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태양 아래서/가산 카나파니/열림원/1만8800원
팔레스타인 작가 가산 카나파니의 중단편집이다. 카나파니는 팔레스타인 저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의 대변인을 맡았으며 기관지 ‘알 하다프’의 편집인을 지냈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삶과 비극을 작품에 담아온 그는 1972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차량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국내에 소개된 카나파니의 유일한 소설집이다. 출간 이후 절판돼 쉽게 구하기 어려웠지만, 2023년 10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시작되고 가자지구가 폐허로 변하면서 다시 책을 찾는 독자들이 늘었다. 열림원이 이번 복간을 결정한 배경이다.
카나파니의 문학은 팔레스타인의 구체적인 역사에서 출발하지만 한 민족의 비극을 기록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전쟁과 점령, 추방과 망명의 경험을 이름 없는 개인의 삶과 내면에 새겨진 상처로 형상화하면서 ‘폭력과 상실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존엄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으로 확장한다.
그의 문학에서 역사는 거대한 정치적 사건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고향을 잃은 사람의 기억, 가족과 헤어진 이의 상처, 생존을 위해 내리는 불완전한 선택 속에 역사가 스며든다. 카나파니의 인물들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그들은 기억하고 선택하며 자신이 처한 현실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는다. 문학을 통해 역사에서 지워진 존재들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기록되지 못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표제작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이런 카나파니 문학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팔레스타인 출신 세 남자가 더 나은 삶을 찾아 쿠웨이트로 향하는 여정은 단순한 이주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을 수 없는 이들에게 밀입국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선택이다.
세 사람은 뜨거운 사막을 가로지르기 위해 밀폐된 물탱크 속에 몸을 숨긴다. 그러나 국경을 넘기 직전 물탱크 안에서 질식해 죽는다. 이들의 죽음은 개인의 잘못이나 판단 착오가 아니라 선택의 가능성 자체를 빼앗아버린 구조적 폭력의 결과로 제시된다.
특히 물탱크는 추방된 인간의 실존적 고립을 상징한다. 그 안에서 맞이하는 세 사람의 죽음은 전쟁과 국경, 빈곤과 추방의 틈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압축한다.
작품의 마지막에 던져지는 질문, “왜 물탱크의 측면을 두드리지 않았는가”는 강렬하다. 그것은 단순히 세 사람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이 아니다. 죽어가는 이들의 신호를 듣지 못한 세계를 향한 질문이며,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