한 창업주의 철학

 

모리빌딩의 이런 재난 대비는 창업주인 모리 다이키치로의 경영 철학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모리 창업주의 부친은 쌀가게를 운영하면서 인근에 30채 정도의 임대 부동산을 관리했다고 합니다. 그 부동산들이 1923년 간토대지진으로 한 번,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또 한 번 황폐화하면서 모리 집안은 자산 대부분을 잃었습니다.

 

경제학 교수였던 모리 다이키치로는 1955년 모리부동산을 세워 본격적으로 부동산 사업에 뛰어 들었고, 1959년 모리빌딩을 설립해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모리빌딩 관계자는 “모리 창업주는 화재와 지진에 강한 건물을 짓겠다는 목표로 1950년대에 콘크리트 빌딩을 짓기 시작했고, 그것이 현재 모리빌딩의 기반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1956년 4월 준공된 니시신바시 제2모리빌딩은 현재 모리빌딩의 원점 격인 건물로, 지금까지도 소중히 보존 중이라고 합니다. “커다란 지진 경험을 바탕으로 견고한 건물을 만들겠다는 창업자의 DNA가 남아 있다”는 거죠.

 

모리빌딩은 도쿄 23구에서 진도 6약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전직원이 자동으로 비상 대응 체제로 전환합니다. 롯폰기 힐스 등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반경 3.5km 이내 사택에 거주하는 직원 등 300여 명이 방재 요원으로 지정돼 있어 지진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초동 조치에 나선다고 하네요. 이들은 8월과 12월을 제외한 매달 대응 훈련을 합니다. 전직원이 참여하는 종합 훈련도 1월, 3월, 9월 등 1년에 세 차례 실시하고요.

 

오는 9월1일은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지 103년째가 되는 날입니다. 일본에서는 9월1일을 방재의 날로, 8월30일~9월5일 일주일간은 방재 주간으로 정해 지진·태풍 등에 대비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합니다. 9월1일 아자부다이 힐스 등 모리빌딩에서 만든 건물을 찾으면 흰색 헬멧과 노란 방재복 차림으로 방재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