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만사(萬事)”라는 명언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이는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의 권력 행사 과정에서 가장 명확하게 입증돼왔다. 단순한 공직 배분이 아니라, 정권의 철학을 입증하고 역량을 결집하는 직관적 정치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사가 망사(亡事)가 되지 않기 위해선 백팔번뇌(百八煩惱)에 가까운 고민과 함께 예측 가능성, 신속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집행부의 도덕성과 정통성을 평가받는 첫 관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잡음이 불거지면 동력이 순식간에 상쇄되면서 정책의 실패보다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최근 수년간 인사 문제가 불거졌던 사례들이 적잖다. 단체장과 의회 간 갈등, 조직개편 부결, 수사·감사 등으로 정기인사가 급작스럽게 연기·보류되면서 혼란을 겪었다.
경기 성남시는 2023년 상반기 인사가 미뤄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2022년 12월 말, 시의회 여야 간 갈등으로 예산안 및 조직개편 조례안 처리가 파행되면서 ‘준예산 사태’가 발생한 직후였다. 2023년 1월 초 예정돼 있던 대규모 정기 승진·전보 인사가 갑자기 연기되면서 국·과장급 부서장 공석과 전보 동결로 행정 공백이 현실화했다. 당시 공무원 노조는 “정치적 갈등에 따른 공직사회 피로감”을 호소하며 즉각적인 인사 단행을 촉구했다.
2023년 충북 청주시와 전북 전주시, 2022년 서울 마포구, 2014년 제주특별자치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 2~5급 간부 인사 전면 유예…6급 이하만 제한적 이동
민선 9기 경기도가 올 하반기 예정된 정기인사를 내년 1월로 돌연 연기하면서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사실상 부도를 인정한 ‘재정 비상’ 선언에 이어 인사 보류까지 겹치면서 공직사회와 일선 시·군은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22일 경기도 등에 따르면 도는 전날 내부 공지를 통해 당초 8~9월 중 실시할 예정이던 하반기 정기인사 일정을 내년 1월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도는 조직진단을 통해 유사·중복 사업을 정비하고 부서 간 칸막이를 해소하는 조직개편을 먼저 진행한 뒤 인사를 연계한다는 방침이다. 조직개편 전에 인사를 단행할 경우 재배치가 되풀이되는 등 행정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도가 조직진단을 통한 사업 재구조화와 조직개편이 우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간부급 인사가 전면 보류되면서 도정 의사결정 차질은 물론 일선 지자체의 행정 공백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번 결정에 따라 부단체장, 실·국장, 과장, 팀장급 등 2~5급 간부 인사는 멈춰 섰다. 5급 사무관 교육 대상자 선발도 내년으로 미뤄진다. 반면 6급 이하 직원의 경우 승진과 휴직 등에 따른 결원 보충 인사만 내달 21일 전후로 진행된다. 도는 내년 상반기 정기인사 때까지 부서 3년, 실·국 6년으로 운영해 온 의무 전보 규정도 한시적으로 유예하기로 했다.
지난해에는 7월1일자로 실·국장과 부단체장 등의 인사가 이뤄졌다. 4급 과장급 인사도 7월까지 마쳤다.
◆노조 “사상 초유의 반쪽 인사”…시·군 재난 컨트롤타워 공백
이 같은 정기인사 연기 방침에 공직사회는 당황하는 분위기다. 경기도청공무원노동조합은 21일 ‘사상 초유의 최악 인사를 규탄한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성명에는 추미애 지사의 사과와 인사 정상화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노조는 “조직을 이끌어야 할 간부급 인사는 미뤄둔 채 실무진만 이동시키는 건 하위직에 책임을 떠넘기는 ‘반쪽짜리 인사’”라며 “장기간 승진과 전보를 기다려 온 직원들에게 깊은 상실감과 허탈감을 안겼다”고 비판했다.
도청의 한 공무원은 “올해 말 퇴직을 앞두고 승진 기회를 놓친 직원들이 침울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선 시·군의 재난 대응과 행정 차질 우려도 커지고 있다. 현재 경기도 파견 부단체장이 공석인 시·군은 성남, 시흥, 광주, 이천, 양주, 가평, 포천 등 7곳으로 전해졌다. 이 중 상당수 부단체장은 지난 6월 퇴임해 7월1일자로 공로연수에 들어간 상태다.
여름철 집중호우와 폭염 등 재난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지자체 컨트롤타워인 부단체장 부재가 장기화하면서 지역 행정의 불안감 역시 높아지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경기도가 일선 시·군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보인다”며 “행정의 기본을 간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도 “재난 대처와 현안 해결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부단체장 공석이 내년 초까지 이어지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도정의 편의를 위해 기초지자체의 행정 공백을 방치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