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대화 재개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며 한·미 연합연습 축소까지 지시했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충분한 사전 조율에서 배제됐다는 ‘패싱’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을지자유의방패(UFS)’가 당초 예정보다 엿새 이른 21일 조기 종료된 가운데 북한은 이재명 대통령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조롱하는 담화까지 내놨다.
북·미 대화를 측면 지원하며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청와대로서는 북·미 간 직접 대화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역할을 어떻게 확보할지를 놓고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한·미 연합훈련 축소와 북·미 정상회담 추진에 대한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23일 여권에 따르면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가 촉발한 북·미 대화 추진 국면에서 한국의 역할과 지원 방안을 놓고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트럼프 대통령에 이른바 ‘피스 메이커(Peace maker)’ 역할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며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를 자처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연합훈련 축소 지시를 우리 정부도 SNS를 통해 뒤늦게 파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미 대화가 본격화할 경우 한국이 협상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청와대는 북한의 도발에 맞대응하기보다 일단은 조심스러운 기조를 유지했다. 지난 20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의 한·미 연합훈련 축소 조롱 메시지에 맞비난하지 않고 한반도 평화 추진 의지를 재확인하는 취지의 메시지를 낸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부장 담화와 관련해 21일 “우리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비방적 언사는 상호 신뢰를 쌓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불필요한 비방을 멈추고 한반도 평화공존을 향해 함께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한국 정부를 비난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제의에는 별다른 호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점도 청와대의 부담이다. 한국 정부가 대북 유화 메시지를 이어가고 있지만 북한은 남북 대화에는 거리를 두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 북·미 접촉이 재개되더라도 한국이 어느 수준까지 관여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대폭 축소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데 대해 야당인 민주당뿐 아니라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공화당 소속 리치 매코믹 연방 하원의원은 22일(현지시간) 주말 시사 TV프로그램 ‘블룸버그 디스 위켄드’에 출연해 한·미 연합훈련 축소와 관련해 “이 조치가 일시적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원 군사위원회 소속인 매코믹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서도 “훈련 축소 결정에 어떤 요인들이 작용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접근을 겨냥한 비판이 이어졌다.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축소에 관심이 없다’는 제목의 지난 20일 뉴욕타임스(NYT) 기사를 엑스(X)에 공유하고 “트럼프가 스스로 가까운 친구라고 주장하는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마저 더는 그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는 트럼프가 세계 무대에서 미국을 망신시킨 가장 최근 사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