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하계동 미성아파트가 재건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1989년 준공된 685가구 단지를 최고 49층, 1000가구가 넘는 대단지로 바꾸는 방안이 거론된다. 인근 하계·중계·상계동의 노후 아파트들도 비슷한 시기에 재건축 절차를 밟고 있어, 노원구 전체가 대규모 정비사업의 변곡점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22일 노원구와 정비업계에 따르면 하계미성아파트는 재건축 추진위원회 구성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정비업계에서는 현재 685가구인 단지를 최고 49층, 약 1020가구 규모로 재건축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9월 추진위원회 승인, 2027년 상반기 조합설립인가가 목표 일정으로 거론되지만, 층수와 가구 수를 포함한 세부 내용은 아직 공식 정비계획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사업이 진행되면서 달라질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하계미성은 지하철 7호선 하계역을 걸어서 이용할 수 있는 역세권 단지다. 세이브존, 노원을지대학교병원 등 생활·의료 인프라가 가깝고, 동북선 개통까지 예정돼 있어 교통 여건도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40여 단지가 동시에 움직인다
하계미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980~1990년대 대규모 택지개발로 조성된 상계·중계·하계동 일대에서 재건축 사업이 한꺼번에 움직이고 있다. 준공 30~38년 차 아파트가 몰려 있는 데다 정비사업 규제 완화와 교통 호재까지 겹치면서, 정비계획 통과와 추진위원회 승인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노원구에 따르면 현재 지역 내 40여개 단지가 재건축 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계동 한신동성아파트는 속도가 특히 빠르다. 1993년 준공된 498가구 단지로, 정비계획안에는 용적률 339.89%를 적용해 최고 46층, 940가구로 재건축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금보다 442가구 늘어나는 규모다. 노원구는 지난 5월 정비계획안 주민공람을 마치고 8월 추진위원회 구성을 위한 공공지원 절차에 들어갔다. 9월 예비추진위원회 구성, 10~11월 동의서 징구를 거쳐 12월 정비구역 지정·정비계획 결정 고시에 맞춰 연내 추진위원회 승인을 받는다는 목표다. 사업성 보정계수는 최대치인 2.0을 확보했고, 인근 동북선 정거장 신설에 따른 역세권 용적률 특례도 사업성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하계장미아파트는 이미 추진위원회 승인을 마쳤다. 최고 59층, 약 2650~2775가구 규모의 재건축을 검토하며 내년 상반기 조합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1320가구 규모의 하계현대우성은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한 뒤 신탁방식 재건축을 택했다. 한국토지신탁을 예비사업시행자로 선정해 정비계획 수립과 사업성 검토를 진행 중이다.
◆중계·상계동도 대단지 재건축 대기 중
중계동에서는 중계그린아파트가 선두다. 1990년 준공된 15층 25개 동, 3481가구 규모 단지로, 정비계획안대로라면 최고 49층, 4432가구로 재건축된다. 역세권 용적률 완화 1.2배를 적용받아 용적률도 기존 191%에서 359.9%까지 높아진다. 노원구는 지난 5월 20일 중계그린 조합설립추진위원회 구성을 승인하고 다음 날 고시했다. 준공 36년 만에 재건축을 이끌 공식 추진 주체가 마련된 셈이다. 지하철 7호선 중계역과 도보 3~4분 거리인 데다 은행사거리 학원가와 맞닿아 있어 입지 경쟁력도 높다는 평가다. 추진위는 내년 6월 조합설립인가를 목표로 잡고 있다.
상계동에서도 대단지 재건축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1988년 준공된 상계보람아파트는 지난 5월 6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정비사업 특별분과위원회에서 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안이 수정가결됐다. 현재 3315가구인 단지는 용적률 300% 이하, 최고 45층, 총 4483가구 규모로 재건축된다. 이 중 공공주택은 323가구다. 계획대로면 상계동 일대 최대 규모 재건축 사업 가운데 하나가 된다. 2030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 따른 용적률 완화와 사업성 보정계수 1.8이 적용되면서 사업 여건도 나아졌다. 지하철 노원역 4·7호선과 마들역 7호선, 상계역 4호선을 모두 걸어서 이용할 수 있는 이른바 ‘트리플 역세권’도 강점이다. 수락산 조망이 가능한 자리에는 실버케어센터 등 사회복지시설도 들어설 예정이다.
상계주공 단지들도 속속 움직이고 있다. 상계주공6단지는 지난 7월부터 정비계획안 주민공람에 들어갔다. 현재 2646가구를 최고 59층, 3573가구로 재건축하는 내용이다. 상계주공7단지는 지난 6월 재건축진단에서 종합점수 49.54점으로 D등급,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으며 첫 관문을 넘었다. 상계주공14단지는 신속통합기획 자문 신청에 필요한 주민 동의를 전자동의 방식으로 확보했다.
◆동북선·GTX-C, 교통망이 사업성을 밀어준다
노원구 재건축 열기를 끌어올리는 또 다른 축은 교통망 확충이다. 왕십리역에서 상계역까지 13.4㎞를 잇는 동북선은 16개 정거장을 두고 2027년 하반기 개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당초 2026년 7월 개통 예정이었지만 토지 보상과 지장물 이설, 상수도관 정비 문제 등이 겹치면서 일정이 1년 4개월 밀렸다.
동북선이 개통하면 지금은 4호선과 2호선을 갈아타야 하는 상계~왕십리 구간을 환승 없이 약 25분 만에 이동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약 37분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이동시간이 10분 이상 줄어드는 셈이다. 왕십리역에서는 2·5호선과 경의중앙선, 수인분당선으로도 갈아탈 수 있어 서울 도심과 강남권 접근성도 함께 개선될 전망이다.
인접한 창동역에는 GTX-C 노선도 들어선다. 공사비 증액 문제로 사업이 한동안 지연됐지만, 지난 4월 대한상사중재원 중재를 거쳐 약 2000억원의 공사비 증액이 확정되면서 공사가 재개됐다. 현재 개통 목표는 2031년이다. 다만 착공이 늦어진 만큼 실제 개통 시기가 추가로 밀릴 가능성도 정비·건설업계에서 나온다.
교육과 의료 인프라는 노원구의 기존 강점이다. 중계동 은행사거리 학원가를 비롯해 서울여대, 삼육대, 육군사관학교가 자리 잡고 있고, 노원을지대학교병원과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등 대형 병원도 갖추고 있다.
◆관건은 동의율과 분담금
상계·중계·하계동의 노후 대단지들이 동시에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사업이 현실화하면 노원구의 주거환경과 스카이라인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변수도 만만치 않다. 재건축은 정비계획 수립과 정비구역 지정, 추진위원회 승인, 조합 설립,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를 차례로 거쳐야 한다. 실제 착공과 입주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결국 주민 동의율과 추가 분담금, 공사비 상승, 인허가 속도가 각 단지의 사업 속도를 가를 전망이다. 하계미성을 비롯한 노원구 노후 단지들이 잇따라 첫발을 떼고 있지만, 지금의 ‘재건축 속도전’이 실제 새 아파트 입주로 이어질지는 이제부터가 본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