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과 인근 보유 토지의 한강 조망을 둘러싸고 다시 법정에 섰다. 2009년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 측과 조망권 분쟁을 벌인 지 17년 만이다. 이번 상대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새집을 짓고 있는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5월 14일 조 회장과 시공사를 상대로 서울서부지법에 공사중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조 회장이 짓고 있는 지하 2층~지상 2층, 연면적 2014.19㎡(약 609평) 규모의 단독주택이 자신의 한강 조망을 가린다는 이유였다. 이 회장 자택과 조 회장의 신축 주택은 약 49m 떨어져 있다.
이 회장은 이와 별도로 지난 6월 용산구청장을 상대로 건축허가 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 이달에는 건축허가 처분의 효력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도 신청했다.
이 회장은 1994년 한남동 일대 토지를 매입해 자택을 짓고 살아왔으며, 2015년에는 인근 토지를 추가로 사들였다. 이 가운데 아직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나대지가 이번 분쟁의 중심에 놓인 땅이다. 조 회장 측은 1992년부터 보유해온 부지에 2022년 11월 용산구청으로부터 약 27억원에 사들인 도로 부지를 더해 주택을 짓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21부는 지난달 27일 이 회장이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조 회장 주택이 완공되면 이 회장 측 토지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일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공사 현장이 이 회장 자택 정면이 아닌 대각선 방향에 있어 한강 조망이 완전히 차단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조망이 가려진다고 주장한 토지가 아직 건물이 없는 나대지라는 점에서 침해 정도가 제한적이라고 봤다.
조 회장이 자신의 땅에 건물을 지을 권리가 있고, 이 회장의 조망을 부당하게 침해할 목적으로 공사한다고 볼 근거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골조공사가 이미 끝나 현재 공사를 중단하더라도 조망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반면, 안전사고나 건물 가치 훼손 우려는 커질 수 있다는 점도 기각 사유로 들었다.
조 회장 측의 건축법규 위반 여부는 이번 가처분에서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별도로 진행 중인 행정소송에서 다룰 문제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이 회장은 결정에 불복해 즉시항고했고, 사건은 현재 서울고법에서 심리 중이다.
행정소송의 핵심 쟁점은 조 회장 주택의 건축허가가 적법했느냐다.
신축 부지는 제1종 전용주거지역으로 건축물 높이 8m 이하, 층수 2층 이하 제한을 받는다. 이 회장 측은 부지 경사가 큰 만큼 지표면이 낮은 남측 도로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건물 높이가 허용치를 넘어선다고 주장한다.
용산구가 허가 과정에서 이를 제대로 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 회장 측이 공사 중 성토를 통해 지표면을 높이고, 높이 산정에서 제외되는 승강기탑 등을 활용해 실질적인 건축 규모를 키웠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용산구의 입장은 다르다.
고저 차가 큰 경사지에서는 건물 외벽이 닿는 각 지점의 지표면 높이를 가중평균해 기준 지표면을 산정한다는 설명이다. 성토와 절토 역시 개발행위허가 대상이며 해당 부지는 관련 심의를 거쳤다고 밝혔다.
결국 기준 지표면과 건물 높이를 어떤 방식으로 계산해야 하는지, 용산구가 허가 과정에서 관련 규정을 제대로 적용했는지가 행정소송의 승패를 가를 전망이다.
이 회장이 한강 조망을 놓고 법정에 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9년 이명희 총괄회장 측이 이 회장 자택 맞은편에 집을 짓자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공사중지 가처분도 신청했다.
당시 서울서부지법은 신축 건물이 들어서면 이 회장 자택의 남쪽 조망이 대부분 차단된다고 판단했다. 조망이익 침해 정도가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선다며 건축허가 취소소송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공사를 중단하라고 결정했다.
건물 높이를 산정한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고저 차가 있는 땅의 일부 지점만 기준으로 지표면을 산정해 실제로는 높이와 층수 제한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이명희 총괄회장 측이 당초 지상 2층이던 계획을 1층으로 낮추기로 하면서 갈등은 마무리됐다.
이번 사건은 입지와 공사 진행 단계, 조망 침해 정도에서 17년 전 사건과 차이가 있다. 가처분 단계에서 조 회장 측의 재산권 행사가 우선 인정됐다는 점도 대조적이다.
남은 쟁점은 건축허가 과정과 높이 산정 방식이다. 항고심과 행정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한남동 한강뷰 분쟁’의 결론도 17년 전과 다르게 갈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