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조원 푼다더니…”
삼성전자 주주환원을 둘러싸고 시장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린 숫자다. KB증권은 지난 10일 삼성전자가 연간 최소 100조원에서 최대 200조원을 주주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전망과 함께 목표주가 60만원을 유지했다.
삼성전자 이사회가 내놓은 답은 90조~110조원이었다. 삼성전자는 지난 21일 장 마감 후 이사회를 열고 2026년 약 90조~110조원 규모의 주주환원 시행 방안을 의결했다. 기존 최대였던 2020년 20조3000억원의 약 5배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다.
공시 직후 주가는 약세로 돌아섰다. 삼성전자는 이날 정규장에서 3.87% 오른 28만1500원에 마감했지만, 주주환원안 발표 뒤 넥스트레이드(NXT) 애프터마켓에서 한때 26만6000원까지 밀렸다. 정규장 종가 대비 5.51% 하락한 수준이다.
역대 최대 규모였지만 KB증권이 제시했던 최대 200조원에는 크게 못 미쳤고, 전체 환원액 가운데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의 비율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제 확인해야 할 것은 ‘삼성전자가 주주환원에 나서느냐’가 아니다. 최대 110조원 가운데 주주가 현금으로 받는 돈은 얼마인지, 자사주 매입·소각에는 얼마를 쓸지가 핵심으로 바뀌었다.
◆삼성의 답은 최대 110조…200조 전망의 55%
삼성전자의 현행 주주환원 정책은 2024~2026년 3년간 발생하는 잉여현금흐름(FCF)의 50%를 주주에게 돌려주는 구조다. 연간 약 9조8000억원의 정규배당을 지급하고, 그 이후 남는 재원이 있으면 추가로 환원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2024년과 2025년 각각 9조8000억원씩 총 19조6000억원을 정규배당으로 지급했다. 2025년에는 1조3000억원의 특별배당과 8조4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도 실행했다. 여기에 올해 90조~110조원을 더하면 2024~2026년 3년간 전체 주주환원 규모는 약 120조~140조원으로 늘어난다.
연간 정규배당 9조8000억원과 비교하면 올해 환원 규모가 9~11배로 커지는 셈이다. 그러나 KB증권이 제시했던 최대 200조원과 비교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삼성전자가 제시한 상단 110조원은 200조원의 55%다. 증권사 전망 범위인 100조~200조원 가운데 하단에 가까운 수준에서 실제 시행안이 나온 셈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게 있다. 90조~110조원 전액이 주주 계좌에 현금으로 들어가는 건 아니다.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을 합친 전체 주주환원 규모다.
삼성전자는 우선 3분기에 정규배당을 포함해 30조원 내외를 현금으로 배당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주당 배당금과 지급 방식은 10월 말 이사회에서 확정한다.
전체 환원액과 3분기 배당 계획을 단순히 계산하면 이후 환원 재원은 약 60조~80조원이다. 이 돈을 추가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에 어떻게 나눠 쓸지는 2026년 실적이 확정된 뒤 내년 1월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결국 ‘110조원 주주환원’과 ‘110조원 현금배당’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현금배당은 주주가 직접 받는 돈이고, 자사주 매입·소각은 유통주식 수를 줄여 주당 가치를 높이는 방식이다.
◆임직원 보상용 자사주 15조원은 별도
삼성전자는 같은 날 임직원 보상을 위해 약 15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기로 의결했다. 회사는 이 역시 주주가치 증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주환원용 자사주 매입·소각과는 성격이 다르다. 소각할 자사주는 시장에서 영구적으로 사라져 발행주식 수를 줄이지만, 임직원 보상용 자사주는 이후 임직원에게 지급될 수 있다. 자사주를 매입한다는 점은 같아도 최종 용도가 다른 것이다.
그러니 임직원 보상용 자사주 15조원을 90조~110조원 주주환원액에 그대로 더해 ‘최대 125조원 환원’이라고 계산하면 실제 규모를 부풀리게 된다.
◆삼성 110조·하이닉스 40조…숫자보다 중요한 차이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보다 이틀 앞서 주주환원 카드를 공개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9일 이사회를 열고 약 4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장내에서 매입한 뒤 전량 소각하기로 의결했다.
매입 예정 물량은 약 2407만주로 전체 발행주식의 3.3% 수준이다. 매입 기간은 20일부터 11월 19일까지다. 40조원은 이사회 의결 전날 종가인 166만2000원을 기준으로 계산한 예정 금액이며, 실제 매입 금액과 주식 수는 취득 기간 주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두 회사의 숫자만 보면 삼성전자 90조~110조원이 SK하이닉스 40조원보다 훨씬 크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얘기가 다르다.
SK하이닉스의 40조원은 매입한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3분기 30조원 내외의 현금배당을 제외한 나머지 환원 방식을 아직 정하지 않았다. 자사주를 얼마나 사고 소각할지는 내년 1월까지 지켜봐야 한다.
FCF 기준도 달라졌다. SK하이닉스는 2025~2027년 누적 FCF의 ‘50% 이내’였던 주주환원 범위를 ‘50% 이상’으로 확대했다. 삼성전자는 2024~2026년 누적 FCF의 50%를 환원한다는 기존 원칙을 그대로 유지했다.
삼성전자의 전체 환원액은 더 크지만, 자사주 소각 규모와 향후 환원 비율만 놓고 보면 SK하이닉스가 더 공격적인 카드를 꺼낸 셈이다.
◆3분기 영업이익 111조5000억원이라는 전망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주주환원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급격히 불어난 이익이 있다. 삼성전자는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171조5000억원, 영업이익 89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분기 기준 사상 최대였다. 2분기 말 현금성 자산에서 차입금을 뺀 순현금은 167조5900억원으로 1년 전의 약 두 배로 늘었다.
KB증권은 삼성전자의 3분기 매출을 201조3000억원, 영업이익을 111조5000억원으로 전망했다. 전년 동기보다 816.7% 증가한 규모다. 당시 시장 컨센서스인 115조5000억원보다는 3.4% 낮다.
100조원을 훌쩍 넘는 숫자지만 회사가 발표한 확정 실적은 아니다. 반도체 가격과 출하량, 환율, 성과급 충당금 등에 따라 실제 실적은 달라질 수 있다.
이익 증가를 이끄는 핵심은 메모리다. KB증권은 3분기 D램 영업이익률을 83%로 추정했다. 2분기 78%보다 5%포인트 높다. 낸드 영업이익률도 68%에서 71%로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파운드리 사업은 4나노 공정 양산 효과가 본격화하면서 성과급 관련 충당금을 제외할 경우 2022년 이후 4년 만에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다. 이 역시 조정 기준 전망치다.
◆주문 100개 중 60개만 공급한다는 계산
반도체 업황 낙관론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숫자는 60%다. KB증권은 8월 기준 주요 빅테크 고객사의 메모리 수요 가운데 공급업체가 충족할 수 있는 물량을 약 60%로 추정했다. 고객사가 메모리 100개를 주문해도 60개 정도만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업계 전체가 발표한 공식 통계는 아니다. KB증권이 고객사 주문과 공급 상황을 토대로 추정한 수치다. 신규 메모리 공장을 지어 실제 생산에 들어가기까지 3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렵다는 게 KB증권의 판단이다. 일부 하이퍼스케일러는 기존 3년 계약 대신 5년 장기공급계약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HBM 전망도 공격적이다. KB증권은 삼성전자의 2027년 HBM 평균판매가격이 올해보다 두 배 이상 높아지고, HBM4 시장점유율이 44%에 달해 세계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44%는 삼성전자가 이미 확보한 계약 물량이나 확정 점유율이 아니다. 2027년 시장 상황과 삼성전자의 공급능력 확대를 전제로 한 증권사의 전망치일 뿐이다.
◆PER 3.3배는 23만1000원일 때 계산
목표주가 60만원의 또 다른 근거는 경쟁사보다 낮은 기업가치 평가다. KB증권은 2027년 예상 실적을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주가수익비율(PER)을 3.3배, 주가순자산비율(PBR)을 1.4배로 계산했다. 같은 기준 마이크론은 PER 5.3배, PBR 2.8배였다.
계산의 기준 주가는 보고서 발표 직전인 7일 종가 23만1000원이다. 삼성전자는 21일 28만1500원에 마감했다. 9거래일 만에 21.9% 오른 셈이다.
이익과 순자산 추정치를 그대로 둔다면 21일 종가 기준 PER은 약 4.0배, PBR은 약 1.7배로 높아진다. 주가가 먼저 오른 만큼 보고서 발표 당시보다 저평가 폭은 줄어든 상태다.
목표주가 60만원까지의 거리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21일 종가 28만1500원에서 60만원까지 오르려면 주가가 추가로 113.1% 상승해야 한다. 여전히 두 배 넘게 올라야 한다는 뜻이다.
KB증권은 기본 목표주가 60만원 외에 강세 시나리오 70만원과 약세 시나리오 25만원도 함께 제시했다. 60만원은 여러 전제가 맞아떨어졌을 때의 기본 시나리오일 뿐, 미래 주가를 보장하는 숫자는 아니다.
◆28만전자 마감 뒤 애프터마켓 급락
보고서 발표 이후 삼성전자와 코스피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코스피는 지난 14일 장중 7010.86까지 오르며 7000선을 회복한 뒤 6977.94에 마감했다. 삼성전자도 이날 27만4500원까지 올랐다.
분위기는 닷새 만에 뒤집혔다. 19일 반도체주가 급락하면서 코스피가 6471.17까지 밀렸고, 삼성전자는 하루 만에 7.82% 떨어졌다.
다음 날 SK하이닉스의 40조원 자사주 매입·소각 결정이 알려지자 코스피는 5.89%, 삼성전자는 9.49% 반등했다.
21일에는 삼성전자의 주주환원 기대까지 더해졌다. 코스피는 0.88% 오른 6912.95에 마감했다. 삼성전자는 3.87% 상승한 28만1500원, SK하이닉스는 2.31% 오른 173만원을 기록했다.
정작 삼성전자가 장 마감 후 최대 110조원 규모의 시행안을 발표하자 NXT 애프터마켓에서 삼성전자 주가는 한때 26만6000원까지 내려갔다. 정규장 종가보다 5.51% 낮은 가격이다. 애프터마켓 종가는 27만원으로 정규장 대비 4.1% 하락했다.
역대 최대 주주환원이라는 호재보다, 일부 시장 참가자가 기대했던 규모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와 남아 있는 환원 방식의 불확실성이 먼저 반영된 모습이다. 정규시장에서의 본격적인 반응은 24일 확인된다.
◆결국 확인해야 할 3가지
삼성전자의 주주환원 여부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일단 해소됐다. 이사회가 2026년 90조~110조원 규모의 시행안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KB증권이 전망한 최대 200조원이 현실이 된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가 제시한 상단은 110조원이고, 그마저도 올해 실적이 확정돼야 최종 규모를 알 수 있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숫자는 세 가지다.
첫째, 10월 말 확정되는 3분기 주당 배당금이다. 30조원 내외의 현금배당이 보통주와 우선주에 어떻게 배분되는지가 실제 배당수익률을 결정한다.
둘째, 3분기 배당 이후 남는 약 60조~80조원의 용도다.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가운데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주주가 체감하는 효과가 달라진다.
셋째, 2027년 이후에도 이 같은 환원 규모가 이어질 수 있는지다. 올해 사상 최대 이익을 바탕으로 한 일회성 환원인지, 차기 주주환원 정책의 새로운 기준이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200조원’은 삼성전자가 약속한 숫자가 아니라 증권사의 전망이었다. 삼성전자 이사회가 현재 내놓은 답은 최대 110조원이다. 목표주가 60만원이 현실이 되려면 ‘역대 최대’라는 수식어만으로는 부족하다. 남은 약 60조~80조원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